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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22. 2022

03. 한 자락, 항공사 직원으로서의 삶의 기록들

항공 호황기, 입사 후 조종사 스케줄 업무까지..

롯데백화점과 금호그룹. 띠리 릴리 릴리~ OST로도 유명했던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재벌 2세 백화점 이사 강풍호(차인표)는 백화점 여직원인 이진주(신애라)를 우연히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그 신데렐라 스토리 덕분에 롯데백화점 면접을 보았고, 롯데백화점과 금호그룹에 동시에 합격한 후 고민에 빠진다. 백화점 여직원을 만날 것이냐 스튜어디스를 만날 것이냐. ‘그래 항공사가 더 멋있어 보인다. 해외여행도 가능하니까.’


그룹 신입사원 연수 막바지에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포스코에 보결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으나 이내 어머니가 “아들아 걱정 마라. 내가 거기 못 간다고 했다. 너 이미 금호그룹에 공채로 합격해서 연수받고 있다고 이야기했어~” “어무니. 금호그룹보다 포스코가 훨씬 더 좋은 회사라구요. 도대체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저한테 연락이라도 주셨어야죠.” “너한테 전화를 할 방법이 있어야 하지. 그리고 이미 금호그룹에 합격했으면 거기서 충실해야지 여기저기 한눈팔면 안 돼!” “아. 이게 내 운명이구나. 난 어차피 항공사 직원이 될 운명이었어.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가 2009년에 출시했던 아이폰 3GS을 좀 더 빨리 시장에 내놓았더라면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을 텐데.’


신입사원 연수가 거의 마무리되어갈 때쯤 교육팀 모 과장님이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부서 배치를 알려주는 시간이 왔다. 큰 기대를 가지고 내 차례를 기다리던 순간 “OOO 씨 운항승원부로 배치되었습니다.” 순간 40여 명의 동기들이 내지르는 환호가 들렸다. “부럽다 녀석. 너 객실승무원 스케줄러로 가는구나.” 당시 마침 김혜수, 채림이 주연으로 유행했던 드라마 ‘짝’이 유행했었다. ‘그 드라마에 간혹 얼굴을 비추던 스케줄 짜는 직원 그거구나. 좋아. 걱정 마라. 동기들아. 너희들 소개팅은 내가 다 책임지마!’


이상하다. 분명 캐빈승무원이 많을 것이라는 동기 녀석의 말과는 달리 남자들만 넘쳐났다. 왜 여기서 갑자기 조종사가 보이나. 별로 친하지 않던 또 한 명의 동기와 함께 부서에 배치된 첫날 선배 대리 한 분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여기 교대 근무하는 곳인지 알고 있지? 조종사 스케줄 짜는 부서이니 앞으로 열심히 해.” 띠로리~ ‘뭐야. 조종사 스케줄을 짠다고? 그걸 자기들이 알아서 나가는 게 아니고 서울에서 4년제 대학물 먹은 내가 짜야한다고?’ 


정말 최악이었다. 이상한 골방에서 엉덩이에 쥐 나게 앉아 있던 선배님들은 큰 도화지에 뭔가를 그려 넣고 있고, 신입사원인 나에겐 거의 두 달 이상 복사와 허드렛일만 시키고 있었다. 내 인생이 이게 뭔가. 무엇인가 더 거창하고 해외 지점과 영어로 통화하며 멋진 일을 할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빗발치는 조종사의 불만 전화에 “죄송합니다. 제가 스케줄 바꾼 거 아닙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는 왜 철마다 이렇게 안 좋은지. 봄에는 안개, 여름엔 장마, 가을엔 태풍, 겨울엔 눈. ‘왜 맨날 비행기가 지연, 결항되는 거야. 그 넘의 기종 변경은 또 왜 그렇게 많은 거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화창한 주말에 혼자서 온갖 비정상 상황을 처리하며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식사도 제때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직업 선택에 대한 나의 멍청함을 후회했고 포스코로 입사하지 못했던 내 운명을 두고 매일 같이 짜증을 털어 냈었다. 


그 시절, 참 다양한 에피소드도 많아서 멕시코 국적의 기장과의 전화 다툼에서 화가 난 그 기장이 시가를 손에 든 채 비를 맞으며 사무실을 찾아와 내게 영어로 소리지르자 “나가서 한국말 배워 와! 여긴 한국이야!” 라며 신입사원으로서는 건방진 행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911이 터졌을 때는 사무실에 설치된 거의 모든 전화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울려서 하루를 어찌 보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보낸 적도 있고, 영업과 화물의 Extra, Charter편 요청에는 운항승무원 부족 현상으로 인해 지원이 불가하여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근무 특성상 새벽과 야간 근무가 365일 돌아가는 부서라 피곤한 상태에서 전화를 받아가며 악기상 하에서 안전하게 항공편을 운항하기 위해 고경력 승무원으로 편조를 교체하였으며, 새벽에 눈을 떠서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언제나 창 너머의 날씨였다. 


