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C Aug 08. 2022

02.왜 하필 항공사였을까?

밥벌이라기보다는 여행이 좋아서였다

중학교 시절이었다. 각각 간호사와 광부의 직업을 택해 독일로 이민을 간 고모와 고모부가 가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데리고 한국을 들어올 때마다 손위 오빠였던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그분들을 마중 나가곤 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김포 국제공항으로 택시가 접어드는 순간 대한항공의 비행기 꼬리 자락이 건물 저 너머로 보였고 나는 내가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니었지만 너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간 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볼 수 있겠지. 비행기를 간절히 타보고 싶고 기내식도 먹어보고 싶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 2학년 운전면허를 취득하자마자 친한 친구를 집에 바래다주고 싶은 마음에 운전 연수를 시켜달라는 억지를 쓰며 아버지께 대들고는 어머니가 30여 년간 운영해 오시던 문구점의 출입문 하단 유리를 발로 걷어차 박살을 내고 1990년 11월 첫눈이 오던 날 늦은 가출을 하며 친구와 술 한잔 하던 주점의 TV 속에서는 SBS 개국을 알리고 있었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여행을 떠나 속초를 거쳐 부산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서 며칠간을 보낸 후 뒤늦은 죄책감을 품고 서울로 귀가하던 길에 비행기를 타 본 것이 첫 항공 경험이었다.


그 후 필리핀 항공을 타고 처음으로 국제선 비행과 기내식을 맛보았고, 보라카이로 가는 외항사의 국내선 비행기에서 좌석 하단에 위치해 있던 구명조끼를 훔쳐 나와 물놀이를 하던 배낭여행객의 무용담에 심취해 마닐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 또한 절도를 시도하였으나, 앞 좌석 정면에 쓰여 있던 영어로 된 문구가 발목을 잡았다. ‘너 이거 가져가면 항공법 위반이고 즉시 경찰에 넘겨 버릴 거야. 다시 넣어둬!’ 이런 제길.


그냥 단순하게도 여행이 너무 좋았고 해외에서의 삶이 부러웠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기에 항공사 취업이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지방에서의 대학시절을 자취, 술, 책, 나이트클럽, 영어연극 연출, 대학로에서의 거친 버스킹으로 멋지게 보낸 후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4학년이 되었고 우연히 학과장에 떠돌던 취업 백서를 다소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선배가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것이 아닌가. “왜 때려요?””야 인마! 너 그중에 들어갈 수 있는 회사 하나도 없어. 어디 아는 사람 통해서 취업하던가 아니면 자그마한 중소기업이나 알아봐. 지방대 출신이 무슨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야? 말도 안 되는 생각 하지도 마!”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4학년이 되어 실제 눈앞에 놓인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맞아. 지방대 출신의 내가 무슨 대기업에 취직 할 수 있겠어. 포기하자. 아니야. 포기하기 싫다. 맞다! 나 2대 독자라 군대 짧게 다녀왔지. 그러니 또래보다 2년의 시간이 더 빠르네. 오호. 편입하자! 학사 편입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시 다니자!’


그렇게 학사편입을 준비하면서 해묵은 지방대 출신의 열등감도 지우고 좋아하는 영어도 더 심도 깊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럴 바엔 차라리 대학원을 가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무릎 쓰고 서울 모 대학의 영어영문학과로 편입을 해버렸다.


다시 영문학과를 2년 더 다니다 보니 어차피 한번 배운 것도 있고 해서 무난하게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고, 공부를 엄청 잘하고 괴물처럼 보였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 서울에 있는 대학교 출신의 학생들이 생각보다는 그리 대단하지 않고 오히려 나보다 경험적 측면에서는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 더욱 영어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다시 취업시즌이 왔지만, 대기업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자격의 변동만이 발생했을 뿐 막상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시간을 흘려보내던 그 시절, 하릴없이 매일 같이 술에 취해 늦잠을 자던 어느 날 어머니가 세차게 어깨를 흔들어 깨우시는 것이었다. 숙취로 인해 투정 섞인 목소리로 도대체 왜 나를 오전 10시라는 시간에 단잠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인지 항의를 하다가 학교 조교의 전화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는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항공사 취업하고 싶다고 적어 내셨죠? 금호그룹 원서가 한 장 남았는데 늦어도 내일까지는 가져가세요.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습니다. “


그날 저녁 다시 동네 친구와 또 술을 마시다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가 “내일 그 원서받으러 갈 거야?” “아니. 취업은 무슨 취업이야. 당분간은 이렇게 살고 싶어. 싫어 안가.” “야 이 미친 X야 이렇게 술이나 마시다가 인생 망칠 거야? 당장 정신 차리고 그만 마시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자. 그리고 낼 꼭 원서받으러 가!”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친구 내 인생의 은인이다.

작가의 이전글 01. 나는 국적 항공사 직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