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Care essay ⑤ - 개장 유골, 화장, 산골을 겪으며
뚝! 주룩! 흐른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상상만으로도 얼음이 된다. 나에게 죽음은 늘 먼 곳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의 죽음조차도 막연하고 아득한데, 나의 죽음일랑은 아예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렇게 나는 죽음과 거리를 둔 채 살아왔다.
2024년 12월의 어느 토요일,
나는 오늘,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를 모시고 천안에 다녀왔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함께 묻혀 계신 곳. 엄마의 친정이자 외삼촌이 관리하던 천안공원묘원 백조 지구.
폐암 투병 중인 외삼촌은 더 이상 산소를 돌볼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떠난 후 부모님의 산소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산소를 정리하기로 했다. 영화 제목인 줄만 알았던 ‘파묘’를 직접 경험하는 날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무덤은 이미 평지처럼 깎여 있었다. 간단한 묵념 후, 커다란 기계가 땅을 파헤쳤다. 삽시간에 변해버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묘원을 떠났다. 이후 외삼촌 가족과 함께 설렁탕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화장을 위해 천안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천안공원묘원 사무실에서 삼촌이 여러 장의 서류에 서명하는 동안, 나는 ‘개장유골’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매장되었던 유골을 다시 화장하는 것이라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절차를 마친 후 관망실에서 대기했다.
모니터에는 익숙한 성이 뜨고, “謹弔”라고 적힌 하얀 스크린이 천천히 올라갔다. 태워지기 직전의 작은 관이 보였다. 2~3초, 짧은 순간이었다. 다시 스크린이 내려오고, 모니터의 글씨는 ‘화장 중’으로 바뀌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엄마와 삼촌은 (개장 유골 및 산골 과정을 의뢰한) 업자가 보낸 사진을 보고 있었다. 파묘를 후 관을 열었을 때의 유골 사진이었다. 20년~30년이 지난 유골에서도 자신의 부모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놀라워했다. 사진 속 부모님의 유골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화장 시작 후, 40분이 지나자 방송이 나왔다. 가족들이 화장을 마친 유골을 확인하자 이내 분쇄에 들어갔다. 곧 흰 보자기에 싸인 유골함을 받았다. 그리고 유택동산으로 향했다. 지정된 항아리에 유골을 뿌리는 ‘산골’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엄마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엄마, 아빠… 막내(나에게는 외삼촌)가 많이 아파. 그래서 (엄마 아빠 시신을) 이제 보내 드려야 해. 막내 좀 안 아프게, 건강하게 더 살다 (하늘나라) 가서 엄마 아빠 만나게 해 줘.”
나는 속으로 다른 기도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가 많이 힘들어요. 좋아하시던 사위(나에게는 아빠)와도 떨어져 지내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요. 제발 우리 엄마 고생 안 하고 편히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자신이 힘들 때마다 찾아와 하소연을 하던 부모님의 산골을 앞두고 외삼촌은 결국 무너져 내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해?”라며 엉엉 울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가족들은 차마 유골함에서 한 줌의 재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항아리로 보내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손주들의 도움을 받아 두 분은 그렇게 흩어졌다.
‘죽음을 인식해야 삶이 소중해진다.’
말은 쉽지만 살아가면서 금방 잊히는 말이었다. 생각은 경험을 이길 수 없었다. “나도 언젠가 죽는다”라는 문장을 수없이 되뇌는 것보다, 단 한 번의 장례가 내 삶과 죽음의 거리를 좁혀 놓았다.
나는 미래의 나를 보았다.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는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오늘의 엄마가 훗날의 내 모습이라는 걸 알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부모님과의 이별이 쉬운 것은 결코 아니란 것을 보았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산골을 마친 외삼촌과 엄마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상실감을 느꼈다.
나는 비교적 차분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소중한 영상을 남겼다. 유택동산에서 엄마가 부모님을 떠나보내며 소리 내어 펑펑 우는 모습. 묘를 정리하는 과정보다도, 엄마의 눈물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엄마의 눈물을 담은 동영상... 엄마랑 다투거나 엄마가 원망스러워지려고 할 때마다 내가 이걸 본다면 엄마와 나는 앞으로 좀 더 잘 지낼 수 있을까?
눈앞에서 생이 스러지는 순간을 지켜봤다. 엄마의 눈물을 보며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시는 지금이 기회라는 걸. 기댈 수 있을 때 기대고, 들을 수 있을 때 듣고, 전할 수 있을 때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따뜻한 손을 잡아드릴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하면 우리는 늘 한 가지를 후회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 걸, 더 자주 손을 잡아줄 걸, 더 오래 곁에 있을 걸.
오늘 울던 엄마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려 한다. 오래도록 나를 지켜봐 주셨던 그분들께, 이제는 내가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삶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남기는 온기가 그 길이를 결정할 뿐이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삶이 또렷해졌다. 언젠가 끝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하지만 오늘, 들썩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군가를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더 많이 안아 주고, 더 자주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삶이 계속될 거라 믿고 미뤄둔 말들이,
언젠가 전할 수 없는 것이 되기 전에.
나는 오늘,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