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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Sep 19. 2022

18.Tarmac Delay (전화위복)

하와이에서의 기록

부임 2년 만에 휴가는 아니지만 하루 쉬는 날을 만들었다.


하와이에 살아서 좋겠다는 소리는 거의 매일 듣고 살았지만, 거주를 하는 것과 여행은 너무도 다르기에 몇 년간 가지 못한 가족 여행이 간절했다.


며칠간 꼼꼼히 준비해서 비행기를 띄우자마자 바로 하와이언 항공을 타고 마우이로 출발을 했다. 몇 년만의 가족 여행인지 가슴이 두근댈 지경이었고 딱 한 편의 비행편만 지점장 없이 직원들이 잘 띄워주면 그만이었기에 걱정도 덜했다. 더군다나 점점 베테랑이 되어가고 있는 직원 네 명 전원이 출근하여 항공편을 핸들링하기로 스케줄을 조절했기에 더욱 든든했다.


건너 건너 이야기만 들어본 마우이의 맛집도 찾아가고 오하우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해안가를 드라이브하며 첫날 오후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조식도 맛있게 먹고 하루 종일 물놀이 후 호텔에서 편히 쉬다가 저녁 비행기로 복귀하는 1박 2일의 짧지만 긴 여정이었다.


무사히 여행의 첫날 오후를 계획대로 보내고 이튿날 만족스러운 호텔 조식을 마치고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연어샐러드를 오리엔탈 소스에 찍어 막 입에 욱여넣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나는 현장에 없었고 직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한다. 그날 항공편은 약간 지연되어 도착하였지만 출발편은 문제없이 수속을 진행했고 정상적으로 보딩 사인까지 받아 승객 전원이 착석을 완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빌어먹을 호놀룰루 공항의 수하물 벨트 고장으로 아직 항공기로 도착하지 못한 40여 개의 가방을 찾아 헤매느라 출발 지연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STD(Standard Time of Departure)을 약 1시간 경과 후 간신히 가방을 모두 찾아 탑재를 완료하였고 안도의 숨을 쉬며 최종적으로 Door Close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까지 들었던 나는 이제야 아들 녀석과의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들뜨기까지 했었다.


모든 상황을 재차 확인하고 캐빈 매니저가 문을 닫기 바로 직전.. 갓난아기를 안고 있던 아기 엄마가 사색이 되어 도움을 요청했다.


“사실 아까서부터 아기가 미열이 있었는데 해열제를 먹이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마가 펄펄 끓고 있어요. 해열제도 떨어졌는데.. 저 지금이라도 내릴 수 있을까요?”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는 울상이 되어 있었고, 아기의 상태가 아무래도 심각해 보여 캐빈매니저와 직원들은 결국 하기를 결정했다. 아기의 상태에 따라 자칫하면 비행기의 회항도 우려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손님은 아기를 안고 내리면서 수속한 가방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 속에 해열제가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손님이 탑승 후 하기를 하게 되면 한국에서는 국정원에 보고하고 손님이 착석했던 좌석에 대한 보안검색 등을 진행한다. 역시나, 보안에서는 둘째가라할 미국에서도 TSA와 폭발물 탐지반에 보고 후 지침을 받아야만 한다.


다행히도 아기 엄마라는 사실에 TSA는 별다른 보안 검색을 진행하지 않고 항공기 출발을 허가했고, 이젠 그 손님이 수속한 3개의 가방만 찾아서 내리면 항공기는 무사히 하늘을 날아 오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백택 정보를 통해 컨테이너의 위치를 확인하고 수속한 3개의 가방을 꺼내기 위해 화물칸에서 컨테이너를 언로딩 하기 시작했다. 주인이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방만 탑재되는 무주수하물은 안전/보안 이슈로 인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하필 맨 안쪽에 위치해 있던 컨테이너를 꺼내서 간신히 첫 번째 가방을 찾았다. 그리고는 다행히 금세 두 번째 가방도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시점은 승객들이 항공기에 탑승한 지 이미 3시간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가방은 아무리 뒤져도 적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위치에서 발견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수하물 벨트가 고장 나며 조업직원들이 지하에 있는 로딩 지역의 한 귀퉁이에 숨어 있던 가방들을 어렵게 찾아 탑재하는 과정에서 컨테이너 번호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탓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문제는 그 세 번째 가방에 아기 해열제가 들어있었고 비행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4명의 베테랑 직원들은 항공기의 지연과 복합적 비정상 상황으로 인해 점점 지쳐갔고 난 본사의 전화를 받으며 최대한 빨리 조치하고 있다고 응대를 해 나갔다.


