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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23. 2022

04.힘들었지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잊지 못할 4년

하와이에서의 기록..

이제부턴 정말 정신 없는 이야기다. 내 직장생활, 아니 인생 최고의 순간이기도 하고 최악의 순간이기도 했던 그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기억할 수 있는 건 호놀룰루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나야 하는 시간이 채 1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이 가족들과 함께 편안히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미리 전화로 언질을 들은 아내는 된장찌개와 함께 소박한 저녁상을 차려놓고 상기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들 녀석도 얼핏 엄마에게서 들었는지 다소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난 담담한 목소리로 아들녀석에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아들. 잘 들어라. 아빠가 갑자기 미국 하와이지점장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어. 약 1주일 후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전에 회사 동료들과 회식이 거의 매일 있을 거야. 그러니 우리 세 식구가 평온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은 떠나기 전에는 오늘이 마지막일거야. 한가지만 당부 할게. 아빠가 출발하고 넌 엄마와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약 2-3달 후 출국할 건데 그 동안 엄마가 엄청 바쁠 꺼야. 그러니 말썽부리면 안되고 엄마는 여자니까 남자인 네가 엄마를 많이 도와드려야 하고 지켜줘야 해. 미국에서 4년 살 수 있으니깐 이제 영어도 많이 배울 수 있고 외국 친구들도 사귈 수 있어. 미국영주권을 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너에게 신세계가 열리는 거야.“


거의 나 혼자 마구 떠들어댔지만 아들 녀석은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갑자기 거주지를 미국으로 옮긴다는 심각성과 미래의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맞벌이를 하다가 어린 아들을 키우기 위해 과감히 직장을 그만둔 엄마와 함께 점차 초등학교의 합창단과 농구부에서 친한 친구들이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만 있었을 뿐. 그리고 난 아들 녀석의 막연한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마침 휴일인 부처님오신날까지 껴 있어서 떠나기 전까지 OJT를 받을 수 있는 날은 약 5일 정도에 불과했다. 본래 해외지점장은 부임 한달 전에는 발령이 나고 최소 2주에서 4주까지는 사전 교육을 받는다. 그 교육과정에는 업무 외에도 해외에서의 생활 관련된 내용도 있고, 더 나아가 같이 지점장을 발령받은 동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각종 노하우를 교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난 또 단독 발령을 받았고 긴급하게 서지파의 교육 담당이 교육계획을 짜서 준 스케줄표에는 알기 힘든 과정들이 쉴 틈 없이 적혀 있었다. 


특히 호놀룰루 공항서비스지점은 1997년도에 단항을 한 이후 2015년에 복항을 하게 되면서 영업, 공항의 통합 지점은 이미 설립이 되어 있었지만 좀 더 전문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공항 지점이 분리되어 신규 설립이 되는 터라, 수속, 레벨, 수하물, W&B(Weight & Balance), SQM(Service Quality Management), 비정상 상황 처리절차 교육 등의 기본적 사항은 물론이거니와 온라인 수속 준비, 수속 카운터 이전, 공항 사무실 계약에 따른 집기 설치, 각종 장비 설치, 조업사 계약 및 교육, 기타 시설 관련 업무 처리 등을 단 한두시간내에 담당자 설명으로 인계 받게 되었고, 레벨 교육을 가르치던 과장님으로부터 수속을 알려주는 대리님까지 “도대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신규 지점을 설립 할 수 있겠어요? 매일 취항까지는 단 1개월 10일 정도가 남아 있는데 가능하겠어요? 신규 지점의 지점장은 통상의 발령보다 더 빨리 진행되는데 왜 이번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선정해 놓고도) 늦었을까요?”라는 말을 듣고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만 커져갔다. 


그랬다. 신규로 설립되는 지점의 경우에는 일반 지점과는 달리 준비할 시간이 충분해야 하기 때문에 발령을 좀 더 빨리 내고 더 빨리 파견 보낸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W&B를 해외 각 공항지점에서 직접 작성해야 하는데 그 자격을 갖고 있는 조업 직원이 없다며 지점장인 내가 자격을 취득해서 나가야 하는 상황까지 심리적 부담감을 더했다. 


하루가 10년 같은 교육을 수강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용어와 업무처리 절차들이 난무한 가운데 쉬는 시간이면 여기저기로 전화를 돌렸다. 해외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으면 통상적으로 팀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술 한잔 사야 하는 불문율이 있었고, 본사의 선후배님들과 인사 드려야 할 친척, 친지,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갔고, 그 동안 아내는 이민 가방을 급히 구입하여 그 속을 즉석밥과 김치, 옷가지들로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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