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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Oct 09. 2022

23.민간항공사의 조종사는..

일반직이 바라본 운항승무원 이야기

민간항공사 운항승무원이 되기 위한 과정들과 관련 자격증 취득 방법, 소요비용 및 기간을 설명하고 있는 책자는 수없이 많고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으니 본지에서는 설명을 생략하도록 하자.


어렵사리 항공사에 입사 후 과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술하고 싶다.


초기 조종훈련생으로 입사 후에도 운항훈련경험절차에서 요구하는 지난한 지상학술 훈련과 Simulator 훈련과정을 거쳐 무사히 최종 심사를 통과하게 되면 소형기 부기장으로 어깨에 3줄짜리 견장을 달게 된다.


훈련과정을 마쳤으니 더 이상 교관이 동승할 필요는 없지만 아직은 초보 부조종사이기에 비행시간이 많은 고경력 기장과 함께 편조가 된다. 그리고 오히려 기장님의 비행경력이 높다는 이유로 접근절차 등이 다소 어려운 등급이 낮은 공항을 위주로 비행하게 된다.


소형기는 주로 국내선과 중단거리 노선에 투입되기에 짧은 구간에서 이착륙 경험을 충분히 하며 기량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과, 미주와 유럽 등의 장거리 비행에서 오는 시차 부적응은 거의 없다는 점, 집안 대소사와 지인 부모님의 부고 소식에도 다소간은 부담 없이 응할 수 있겠지만 유명 관광지에서 장시간 체류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그런 기회는 운항승무원에게 주어지는 별도의 혜택 (확약 가능한 비즈니스 클래스 제공)을 통해 여행으로 즐겨야만 한다.


또한, 국내의 계절별 다변하는 기상상황 하에서 비행을 하기 때문에 봄에는 미세먼지와 저시정, 여름엔 장마철의 폭우와 바람, 가을에는 수시로 발생하는 태풍, 겨울엔 폭설이 쏟아지는 악기상을 맞아 오롯이 130여 석의 소형 비행기 조종석 내부에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으며 항공편이 지연되면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다시 체크리스트를 들고 비행 준비를 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미 식어버린 도시락을 입에 쑤셔 넣으며 내가 이러려고 조종사가 되었나 하는 생각을 수 없이 하게 될 것이다.


서서히 국내 지방 도시에서 보내는 하룻밤의 레이오버도 지겨워지고 순간 풍속이 30 knots를 넘나드는 강한 측풍에서도 기장님과 호흡을 맞추며 이착륙이 익숙해질 무렵, (물론 풍속에 따라 부기장에게 조종 위임은 제한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동남아의 호텔 객실에서 흔히 발견되는 Gecko에도 익숙해질 무렵이면 어느새 고경력 부기장이 되어 이제는 신임 기장님과 함께 비행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매일 같이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한편, 신입 부기장일 때는 주저했었던 "GO -AROUND!"를 외치며 적극적 조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중국, 동남아 레이오버 호텔 근처의 맛집은 이미 머릿속에 지도가 펼쳐질 정도로 완벽하게 꿰뚫게 되고 2SET Quick Turn(기장 2명, 부기장 2명)으로 동남아의 도시를 다녀오는 피곤함에도 젖어들 무렵이면 어느새 대형기로의 전환이 기다리고 있다.


해외 체류가 길어지는 대형기로의 전환은 알콩달콩 깨를 볶아야 할 신혼부부에게는 사랑하는 부인의 얼굴을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없는 최악의 신혼 생활을 선사할 것이고, 갓 태어난 딸의 통통한 볼살을 호텔 방 안에서 동영상으로 감상해야만 하겠지만, 그나마 휴일을 몰아서 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늘어난 비행시간과 비행수당 단가가 가정경제에 일말의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소형기의 김포 제주(GMP/CJU) 구간을 예로 들면 1시간 5분 정도의 비행시간이 쌓이지만 대형기에서 인천 엘에이(ICN/LAX) 구간은 편도에만 10시간이 넘는다. 그 안에 야간수당, O/T 수당, 화물기 별도 수당까지 더해지기에 통상 중소형기 대비 대형기의 급여 수준이 높다.   


미주의 대도시에 익숙해지고 때로는 Charter 항공편을 통해 북유럽을 일주일간 레이오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거나 중동지역에 국방부 전세기 운항편을 비행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고 각 국가의 미터법이냐 마일법이냐를 짧은 시간 내에 조종석에서 계산하며 헷갈리는 경험을 할 것이고, 졸음을 참으며 밤을 새우는 고됨도 겪어야 하고, 특히 화물기의 경우 지연이나 결항으로 인해 복항편이 늦어져서 예정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으며, 연로하신 부모님의 부고에도 당장 돌아올 수 있는 비행편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가  호텔 방 안에서 한국을 향해 큰 절을 올려야 할 수도 있다.


