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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건 오징어 게임에서도 “너 몇 살이야?”

언어 감수성 높이기 프로젝트 1 - 트리거 설정

by Growood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을 하거나 들으면 그저 나이 확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 민감도를 점검하고 잘못된 언어생활이 있다면 반성하는 노력을 하자. 그렇다면 나이가 많은 사람도 나이가 어린 사람도 모두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할 것이다.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



오징어 게임(◯△□) 시즌 2를 봤다. 극 중 타노스(T.O.P 분)가 팀원들에게 나이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팀 구성원들에게 “너 몇 살이야?”라고 묻고 팀원들의 서열 정리를 한다. 동갑인 관계와 누가 막내인지 등을 정리하고, 사용할 언어(존댓말 또는 반말)까지 지정한다. 그래야 팀워크가 산다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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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면서 ‘아! 우리는 목숨이 걸린 죽고 사는 게임을 하면서도 (나이에 따른) 상하관계와 말투 정리가 우선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존댓말을 잘 모르는 외국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에서 이 장면을 보면 어떻게 해석할지도 궁금했다. 한국에서 “너 몇 살이야?”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은 단순히 나이를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말속에 담긴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어 또는 어휘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야 한다. 새로이 접하는 어려운 낱말이나 신조어를 외국어처럼 암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표현들을 까칠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맥락이나 언중의 심리를 살피는 것은 언어 감수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오늘은 “너 몇 살이야?”를 통해 언어 감수성을 끌어 올려보기로 한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를 묻는다는 것은 관계 정의의 시작인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나이는 그 자체로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지표다. 보통 연장자는 자유롭게 상대방의 나이를 묻지만, 반대의 경우엔 적당한 눈치와 센스가 필요하다. ◯△□ 시즌 2에서 타노스가 팀원들에게 나이를 묻고 서열을 정리하는 장면 역시 단순히 팀원 간의 인사나 소개가 아니다. 그는 언어를 통해 권력 구조를 명확하게 정리한다. 팀원 중 아무도 “타노스 너는 몇 살이냐?”라고 되묻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이 대체로 권력이 약한 쪽이 센 쪽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에 따라 언어를 다르게 사용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적은 사람에게는 반말을 쓴다. 이것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면 불과 일이백 년 전만 해도 나이가 아니라 신분이 언어를 결정했다. 아범은 나이가 많아도 신분이 낮기 때문에 아씨에게 무조건 존댓말을 써야 했다. 그렇다고 서로 존대를 했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상대보다 신분이 높으면 무조건 반말을 썼다. 그것이 당시의 세계관이었다. 이렇듯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 및 당대의 세계관을 담는 중요한 도구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를 묻는 질문은 몇 년 간 살았는지의 확인만은 아니다.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은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더 낮은 위치를 부여하는 질문이 되기도 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존중을 강요하는 명령이 된다. 나이에 대한 질문을 듣는 순간, 사회적 위치나 (나이에 맞는) 언어적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직장 내에서 상사가 묻는다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상사의 나이가 나보다 많다면 당연히 존댓말을 써야 한다. 그런데 나이는 내가 많지만 상사의 직급이 더 높을 때는 어떨까? 그래도 존댓말을 써야 한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가 나에게 반말을 쓴다면 그때부턴 복잡해진다.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언어 사용에 있어 나이를 묻는 것은 권력의 흐름을 명확히 하고,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는 일종의 서약과도 같다.


앞으로도 나이를 묻는 질문을 숱하게 접할 것이다. 질문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있다. 앞으로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을 접하면 이를 트리거로 삼아보는 것이 어떨까? 트리거(trigger)는 어떤 자극이나 사건이 특정 반응이나 행동을 일으키는 계기나 자극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감정적 반응이나 기억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사용된다. “너 몇 살이야?” 말을 들으면 그 언어가 사용된 상황과 맥락을 살펴보고 나의 언어생활 성찰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나이에 질문을 하거나 받을 때마다,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언어 사용을 다시 돌아보자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먼저 상대에게 나이를 물어본 상황이라면,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이와 언어를 기준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볼 일이다. 이런 트리거를 설정한다면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할 수 있고 언어 감수성도 높일 수 있다. 언어생활이 단순히 의사소통을 넘어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관계의 정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How old are you?”라는 명제를 단순한 나이 (차이) 확인을 넘어, 그 속에 담긴 권력 구조와 언어적 맥락을 읽어내는 트리거로 만들자. 그러면 나와 상대방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적 위계를 점검하고, 그로 인해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지 않도록 살피게 될 것이다. 상대의 나이를 묻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지 맥락을 파악해 보자. 말 한마디가 주는 힘을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무의식 중에 하는 말의 실수도 줄일 수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 존중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나이 차이가 나는데 서로 반말을 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분명 서로 존중하고 있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묻거나 답할 때마다, 자신의 언어가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을 되새기고, 나의 언어에 반영된 권력관계를 깊이 성찰해 보자. 나이로 구분되는 상하 관계, 존댓말과 반말의 공존,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을 하거나 들으면 그저 나이 확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 민감도를 점검하고 잘못된 언어생활이 있다면 반성하는 노력을 하자. 그렇다면 나이가 많은 사람도 나이가 어린 사람도 모두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할 것이다.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


요약(또는 결론)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을 자신의 언어생활을 반성하고, 언어를 둘러싼 맥락을 파악하는 트리거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나이를 묻거나 답하는 상황이 오면,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과 자신의 언어생활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언어 감수성도 높아지고 상대와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서로 존중하는 관계는 진정한 소통으로 이어진다. 소통의 달인이 되고 싶다면 내 생각을 담는 그릇인 언어를 늘 점검하는 습관을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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