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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Sep 06. 2022

16.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4(남의 짐, 화장실)

인천공항에서의 기록


인천공항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있다.


당시 모 항공사는 B767 항공기로 북미의 장거리 구간 데일리 운항을 하고 있었으며 거의 매일 같이 만석인터라 승객들 사이에 Overhead Bin 공간을 먼저 차지하고자 하는 눈치싸움이 치열했었다.


그 날 난 해당 항공편에서 FDM(Flight Deputy Manager) 역할을 수행 중이었고, 기내앞에서 여기 저기 손님을 살피고 Overhead Bin의 가방들이 안전하게 놓여있는지도 확인하고 있었다.


통상 국적기에서는 승무원들이 승객들 짐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도와드리지만 그 항공사의 캐빈승무원은 그런 요구를 받으면, “내가 왜 해야 해? 당신이 직접 해. 난 안전 보안 요원으로 탑승 한거지 당신 가방 들어 줄려고 여기 있는거 아니여.”라고 빠른 영어로 대답하곤 했다.


 그날도 유사한 상황이 이어졌고 듀프난 좌석을 해결하기 위해 직원 한명이 기내에 들어간 순간 승객 한 분의 도움을 요청받았다. 아기 엄마인데다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셨기에 직원은 이미 꽉 차버린 Overhead Bin의 중간에 놓여있던 면세품 봉투를 옆으로 밀어 간신히 공간을 만들어 백팩을 올려서 넣어드리고는 뒤로 돌아서는데 한 중년 남성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왜 허락도 없이 남의 짐에 손을 대는 거야!” 


인근에 있던 나 또한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해당 직원은 놀랐을테지만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그 승객은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면세점 봉투를 꺼내어 바닥에 내팽겨쳤다. 어떻게 구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는 담배 3보루가 들어 있었는데 바닥에 쾅 하고 소리를 내며 내팽겨쳐지는 바람에 근처의 대다수 승객들이 토끼눈으로 그 승객을 바라보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직원의 안위가 걱정되어 나 또한 그쪽으로 이동하여 승객에게 진정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그 승객은 더욱 더 큰 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캐빈매니저가 다가와서는,


“왜 그러셔?. 뭐가 문제이신대?” 라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자기편의 도움을 받는구나 생각한 손님은 의기 양양하게 이랬어, 저랬어 하고 (통역을 거쳐) 답변했다.


한국계 항공사에서만 근무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 다음 장면이 완전 핵 사이다였다.


“흠.. 손님 Anger Management가 안되시네. 내가 기장님 모셔 올 테니 잠시 기다리셔.”


 잠시 후 기장이 나타나서는 승객과 몇 마디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는 “캐빈매니저 이야기가 맞네. 손님 분노조절장애가 있는것 같으셔. 이런 상태로는 비행기 못타겠으셔. 그러니 이제 그만하셔. 탑승 거부 할 수도 있을니껜.” 라고 작지만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 파악이 안된 그 승객은 여전히 씩씩대며 고성을 질렀다.


드디어 기장이 마지막 통보를 했다.


잘 들으셔. 나 이 비행기 기장이고 최종 책임자여. 손님 가방 지금 내리라고 지시할 수 있고 즉시 당신에게 하기를 요청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진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꺼셔. 지금 당장 직원들하고 다른 손님들께 사과하셔. 안 그러면 당장 공항경찰대를 불러서 질질 끌고 나가게 할꺼셔!”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건지 그 승객은 잠시 여기 저기를 쳐다보며 분위기를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진짜 내가 탑승거부 당하는게 가능해요?" "손님. 주변 분위기 보세요. 지금 댄한공이나 아샤나 탄거 아니고 외항사 타셨잖아요. 아까부터 계속 말씀드렸듯이 이 비행기에 그렇게 행동하시면 진짜 문제가 될 꺼라니껜요."


결국 승객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먼 허공을 응시한 채 “아임 쏘리.” 외마디를 내뱉고는 말 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조용히 항공기 문을 닫고 출발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 하나는 역시나 외항사 관련 이야기 인대, 이 에피소드는 불만 건은 아니지만 웃프기도 하고 다소 서글픈 이야기이다.


 밴쿠버를 출발한 비행기가 얼마 비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긴급히 출발지로 회항을 한 사건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한 한국인 남성 여행객이 화장실을 사용했고 이어서 그 화장실을 사용한 중년의 캐빈 승무원이 밖으로 나와서 하는 말이


“오 마이 갓! 나 도저히 비행 못하겠어. X냄새가 너무 나서 어지러워. 나 일 못해.” 


기장이 그 이야기를 전달 받고 즉시 회항을 결정한 것이다.


승무원 휴식시간 규정으로 인해 승무원 전원을 교체한 후 거의 24시간이 지연되어 한국으로 오고 있는 항공편의 인바운드에서 손님을 핸들링 하는 업무를 부여 받았다.


부지런히 입국하는 손님들을 안내 드리고 있는데 드디어 그 손님이 게이트 밖으로 나오면서 갑자기 우리 회사 유니폼을 입은 다른 여직원 앞에 서더니 울먹거리며 이렇게 하소연 하시는 게 아닌가.


 “아이고 반가워라 한국 사람. 내가 흑흑.. 정말 흑흑.. 얼마나 나쁜 짓을 했다고. 흑흑.. 그냥 배가 아파서 화장실 한번 쓴 것뿐인데. 흑흑.. 나를 무슨 죄인 취급하고. 말도 통하지 않아서 얼마나 답답했는데 이제 이렇게 한국 오니깐 너무 좋네. 다시는 외항사 안타고 우리나라 뱅기 탈래요.”


 섣부른 위로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여직원의 옆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구. 그러게 한국 사람에게는 그저 말 잘 통하는 국적항공사 이용하는게 최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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