 하지만, 전 직원이 모두 동원되어 짐을 찾고 또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하는 상황에서 엄청난 중압감이 몰려왔다.


승객 탑승 후 거의 3시간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TARMAC DELAY(항공기가 이착륙하는 활주로, 유도로, 주기장 등에서 기상 등의 사유로 승객들이 기내에서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경우 30분마다 하기할 권리를 안내하고, 음식물 제공은 물론 국제선의 경우 4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법으로 강제함.)는 또 다른 비정상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놀룰루국제공항은 그 당시 국제/국내 혼용 공항으로 TARMAC DELAY 시 승객들이 하기 후 화장실조차 갈 수가 없이 스탠션을 치고 직원들이 몸으로 막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또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11편 '노랑바리게이트' 참조.)


 "정말 딱 하루만 편히 쉴 수 없냐! 이럴 거면 이젠 다시는 여행하자는 소리 하지 마!"


라는 남편에 대한 화가 아닌 지긋지긋한 경험상의 상황에 대 화를 내는 아내와 내 눈치를 보며 수영장 한편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들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주수하물을 실어 보낼 수는 없었다. 4시간이 되기 전까지 컨테이너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만약 항공기 사이드에 있었다면 직접 내 눈으로 일일이 확인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지친 직원들이 가방을 찾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 마지막 가방을 두고 나는 오하우로부터 수십 킬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우이에서 최종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다시 한번 전수 조사를 지시할 것이냐. 아니면 탑재되지 않았다고 추정하고 항공기를 밀 것이냐..


잠시 고민 후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지침을 전달했다.


“화물칸 닫고 비행기 밀어! 다 뒤졌는데도 없다면 분명 그 가방 비행기에 실리지 않았겠지.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다 책임질게. Push Back 하자. 


내 지시를 기다리던 직원의 워키토키를 향해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들려온다.


"빨리 비행기 밀어요! 밀라고요!!"


“다만,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아기 엄마인 직원 A는 손님 성향에 맞추어 옆에서 밀접 케어 해 드려. 직원 B는 엄마와 아기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최적의 호텔을 수배해 드려. 직원 C는 빨리 시내로 나가서 약국을 찾아서 아기 해열제와 기저귀 등을 구입해서 가져다 드려. 직원 D는 다시 한번 수하물 지역을 서치하고 그래도 가방을 못 찾고, 혹시나 아주 혹시나 그 가방이 비행기에 탑재되어 있었다면 한국 도착 후 즉시 알려 달라고 전달해 둬.”


그랬다. 그날 난 그냥 모험을 했다.


TSA나 국정원이 알게 되면 심각한 안전/보안 규정 위반으로 회사는 물론이거니와 책임자인 나에게도 엄청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냥 그날은 내 운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혼자 쓸쓸히 놀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도 더 이상 지연을 끌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도착 후 한국에서 가방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아기 엄마는 무사히 익일 비행편으로 귀국했다.


그날 오후 아내와 아들의 눈치를 보다가 계획보다 일찍 오하우 섬으로 비행편을 바꾸어 돌아왔다. 그리곤 지연 경위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사에 제출했다. 그날 집안 분위기는 암울했고 아내는 아들이 잠든 후 내게 더 이상 하와이에서 여행은 계획하지 말자고 선언하며 뒤돌아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이 흘렀다..


아기 엄마는 한국 도착  호놀룰루공항서비스지점 직원들의 친절함에 대한 칭송 편지를 접수해 주셨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사보에 싣고 싶다는 홍보팀 연락을 받았다.


웃고 있는 직원 네 명 직원들의 사진을 DSLR 카메라의 아웃포커싱 앵글로 찍어 보냈고 결국 우린 그 달의 우수지점으로 선정되어 사보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그녀가 낯설었지만 아기 엄마에게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 감사함을 표현하였다.


물론 그분은 그 상황을 마우이에서 함께 했던 지점장이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엄마와 아기가 모두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덕담도 마져 잊지 않았다.


보안규정을 위반했고, 아기 엄마의 불만 접수도 예상되는 상황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혹자는 이런 상황을 전화위복이라고 하겠지만..


다시 한번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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