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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Sep 02. 2022

15.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3(비상구와 32Kg)

하와이에서의 기록

개인적으로 홍보팀은 근무해 보고 싶지 않다.


필자가 근무했던 노사협력팀도 대다수가 기피하는 부서이지만 홍보팀도 기피대상에 들어갈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를 만나 억지로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소규모 인터넷 신문부터 지방신문 기자까지 취재 질문을 이어가며 회사의 약점?을 빌미로 괴롭힘을 당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출근 후 사내 인트라넷을 연 순간 홍보팀의 직원의 메일을 눈에 들어왔다. 모 유명한 언론사의 기자인데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가니 올 때 잘 모셔 달라는 내용이었다. 홍보팀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최대한의 도움을 주어야만 했다. 그들에게 비상구석을 배정하였다. 


비상구 좌석의 배정 기준은 만 15세 이상의 한국어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며 비상구나 탈출용 조작 장치에 대한 접근을 위한 두 손 및 양다리의 민첩성이 충분해야 하며, 비상 탈출 시 캐빈승무원의 안내 하에 승객들의 탈출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수속카운터에서 직원이 해당 내용을 친절히 설명 후 보딩 패스까지 정상적으로 발급되었고 라운지쿠폰도 제공하고 Expedite Lane 도장까지 나름 친절히 찍어드렸다.


그런데 탑승 후 문제가 생겼다. 신부가 손목에 작은 깁스를 하고 있던 것이 캐빈승무원의 눈에 띈 것이다. 캐빈매니저는 자리를 옮겨드리겠다고 했고 수차례 비상구석의 배정 기준을 설명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호출 당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고 최선을 다해 좋은 자리로 배정 드리고 싶었지만 비상구석은 외관으로도 건강상태에 문제가 없으셔야 합니다. 아마 저희 수속 직원이 손님께 여쭈었을 때 문제 없다고 하셔서 미처 깁스를 하셨는지 확인해 보지 않고 비상구석을 배정 드린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만 지금이라도 레그룸이 유사한 좌석인 벌크석으로 옮겨드릴 테니 이동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출발직전의 주변 승객들의 짜증스러운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와이 도착할 땐 그 상태로도 분명 비상구석에 앉아 왔고 깁스 한 손목으로도 얼마든지 비상탈출 시 문을 열 수 있다는 등 끈질기게 고집을 부렸다.


항공기 지연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기장님께 자세히 설명드린 후 출발 후 조치하겠다는 말씀을 듣고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사무실 복귀 후 홍보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지점장님. 그 분 저희에게 강하게 요청을 해서 최대한 티켓도 할인가로 제공해 드렸고 라운지와 벌크석까지 제공 드렸는데 인천공항에서도 말도 안되는 요구로 힘들게 하더니 올 때도 그렇게 억지를 부리셨네요. 제가 대신 사과 드립니다.”


하와이를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벌크석에 앉아와 놓고, 또한 거의 무료로 비행기를 타고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길에서도 어찌 그렇게 젊은 친구들이 뻔뻔스러웠을 수 있었을까. 만약에 사석에서 만난다면 인생 선배로서 호통을 쳐주고 싶었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몰염치와 철면피로 시작한 신혼여행에서 둘만의 장미빛 미래를 약속한다면 그건 불공정이 아닐까.


갑질은 버릇이 된다. 잘못하다간 세습이 된다...


 한참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절 한 손님이 카운터에서 큰소리를 냈다.


아기가 하와이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신종플루에 감염되었고 현재 타미플루를 처방 받아 복용하고 있지만 5일이 되지 않아 전염성이 있는 단계라는 걸 마지못해 밝히며 한국으로의 복귀를 희망했다. 장시간 탑승 불가를 설명드렸으나 여의치 않았고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본사의 간호사의 의견을 덧붙여 지속 설명을 드렸으나 아기 아빠의 억지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회사 비행기에서 옮았으니 우리도 타고 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켜도 잘못 없지 않나요?"


땀을 흘리며 하와이로 오는 비행기에서 옮았다고 볼 명확한 증거도 없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 열꽃이 피어 안쓰러운 모습의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오히려 더 타미플루의 복용기간을 명확히 지키고 한국으로 복귀하시는게 맞다고 말씀드려도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주변에 이 상황을 종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있었다면..


결국 한국에서 취침 중에 있던 유관 팀장님께 전화를 드려 사정 설명 후 직접 통화를 하실 수 있게 조치를 취했고 전문가의 의견을 상세히 들은 후에야 맘을 접고 몇일 후 귀국편으로 모실 수 있었다. 다행히 치료가 잘 진행되었는지 환한 미소로 옹알이를 하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흐믓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기내에 베시넷 설치를 도우며 아기와 눈을 마주치고 잠시 웃었다.


