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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26. 2022

09.의전은 어려워 #2

하와이에서의 기록

가끔은 나쁜 경우도 있었다.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일부 재벌들은 부인이 아닌 젊은 여자분과 함께 단둘이 여행을 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한국의 의전보고서를 받아볼 때마다 이해하지 못할 글이 써 있었다.


‘불편해 하시니 동행하시는 분을 사모님이라고 호칭하지 말 것!’ 이건 뭔 시추에이션일까.


한 번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그룹의 재벌 3세가 젊은 여성분과 함께 여행을 오면서 의전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 여자분을 사모님이라고 부를 맘은 일도 없이 일상적인 대화와 함께 의전을 하면서 주내선 터미널까지 모시고는 마우이로 가는 하와이언항공 항공편의 보딩 패스 출력을 위해 키오스크에서 후다닥 일 처리를 하려는 순간, 그분이 나를 제지하는 것이 아닌가.


직접 키오스크에서 하시겠다고 하길래 뒤로 물러섰다. 이미 수하물 지역에서 조업 직원에게 고압적으로 명령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첫인상도 안 좋은 편이었다는 건 덤으로 밝힌다. 이윽고 두 번째 화면에서 인가 언어를 한국어, 영어 선택이 가능한 화면이 표출되었고 난 당연히도 한국어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분은 영어를 선택하는 것 아닌가.


 ‘뭐지 이 상황은? 그녀 앞에서 영어 잘한다고 자랑하고 싶은가 보군. 그려 잘 해보삼.’ 하며 기다리는데 ‘엥? 왜 저 간단한 영어문장을 하루 종일 읽고 있지? 그거 눌러요. 그거! 바로 그거라고요! 쉽잖아? 그냥 체크인 가방 있냐고 묻는 간단한 문장이잖아요. 눌러요. 제발.’ 헐..


재벌 3세라 유학도 하고 영어공부도 많이 했을 거라는 내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참을 잘 못 누르고 헤매던 그는 옆에서 지켜보던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갑자기 하와이언항공 직원을 불렀다.


“헬로.. 엄..이즈 디스.. 보딩패스? 마우이.. 투 피플.. 엄..”


정말 실망스러웠고 빨리 사무실로 복귀해야 하는 나는 짜증이 너무 났지만 당해보라는 심정으로 단 한마디도 통역해 주지 않았다. 다행히 친절했던 그 하와이언항공 안내 직원은 아주 아주 느린 영어로 ‘이거 저거 누르시면 됩니다.’ 하고는 무심한 도움을 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통상 내가 빨리 사무실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주내선의 보안 검색대 라인도 인맥을 통해 Expedite Lane으로 도움을 드리곤 했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둘을 승객들이 서서 신발 다 벗고 벨트 풀면서 족히 30분은 대기해야 하는 일반줄에 세워버리고는 고개만 까닥 후 냉정하게 돌아서 버렸다.


 ‘그래. 당신 영어 잘하니깐 알아서 잘 해보셩. 안녕.’


약 5일 후 그 재벌 3세만 비즈니스석으로 수속을 했고, 여자분은 이코노미석 중간에 배정을 해야했다. 올 때는 둘 다 비즈니스 타고 오더니 하여간 ‘끝까지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야기가 전개된 김에 한 두개 더 밝히면, 모두들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해외지점장은 부임 후 업무 파악도 중요하지만 현지의 주요 관광지 정보, 현지 교민 현황, 기상정보,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 등을 반드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의전 시에 물어보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기에 전문가적인 모습을 보이려면 필수적 준비사항이다. 심지어 하와이에 있는 대다수의 산 높이에 각 해변들의 특징과 숨겨진 비경 등도 공부해서 정보를 드리기도 했었다.


 아.. 죽이는 맛집은 예외다. 그 분들은 나처럼 가난한 직장인이 갈 수 없는 식당을 방문하시기에 그 부분에서는 도움을 드릴 수 없었다. 호텔 이름도 필요 없었다. 로비만 들어갈 수 있었던 비싼 호텔의 스위트룸을 이미 예약하고 오셨기 때문이다. 좋은 점도 있군. 떱.


의전 관련 마지막 에피소드.


그 분은 아주 유명한 전직 정치인이었고 샌프란시스코의 Napa Velly(나파 벨리,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 카운티에 위치한 대규모 와인 생산지.) 와이너리를 거쳐 마우이 직항을 타고 가족 여행을 갔다가 오하우섬으로 들어와서 우리 항공편으로 한국 복귀를 하시는 일정을 계획 중이셨다. 긴급하게 연락이 왔다. 마우이로 먼저 넘어가서 그 분 일행을 의전하고 도움을 드린 후 오하우섬으로 돌아와 우리 항공편 탑승 시에도 잘 모시라는 내용이었다. ‘뭐라고? 나 마우이 한 번도 못 가봤는데? 거기까지 가서 혼자 의전을 하라고?’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긍정적으로 맘을 고쳐먹고는 이 참에 마우이 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분에 대한 또 다른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5대 일간지에 실리면서 그 여행 계획은 긴급히 취소되었으며 다시는 그분 아마 하와이 여행 못 오셨을 거다.


29만 원 밖에 없는 분이 어찌 하와이 여행을 계획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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