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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28. 2022

10.비정상 비정상 비정상 #1 (모세의 기적)

하와이에서의 기록


거의 휴일이 없었다.


개인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밀려드는 업무와 매순간 발견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개선 거리들, 조업 직원들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두눈 부릅뜨기는 물론 그냥 이런 저런 사건 사고들이 거의 매일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나야 어차피 본사에서도 주일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고, 밤을 새워가며 노조와 극적 타결을 하는 등 초과 근무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만이 크게 있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현지 직원들이었다. 계속 채용과 사직을 반복하며 4명의 현지 직원 T/O 중 평균 2명 이상이 동시에 재직하는 일은 거의 드물었고 매일 운항편을 처리 하기엔 항공사를 처음 접한 그들의 실력이나 항공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간단한 시스템 사용법부터 사내 인트라넷 사용법, 회사의 인사제도, 범용적인 항공 지식은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지만, 공항 관련 지식은 무지해서 도움을 주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경쟁사 지점장과 친분을 쌓아 간혹 비정상 상황 처리에 많은 도움을 받곤 했다.


경쟁사의 도움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아 본사에서 조심하라는 전화도 받긴 했지만.. 신규 지점은 본사에서도 현지의 특수한 상황을 모르기에 경쟁사 직원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쩌면 최선이자 필수이다.


해외 나가면 다들 그렇게 도우면 산다.


그래도 직원들에 대한 공항 업무 지식은 어떻게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는데, 여행을 다녀가는 직원 들이 본인의 휴가를 미뤄가며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기도 했고 여기 저기 전화를 돌려가며 젖 동냥 하듯 미주 내 타 지점 지점장님들과 베테랑 직원들의 도움도 수 없이 많이 받았다.


다시 돌아가, 거의 하루의 휴일도 없이 6개월을 보내다 보니 맘 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지쳐만 갔다. 또한,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연 도착으로 인한 승객들의 불만 접수를 처리하는 것도, 호놀룰루공항의 노후화로 인한 각종 기기 고장에도 지쳐만 갔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 어느 정도 직원들의 업무 스킬도 향상되었고 조업 환경도 안정화 되어가고 있으니 딱 하루만 쉬자고. 부임 후 처음으로 관광객처럼 와이키키 해변을 즐기며 가족들과 외식이라도 하자고.


오랜만의 늦잠으로 기분이 상쾌해진 상태에서 Nordstrom 백화점에 있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아내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직원들이 큰 문제없이 항공편을 핸들링 하고 있었으며, 잇따른 나의 전화에 “이제 그만 물어보시고 쉬세요.”라는 핀잔을 들으면서 여유롭게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직원과의 마지막 통화가 끝난 지 채 30분이나 되었을까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그냥 단순한 불만 손님 응대 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서 휴대폰을 손에 든 순간 다급한 직원의 목소리가 큰소리로 울려 퍼졌다.


 “지점장님! 승무원이 Show-up을 하지 않고 있어요! 비행기 지연될 것 같아요.”


“뭐라고? 그럼 승무원께는 연락드렸어? 도대체 왜 그런거야? 승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상황은 이랬다. 조업 직원이 매일 같이 운항승무원과 캐빈승무원의 셔틀버스 픽업 시간을 항공기 운항 시간에 맞추어 호텔측에 전달하는 절차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만 그 직원의 실수로 지연 도착한 항공기의 출발시간을 승무원 셔틀버스 픽업 시간으로 잘못 기재하여 팩스를 송부하였고, 승무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L/O(Lay Over) 호텔로 전화를 했다. 일단 기장님과 캐빈매니저께 상황을 다급히 설명 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비행 준비를 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는 식당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떠나는 내 뒤로 “운전 조심해! 하루 쉬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미친 듯이 과속으로 운전을 하며 전화를 사방으로 돌렸다. 일단 직원들에게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간의 거짓말을 지시했다. 지점장도 없는 상황에서 신입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해당 내용을 사실대로 설명을 하게 되면 그 여파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승무원 셔틀버스가 고속도로 상에서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공항 도착이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 드리라 지침을 주었다. 그 후, 캐빈승무원들의 준비 사항을 다시 체크하고 셔틀버스 재배치 시간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캐빈매니저와의 통화에선 최대한 승무원들의 비행 준비 시간을 줄이고자 기내식 준비사항 및 슬리퍼, 기내 헤드폰 등의 비치 방법을 문의하여 직원들에게 먼저 준비해 두라고 지시했다.


미친 듯이 달려 도착한 카운터는 텅 비어 있었으며, 이미 손님들은 수속을 다 마치고 게이트로 이동한 상태였다. 보안검색대 라인을 확인해 보니 미 국내선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승무원 전용 통로는 이미 시간이 지나 TSA 직원이 철수하여 닫혀 있었다.


일각이 천추 같은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승무원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인사를 드리고 승무원을 보안검색대의 Expedite Lane으로 안내했다. 운 없게 그날 따라 그 줄도 상당히 밀려 있었다. 급히 앞쪽으로 이동하여 AOA Badge를 보여주며 TSA 직원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끼어들기를 해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그는 내 사정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그건 너네 항공사 사정이야. 난 그럴 권리가 없어. 필요하다면 네가 줄 서 있는 승객들에게 직접 양해를 구해야 해.”


이런 무심한 미국인들.. 


급히 영어로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승객 여러분. 저는 OO항공의 지점장입니다. 오늘 우리 항공편 승무원들이 사정이 생겨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지금 저희 비행편은 지연이 되고 있습니다. 제발 빨리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도록 양보를 부탁드립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미국인들..


모세의 기적처럼 손님들은 조용히 길을 비켜주었다.


그리고 최단 시간 내에 승무원들은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였다. 미친 듯 달려간 6번 게이트는 호놀룰루공항의 가장 좌측에 위치해 있었다. 매일 같이 다니던 그 길이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도착하자 마자 손님들 반응을 살폈다.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현재 승무원들은 공항에 도착하여 게이트로 이동중에 있으며 곧 항공기에 도착하여 안전하게 준비를 마치고 여러분들을 모실 예정입니다. 기다려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정확히 1시간 4분 지연이 되어 출발했다. 본사에는 지점의 잘못으로 지연이 되었다고 솔직히 이야기를 했고 복합 지연 코드 중 54분은 호놀룰루공항서비스지점의 실수를 표시해 주고 있었다. 한국의 본사 출근 시간이 되자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사실을 적시하여 보고서를 작성해 송부하라는 내용이었고 경영층에도 항공편 지연 관련 보고가 되었다는 내용도 전달 받았다. 섭섭하게도 직원들과 조업직원들은 웃으며 사담을 하는 가운데 난 최대한 담담함을 유지하며 보고서를 써 내려갔다. 시간대별로 지연 상황을 설명하고 마지막엔 모든 책임은 지점장에게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일의 시간이 흘렀다. 본사에서의 진행상황이 궁금했는데 결론이 났단다. 지점장에 대한 인사소위원회를 개최 검토 예정이었으나, 최대한 사정을 감안해서 경위서 제출로 갈음하고 임원 경고의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실무자의 말을 들으며 그나마 안도했지만 화가 났다. 실수한 조업 직원에 대한 화가 아니었다. 왜 하필 하루 쉬는 날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지연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자책이었다.


다시 하루도 쉬지 않았다. 수요 감소로 인해 항공편이 주 5회로 줄어들어 불가피하게 쉬는 날이 생길 때까지 거의 1년 이상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시차를 무시한 한국 직원들의 문의 전화를 야밤이고 새벽이고 수 없이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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