회사에서 무료로 ‘삐삐’를 나누어 줘서 신난다고 했더니, 회사 인근의 중국집 따봉관에서 짜장면을 면치기 하다가 삐삐가 울려서 사무실로 다시 튀어 올라가기가 일상이었고, 급한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다 불어버린 면을 이미 식사를 마친 선배들 눈치를 보며 입에 쑤셔 넣기도 했다. 


특히, 싫었던 건 토요일 오후 출근이었다. 화창한 봄날이나 연말이 가까워지는 즈음에는 모두들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연인과 데이트를 했겠지만, 나는 조종사의 불만 전화를 받거나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는 전 세계 기상 및 비정상상황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결국 내 선택은 여자 친구를 나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 만들자는 거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관숙비행이라는 건 참 적성에 맞았다. 운항스케줄러에게는 해외출장을 빙자한 여행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거기에 더불어 조종석에 맘껏 들어갈 수 있는 Cockpit Auth라는 증명서는 우리 부서가 발급 주관이었다. ‘오! 이거 봐라. 이거 너무 좋다. 일반인인 내가 조종석에 맘껏 드나들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네.’ 그것도 내가 직접 작성하고 발급한 증명서로 말이다. 일반 승객과 동일하게 보딩 절차를 마치고는 무슨 대단한 완장처럼 그 분홍색 종이를 캐빈매니저에게 보여주면 나에겐 합법적으로 이착륙과 비행기 조종의 전 과정을 조종석의 뒷좌석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1997년 하와이를 처음으로 관숙비행으로 출장 갔었으며, 그 당시에는 바야흐로 15년 후에 바로 그 공항을 강아지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는 호놀룰루공항서비스지점장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었다. 솔직히 말해서 IMF로 인한 경영 위기로 인해 하와이 단항 소식을 들었기에 평생 하와이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할 까 봐 그 노선을 택했었다. 


왜 나는 이렇게 재미난 직업을 대학시절엔 몰랐을까. 어차피 시력이 좋지 않아 운항승무원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대신 캐빈승무원이라는 직업도 있는데 말이다. 순진한 내 눈에는 해외에 가서 좋은 호텔에서 먹고 자고 월급도 주는 운항승무원, 캐빈승무원이라는 직업군이 정말 괜찮아 보였다. 


‘이 멋진 직업의 스케줄이나 짜는 나란 인간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자괴감은 피할 수 없었지만 그냥저냥 일에 익숙해져 가면서 각종 비정상 상황을 처리해 나갔고, 주말과 심야를 막론하고 울리는 삐삐와 전화를 받으며 ‘내가 정말 항공사에 필요한 사람이구나’라는 자부심은 슬며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또한, 그 시절 신입사원으로서 혼자 새벽 야간 주말을 넘나드는 근무를 하며 판단력과 순발력, 집중력을 훈련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자질이 결국 내 직장생활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근간임을 당시에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러나, 매번 연말에 개최되는 동기모임에서 나라는 존재는 정말 바보 같았다. “이번에 여객에서 어디를 새로 취항하고 영업 이익을 얼마를 올렸잖아.” “공항에서 PETC 수속을 하면서 OOG 짐을 보내고, 손님이 요청하는 상황을 완벽하게 처리해 드렸지.” “직원 채용 때문에 모교에 다녀왔는데 후배들이 항공사에 캐빈승무원 채용에 대해서 많이 물어 보더라구.” “DDP께서 LAX 출장을 다녀오시는데 내가 직접 KKZ 모시고 MAAS(Meet And Assist, 의전) 했었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같은 항공사에 다니는데 왜 알아듣지 못할 용어들과 이야기들만 하는 거지. 왜 동기들은 조종사 스케줄 이야기엔 관심이 없는 걸까.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인가. ‘이제 지겹다. 그만하고 싶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싫어요. 저 안 갈래요. 그 팀으로는 전보 배치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 기회가 오긴 왔다. 그런데 하필 운항부문내에 있는 신규팀이라니. 그것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분이 팀장으로 선임된 부서로. 절대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운항의 인사를 담당하였던 기획팀장님의 마지막 일갈이 내 굳은 결심을 무너뜨렸다. “자넨 회사 생활 잘못 배웠구먼. 선배가 후배를 선택할 순 있어도 후배가 선배를 선택할 순 없네. 자네 그 팀 팀장이 맘에 안 들어서 전보를 거부하겠다면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 게 나을 거야. 자네 같은 친구는 조직에는 맞지 않아.” 무엇인가 머리를 망치로 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백 번 맞는 말씀이었고 그동안 내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과대평가에 대한 뼈저린 자각과 함께, 당시의 MZ 세대로서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는 어설픈 조직관에 커다란 변화를 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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