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C Aug 28. 2022

11.비정상 비정상 비정상 #2  (노랑 바리게이트)

하와이에서의 기록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데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비정상 상황이 거의 매일 발생하였고 삼재가 꼈는지 개인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없을 정도였다.


그날은 편안히 손님들의 보딩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가나 싶어서 안도하는 맘으로 게이트에서 항공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Load Sheet을 들고 기장님 사인을 받던 조업 직원이 사색이 되어 튀어 나왔다.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서 W&B를 재점검 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친구 조업사에서 급히 채용한 직원이라 기초 교육을 받고는 혼자 근무한 지 몇일 안된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지점에서 직접 W&B를 수행하였기에 (지금은 본사의 Operational Control Center에서 한다.) 일정 시간 교육 및 시험을 통과한 직원이 자격증을 받게 되고 그 유일한 직원이 처리를 해었다.


간혹 LMC(Last Minute Change, 출발 직전 가방 숫자의 변동 등으로 인한 항공기 무게 변경 반영)도 발생하였지만 그간 큰 문제가 있진 않았었는데 드디어 제대로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부임 전 해당 교육을 받았기에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았지만 항공기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하에서 게이트에서 손님들 안내에 매진하고 있었기에 담당 직원의 말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가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엑셀로 계산을 마친 그 친구가 하는 말.


“언포츄네이틀리, 위 해브 투 테이크 아웃 투 컨테이너 롸잇 나우. 에어플래인 이즈 투 머치 헤비”


‘뭐라고? 가방이 너무 많아서 비행기가 무거우니 AKE 컨테이너 두개를 빼야 한다고?’


컨테이너 하나에 통상 30~40개의 가방이 탑재되기에 최대 80여개의 가방을 하기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인당 2개의 가방을 수속했다면 거의 40명 분의 승객 가방을 내려야 하는 것이었다. OMG. 뭔가 느낌이 이상했지만 직접 계산을 해 볼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오케이 그렇게 해.” 하고는 정말로 컨테이너 하기를 지시했다.


그렇게 약 30여분이 지연된 항공기는 결국 Push Back을 했다. 다시 꺼낸 가방들은 다행히 여기 저기 항공사들의 도움으로 몇 개씩 나누어서 일본, 중국, 동남아, 한국으로 Rush Bag(타 항공사로 남겨진 가방을 보내는 방식. 통상 항공사들끼리 서로 도움을 준다.)  처리 했다. 그럼에도 컨테이너 하나가 남아서 경쟁사 지점장에게 부탁을 했고 그는 자리가 빈다며 흔쾌히 우리 컨테이너를 통째로 가져가 당신네 비행기에 실어주었다.


이후에 복기해보니 그 직원 녀석 실수한 거였다. 가방 무게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무게 초과로 계산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단 한 개의 가방도 내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업사와 회의를 통해 W&B를 수행하는 직원은 좀 더 채용에 신경을 쓰고 2명 정도를 충원하여 서로 보조하며 업무를 수행하게 절차를 바꾸었다.


또한, 재계산 후 L/S를 재 출력해야 하는 경우에 대비해 소형 프린터를 사서 게이트 백에 넣어 다니게 지시했다. 물론 슬쩍 잉크는 있는지 A4용지는 가지고 다니는지 내가 직접 점검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또 발생했다. 하필 카운터에서 제일 먼 게이트가 배정된 날 W&B 재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프린트를 열었으나 고장이 났는지 그것마저 되지 않았다. 결국 사무실에 홀로 남아 있던 직원에게 구두로 설명해주고 출력하여 뛰라고 했고 중간에 바통 터치하듯 내가 직접 받아서 뛰어 들어가 기장님의 사인을 받고 온타임에 도어 클로즈 한 적도 있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100년이 넘은 호놀룰루 공항의 노후화가 사람 참 힘들게 했다.


일단 국제선 국내선이 한 터미널에서 혼용되는 구조라 국제선 항공편에서 하기한 승객이 일반적인 동선을 따르지 않고 슬쩍 옆으로 빠져서 걸어 나가 버리면 국내선 승객처럼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지 않고 터미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밀입국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손님의 이동 동선 안내는 항공사의 의무로 규정해 놓고 있기에 항공사가 직원을 고용해서 여기 저기를 막고 위키위키셔틀버스를 탈 수 있게 손님을 안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이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지만 벌금때문에 사실 너무 신경이 많이 쓰였다.


왜 꼭 셔틀버스를 타야 하느냐 난 저쪽으로 걸어 나가겠다며 우기시는 분들도 있었고 몰래 빠져나가는 손님을 걸러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승객 한 명당 수 천불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JAL이 사용하는 동선 구분용 노란색 바리케이드를 발견하고 본사에 동일 제품의 구매를 요청했다. 처음엔 본사도 이해하지 못하고 왜 구매를 해야 하는지를 계속 설명해야만 했다.


수차례 사진을 첨부한 상황 보고서를 작성 후 예산을 지원받아 구매하였고 너무 그 바리케이드가 고마워 하단에 네임펜으로 몰래 영어 이름과 구입한 날을 기록해 두었다.


부임 후 3년이 지나고 하와이를 다시 여행했을 때는 뒤늦은 격벽 공사가 마무리되어 더 이상 바리케이드 따위는 필요가 없어 보였지만, 탑승 직전 게이트 멀리 한 켠에 놓여 있던 낯익은 노란색 물체가 눈길을 끌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다가가 보았더니 먼지 사이로 내가 적어 놓았던 글씨가 보였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너무 반가워 급히 같이 셀카를 찍었다.


‘고마워! 너 때문에 한번도 벌금을 낸 적이 없어. 내 친구 노랑 접이식 바리케이드야!!!’


(물론 저 바리게이트마져 옆으로 밀고 나간 승객들도 있었지만.. 또 다른 임기응변으로 넘겼다.)



작가의 이전글 10.비정상 비정상 비정상 #1 (모세의 기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