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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23. 2022

05.노르망디 상륙작전

하와이에서의 기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령을 포기하면 안되나? 이건 불가능해. 해외 주재를 나가는 건 좋은 일이지만 너무 급작스럽고 난 수속 시스템을 다룰 줄도 모르고, 현장 경험이 너무 없어. 더군다나 약 한 달 전엔 목 디스크로 시술까지 받아서 몸 상태도 최악이라고. 병원도 계속 다녀야 하는 상황이고 우리 가족들도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래서 강의 중 틈을 내 인사팀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발령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 나가게 할 수 있어? 몸도 안 좋고 교육과정은 알아들을 수도 없어.“ “포기할 순 있어.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앞으론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어. 그걸 바라는 거야? 만약 진심으로 바라면 내가 이야기 해 줄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야.”


미칠 것 같았고 여전히 시간은 흘러갔다. 사장님께 발령 인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들은 말씀은 더욱더 부담감을 가중시켰다. “호놀룰루 노선은 IMF로 인해 1997년 단항 후 복항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네. 전통적으로 경쟁사가 독점하고 있는 노선에 공격적으로 취항을 결정하였으니 잘해주길 바라네. 자넬 믿네.”


2012년 5월 31일(목) 인천발 호놀룰루행 항공편 티켓을 들고 일산의 아파트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 녀석의 눈물 어린 배웅을 받았다. 아내는 차의 운전석에 앉아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차 뒷좌석과 트렁크엔 이민가방 두 개와 소형 가방 한 개, 배낭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어무니, 아부지.  출발할게요.  정리되면 모실 테니  놀러 오세요. 하와이 정말 좋아요. 아들아   후에 보자. 엄마 말씀  들어. 사랑해  보자!”


허울만 해외지점장 교육과정이라는 며칠 간의 교육과정을 끝내고 머릿속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는 상태이기에 공항 업무 관련 매뉴얼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프린트를 해서 배낭 깊숙이 찔러 넣어둔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얻은  다른 매뉴얼과 함께 개인 물품을 가방이 미어터지도록 집어넣고  오는  저녁 평생 처음으로 비즈니스 2A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A330-300 항공기의 비즈니스석은  5 개열로 VIP 경우 최대한 왼쪽 앞에서 두 번째  2A 모시고 좌석이 여유가 있다면 옆자리를 비워두는 경우가 많다.  당시의 나는  몰랐지만 수속해  직원은 나름 신규 지점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상석이라   있는  자리를 배정해   같다. 또한, 확답은  드리지만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옆자리인 2C 비워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자리에 앉고 보니 옆자리에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할머님께서 앉아 계셨다. 이런 제길. 두어 석은 비어 있었는데 좌석 관련 이슈가 있었나 보다. ‘조용히 가실 테니 나도 가면서 최대한 매뉴얼을 정독하리라 나의 상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욕심이었을 뿐이라는  밝혀졌다.


하와이 복항  최초의 공항서비스지점장으로서 책임감이 발동했던 탓일까? 그만 식사시간에 스테이크를 자르는데 힘겨워 보이시던 할머니께 친절하게 말을 걸고 자그마한 도움을 드렸다. 그때부터 악몽은 시작되었다. “매년 딸이 거주하고 있는 하와이에 놀러 가서 두어  쉬다 온답니다.”부터 해서  자랑, 사위 자랑, 손주 자랑까지 끊임없는 일방적 대화가 시작되었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기내 소등이 되자마자 자는 척을 했고 잠시  옆자리 손님이 잠든 것을 확인 후에야 가방에서 매뉴얼을 꺼내 정독을 시작했다. 며칠 간의 OJT 그나마 도움을  것인지 모르겠으나 의외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았고 그렇게 7시간 가까이 밤을 꼬박 새우며 거의 모든 매뉴얼을 읽어나갔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절박함이 매뉴얼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도착 , 지점 설립에 도움을  출장자  명과 함께 Carousel(수하물컨베이어벨트)에서 가방을 찾아    여행으로 익숙해진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현지 직원을 찾았다. 지점에 필요한 여러 가지 회사 Signage(사이니지, 표지판) 물품들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를 만나야 했다. 한참을 기다리고 찾은 후에 여행을 통해 얼굴이 낯익은 직원을 만났으나 그는 마치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고참 상사처럼 “.  사이니지요. 여기서 주시면 관세법에 저촉되니 가져 나가셔서 제게 건네주시면 됩니다. 이리로 오세요.“ 다행이다. 한국말을 나보다 잘한다. 슬쩍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있던 터라 그의 능숙한 한국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물건을 건네고 은근 신규 지점장에 대한 예의로 공항 사무실로 MAAS 기대했건만 웬걸 “ 지금 불만 손님이 있어서 다시 들어가 봐야 하니 이렇게 저렇게 올라가고 내려가서 가시면 신규 사무실이 나오니깐 찾아가실  있으시죠? 혹시나 모르시면 중간에 경쟁사 사무실이 보이니 거기 직원들에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 고마워요. 그럼 비행기  정리되고  봐요.” 사무실까지는 거의 20 이상이 걸렸음은 비밀도 아니다. 나중에 호놀룰루 공항이  집처럼 느껴졌을 때의 속도는  5 정도였는데  정도면 선방한 것인가?


‘라이언일병구하기’의 첫 전투 장면 같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입국장을 벗어나 어렵사리 도착한 사무실에는 정리가 전혀 되지 않고 어지럽게 낯익은 회사 마크가 새겨져 있는 물품 몇 덩어리들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책상과 파티션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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