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는 것도 싫지만, 하는 것도 어려운 관리
“팀장님, 고나리질이 뭔지 아세요?”
어느 날 점심시간,
젓가락질은 세상 희한하게 하지만
땅콩 반쪽은 정확히 집어 올리던 막내가 물었다.
수림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 들어본 적은 있어.
‘관리’라는 말 오타가 ‘고나리’라서
그렇게 쓰인다고 들었는데. 질을 붙여서 쓰는 건 오늘 처음 듣네.
뭔가 더 솔직하게 부른 표현인가?”
막내는 웃었고
옆자리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게임 용어래요.
쓸데없이 규칙 들이밀고
플레이 간섭하는 사람.”
“그래서 요즘은
‘고나리질 하다’ 이렇게 말해요.”
수림은 사실
이미 고나리질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 R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들이랑 얘기할 땐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하는 게 낫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그게 더 편하다.)
수림은 팀원들과
비교적 말이 통하는 편이었다.
농담도 몇 박자는 맞았고,
너무 젊은 척은 하지 않았다.
(그건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조언은 묻기 전엔 하지 않고,
충고는 되도록 삼켰다.
애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조언,
둘째로 싫어하는 게 충고라는 것도
이미 배웠다.
반면,
상장은 고나리를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고나리질이라는 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문물 앞에서
상장은 늘 둘 중 하나였다.
“그걸 왜 알아야 하죠?”
혹은
“아, 그거? 나 다 알아요.”
회의 중간,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상장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애들 말은 참 신기해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근데 말이에요,
저는 그런 거 굳이
알아야 하나 싶어요.”
잠깐의 침묵.
상장은 그 침묵이
불편해지기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제가 워낙 열린 사람이잖아요.
요즘 감성?
다 이해해요.”
그 ‘이해’의 근거는 늘 비슷했다.
유튜브를 본다거나,
넷플릭스를 본다거나,
조카가 하나 있다거나.
상장은
세대 불통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했다.
그래서 늘 먼저 말했다.
“아, 저 꼰대 아니에요.”
“저 완전 쿨한 사람이에요.”
그 말이 나올수록
회의실 공기는
조금씩 굳어 갔다.
며칠 뒤,
상장은 회의 시작 전에
휴대폰을 꺼냈다.
“제가 요즘
이런 거도 해요.”
팀원 얼굴을
연예인 얼굴에 합성한 사진이었다.
“하하, 완전 몰카죠?
요즘 애들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무도 웃지 않았다.
상장은 그 침묵을
‘다 속았다’로 해석했다.
“아, 진짜 다들 속네.
이런 거에 약해.
(그러고는 그 특유 자기 만족감을 드러내는 웃음을 웃어 보였다.)”
그날 이후로도
상장은 종종
‘자기만 재밌는 농담’을 들고 왔다.
유행은 늘 한 발 늦었고,
본인은 늘 한 박자 빠르다고 믿었다.
업무에서도 비슷했다.
상장은
‘알아서’를 좋아했다.
“이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죠?”
“제가 굳이
디테일하게 말 안 해도 되잖아요.”
그리고 결과가 틀리면 말했다.
“아, 이건
제 의도랑 좀 다른데요.”
(의도를… 말을 했어야 알지. 이 사람아!)
수림의 방식은 달랐다.
수림은
일을 시킬 때
말이 길어지는 편이었다.
“이건 왜 중요한 지부터 말씀드릴게요.”
“이 방향으로 가면 좋은 점은 이거고요.”
“중간에 막히면 바로 말씀 주세요.”
팀원들은
처음엔 귀찮아했지만
점점 편해했다.
수림은
의견을 물었고,
고개를 끄덕였고,
때로는 설득당했다.
그 과정이
빠르진 않았다.
(그래, 효율만 보면 내가 느린 편이지.)
하지만 결과는
대체로 안정적이었다.
상장은 달랐다.
상장은
고나리질을 즐겼다.
회의실에서
말을 끊고,
손짓으로 멈추게 하고,
톤을 높였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말했잖아요, (실제로는 안 했다)."
상장은
‘대표가 시킨 역할 놀이’에
완전히 몰입한 사람이었다.
관리자란
사람 위에 서서
조정하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대표에게 꽤 잘 먹혔다.
“상장 팀장은 확실히 관리가 되죠.”
(관리… 사람을 관리한다고?)
수림은 가끔
예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신입 시절,
고나리질 당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괴로웠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위축되던 시절.
그땐 몰랐다.
중간관리자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고나리하는 쪽도
꽤 힘들 수 있다는 걸.
말을 고르고,
선을 지키고,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일.
(이게 왜 이렇게 어렵냐.)
물론,
고나리질을
아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상장처럼.
애들이 불편해하는 걸
‘기강’이라 부르고,
침묵을
‘존중’이라 착각하는 사람.
그들은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믿는다.
수림은
그 확신이
가끔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살 수 있으면 편하겠지.)
하지만 결국
수림은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고나리질은
당하는 자도 괴롭고,
시키는 자도 괴롭다.
다만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만이
그걸 계속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림은
아직 그 정도로
무감각해지진 못했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 쪽에 남아 있고 싶다
아비투스, 아비투스… 내 품격은 내 자본으로 높일 수 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