각 국가별 관제사의 발음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고,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기장님과의 장시간 비행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겪다가 몰래 팀장에게 언매치(성격 등의 사유로 일부 기장이나 부기장을 상대로 같은 편조를 넣지 않도록 요청하는 제도)를 신청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해외에서 공수해오는 유명 브랜드의 저렴한 아기 옷`과 아울렛 물품들은 조종사 남편을 둔 아내의 지인들에게 부러움을 사게 할 것이다.


그래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시카고(ORD) 공항에서 단 한 번의 ATC(Air Traffic Control)도 놓치지 않고 교신하며 여러 개의 활주로 사이로 항공기가 착륙해야 하는 활주로 방향을 명확히 찾아내어 랜딩기어를 내려야 할 것이며, 시차가 맞지 않아 생기는 불면의 밤들을 어린 딸의 사진을 보며 밤새 멀뚱멀뚱 보내야 하는 힘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대형기 부기장으로서 경력도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 이제 ATPL(Airline Transportation Pilot License, 운송용 조종사 자격.)을 취득하고 기장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 PUC(Pre Upgrade Confirmation)를 통과하고 소형기 기장 승격을 어렵게 통과하면 어느새 어깨 위의 견장은 4줄이 되어있다.


익숙했었지만 오래 떨어져 살아서 다시 어색해진 소형기로 제주공항에서의 이착륙을 수 없이 반복하다가 갑자기 야밤에 전화를 받고 익일 기상악화로 인해 500시간 미만의 기장은 규정 상 비행이 불가하다는 스케줄러의 전화기 너머 소리가 반갑게 들리기도 할 것이다. CAT II/III 자격 취득 전까지는 맑은 가을 하늘 같은 상대적으로 좋은 기상하에서만 비행을 하게 되고 등급이 높아 접근 절차가 쉽다고 전언되는 공항 위주로 비행을 하며 경력을 쌓게 될 것이고 때로는 측풍이 20Knots에 Gust Wind 25Knots인 상황하에서도 고경력의 부기장의 조언을 들으며 안전하게 제주에 착륙해야만 한다.


경력이 쌓여가며 지식이 충만해지면 학술, SIM, 비행 교관이 되어 조종석의 우측에서 기장 승격 훈련생이  이착륙하는 것을 지도해야 하며, 심사관으로 선발되면 그 간의 비행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또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드디어 나에게도 대형기로의 전환 순번이 왔다.


B747 화물기는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오랜 기간 기장으로서 체득한 경험과 지식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고 상상치도 못한 화물기의 지연과 결항을 겪으며 또다시 교관으로, 심사관으로서 비행을 하다 보면 어느새 노안으로 조종석의 계기판을 바라보는 눈이 흐릿해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고, 침침해진 눈을 비벼가며 15시간 이상의 밤샘 비행을 하루 이틀의 휴식으로 회복해야만 하기에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만 한다.


엊그제는 미주로 오늘은 유럽으로 가는 비행편으로 인해 체력은 나날이 떨어져 가고 새벽과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정시 출발을 지키기 위한 공항철도 첫 편과 야간 택시에도 익숙해져 간다.


대학동창들은 이미 은퇴했지만, 60세까지 비행에서 이벤트가 없이 안전하게 업무를 완수해 왔기에 좋은 평판을 얻고 촉탁직으로 사번을 다시 부여받고 최대 65세까지 비행을 이어갈 수 있다.


드디어 65세가 되던 생년월의 마지막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과 후배 조종사들의 격한 포옹과 악수가 너무 감사하다.


더 이상 민간항공기 조종사로서 하늘을 날 수 없겠지만 안전하게 비행해 온 인생이 자랑스럽다고 느껴질 때 손주를 안고 공항 밖을 나서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 인생의 2막을 위해 CAE(세계 최대 시뮬레이터 제작 및 조종사 양성기업)의 Simulator 교관이나 국토교통부의 운항감독관에 도전해 보거나 일반적인 직장인들에 비해 많은 연봉을 받아 모아둔 자금으로 재테크를 열심히 한 아내 덕분에 편히 여생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소설처럼 묘사하였지만 한국계 FSC(Full Service Carrier) 입사 후 운항승무원의 일생은 상기 기술한 바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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