한 대만 국적의 여자 손님이 커다란 기타를 들고 탑승을 원하셨다. 크기가 기내 반입이 가능한 사이즈를 넘어서 보였기에 정확히 줄자로 재서(시시비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보여드려야 한다.) 반입 불가능함을 설명 드리고 게이트에서 직원이 받아서 안전하게 벌크칸에 탑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으나 끝까지 기내로 가져가겠다고 우기는 거다.


정말 거의 2시간을 그 손님과 실랑이를 하였고 결국 우리 비행기를 타지 않고 타 항공편을 이용해 한국 귀국 후 지점에 장문의 불만 레터를 보낸 적이 있어 황당한 적도 있다. 후..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 거라구요.


수하물 무게 초과로 인한 불만은 거의 매일 발생했다. 어떻게 들고 왔는지 40KG에 육박하는 짐을 혼자 두개나 들고 오셔서 초과 수하물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무조건 탑재해 달라고 억지를 쓰는 경우는 허다했고 소리를 지르며 가방의 리팩킹을 거부하고 타사는 다 받아 주는데 이 항공사는 왜 안해 주냐며 억지를 쓰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으면 리팩킹 후 무게 초과로 남은 짐을 몇달 후에 찾아가겠다며 사무실에 맡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손님께는 이길 수 없다. 결국 땀에 절은 유니폼과 함께 한평 남짓의 창고에 짐을 놔둘 수 밖에 없었다.


제발 건장한 성인 남자가 들어봐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무게라면(통상 32KG) 초과 비용을 내더라도 한계점 이상으로 짐을 싸지 않았으면 좋겠다. (3대 500 치는 사람 제외)


우리가 서 있는 카운터의 아래쪽,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며 가방을 옮기는 조업 직원들은 하루종일 몇백개의 가방을 컨테이너와 기내에 옮겨 실으며 허리가 다 망가져간다.


그들과 퇴근 후 파스냄새 나는 치맥을 함께 해 보았기에 안다.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남자 배우는 키가 컸는데 공항 마감시간이 임박하여 도착한 후 이미 배정이 끝난 비상구석이나 벌크석을 바꾸어서라도 무조건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하여 거절하자 몹시 화를 내셔서 평상 시 화면 속 멋진 이미지가 180도 바뀐 적도 있었다.   


반면, BMW i8을 타고 다니는 유명한 여배우 한 분은 화보촬영 후 귀국하는 편에 리팩킹 요구를 선선히 수용하고 매니저를 시키지 않고 직접 가방을 열어 옷 등을 옮겨 담고 물건을 이 가방 저 가방에 나누는 걸 보고는 겸손함에 놀라기도 했드랬다..


철마다 여행을 오는 러시아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KHV(하바로프스크)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하와이로 오곤 했는데 모두 비지니스석에 가방은 Rimowa에 몸에는 금붙이들이 많이 걸쳐져 있었다.


그 가족들은 늘 카운터 마감시간 직후 공항에 도착하는 나름의 루틴이 있었다. 두어번은 어렵게 수속을 해드리며 다음번엔 늦지 않게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은 수속 마감시간을 30분이나 넘겨 도착했다. 항공기 지연을 시키지 않는다면 탑승이 불가한 시간이었기에 여행이 불가함을 안내드렸다.


“손님. 가족들과 여행하시는데 불편한 상황이시겠지만 누차 말씀드렸듯이 마감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는 탑승이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내일 항공편으로 여행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 말고 당신보다 더 높은 사람 나오라고 해요.” “저는 회사를 대표해서 나와 있는 지점장이므로 현지에 저 보다 높은 사람은 없습니다.” 규정을 프린트해서 보여드리고 수 없이 반복해서 설명을 드려도 강한 불만을 제기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러면 곤란해요. 탑승 거부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대신 한 마디만 덧붙이면 내일도 마감시간 후에 나오시면 또 탑승이 불가능 할테니 진심으로 일찍 나오시길 권유 드립니다.”


사실 속으로는 겁이 났다. 


하지만, 직원들 앞에서 원칙을 지키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그간 Late Show-up 손님들로 인해 여러모로 너무 힘들었던 터라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았다.


러시아 가족 일행은 다음날 카운터 마감시간 30분전에 공항에 도착했고 최대한 친절히 모셨다.

그러나 주재기간을 마감하는 시점까지 그들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떱. 단골손님을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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