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기억 속으로 (1)
“…명성 없이 삶을 소모하는 사람은 허공의 연기나 물속 거품과 같은 흔적만을 세상에 남길 뿐이다. 그러니 일어나라! 무거운 육체에 눌려 주저앉지 않으려면 모든 싸움을 이기는 정신으로 숨 막히는 어려움을 극복하여라. 우린 더 높은 계단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놈들에게서 벗어났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알아들었으면 용기를 내라.”
이 말에 나는 똑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전보다 호흡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계속 가시죠. 전 강하고 의연합니다.”
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계속 말을 하며 걸었다. 그때 다음 구렁의 밑바닥에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선생님! 도망치지 말라고 하시고, 무슨 죄로 여기에 처박혔는지 물어보세요. 피로 범벅이 된 저자의 꼴을 본 적이 있어요.”
그자는 내 말을 듣고 주저 없이 나를 향해 얼굴을 들어 세심하게 살피더니 사악한 치욕으로 낯빛이 추하게 변했다. 그리고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
“네놈이 보다시피 비참한 모습으로 널 만난 것이 저세상에서 생명이 다했을 때보다 더 괴롭구나. 네가 묻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 아름다운 성물을 제의실에서 훔친 도둑이기 때문에 이곳에 빠져있는 것인데, 다른 자가 이미 그 죄를 뒤집어썼다. 네가 이 어두운 곳을 벗어나게 된다 해도 귀를 열고 내 예언을 똑바로 기억해라! 그러면 여기서 날 본 것을 즐기지만은 못하리라. 먼저 피스토이아에서는 흑당이 사라지지만, 새로운 사람과 법으로 피렌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마르스가 불길한 구름을 겹겹이 두른 마그라 계곡에서부터 번개를 몰아오면, 피체노의 벌판 위에서 모진 폭풍우와 함께 거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번개가 삽시간에 구름을 찢어 버리면, 상처를 입지 않고 도망가는 백당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네 마음에 고통을 주기 위해서다.”
알리기에리 단테, 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 – Inferno 24곡.
눈 내리는 새벽,
설원은 은빛으로 얼어붙었다.
푸른 담요 속에서 나는 홀로 누워있었다.
주위에는 쓰라린 적막이 감돌았다. 아니,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뒹구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던가? 나는 눈을 감고 기억의 저편에서 첫 번째 조각을 더듬었다. 그 기억은 성소를 덮은 장막처럼 고요하고 엄숙했다. 그러나 때때로 가녀린 실오라기처럼 정처 없이 나부끼다 흔적 없이 사라지더니, 어떤 날에는 차가운 대리석 위에 새겨진 문양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시시각각 형체를 달리하며 바래져 가는 기억이, 한 편의 선명한 필름처럼 되살아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끝으로 가볍게 닿기만 해도 흐릿한 상(像)이 윤곽을 되찾고, 보고 싶을 때마다 그 잔혹하도록 선명한 장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일그러져 가는 이 기억은 붙들 가치조차 없었으나, 나는 끝내 놓지 못했다. 그것은 줄곧 내 존재의 중심에, 거대한 축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겨울의 찬 공기를 꿰뚫으며, 어둠 속의 별빛이 반짝였다. 나는 그 빛을 따라 걸었고, 마침내 차가운 밤의 끝과 닿았다.
—그 기억.
내가 집착하는 건, 그때 벌어진 상황의 객관적인 사실이나 현실이 아니었다. 그것만을 놓고 본다면 너무도 단순해서 설명할 거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젖먹이가 겨울날 눈 속에 버려졌다—그 비정한 현실은 설명하기에 지나치게 간결하고 건조했다. 나는 사건의 비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보다는, 겨울의 눈발 속에서도 어머니의 울음과 함께 따뜻했던 한순간의 숨결에 매달렸다. 다만, 단출하게 느껴졌다면—아마도 미끄러지듯 다가오던 한 줄기 차량의 빛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이상적인 순간이었다면, 욕조 속에서 내 머리를 조심스레 받쳐 든 그 손길이, 생애 처음으로 느낀 인간의 온기였기 때문이겠지. 혹은, 욕조에 받아 둔 물이 끊임없이 빛을 삼켜, 그 찬란한 잔영이 내 눈 속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기억이라는 이름의 환영, 현실의 수면 위로 비친 그림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떤 것이 더 최초의 기억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울면서 이곳에 놓은 걸까, 아니면 해방을 위해서 놓은 걸까?
이 문제는 내게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게 내가 알고 싶은 ‘그 기억’에 대한 집착이다. 내가 버려지게 된 것에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 나는 그 기억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매서운 추위 속, 입김으로 내 발을 녹이던 어머니는 탄성을 머금은 듯한 울음을 삼키며, 이곳에 나를 내려놓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지금까지 ‘그 기억’을 향한 믿음은 이렇게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믿음이 정당한가?
유년의 끝자락에서, 소년의 감정은 한없이 나부꼈다. 어느 순간부터 감정은 일정한 결을 잃고 변덕스럽게 흔들렸으며, 그와 함께 ‘그 기억’ 또한 서서히 형태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원치 않는 도섭이었다. 다만 생물학적 필연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흐름이면서도 결국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그 기억’이 본래의 모습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단단히 굳어 있던 그 믿음마저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주위는 쓰라리고 적막이 감돌았다. 아니,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뒹구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던가……’
이제는 그때의 분위기마저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련이 남은 사람처럼 고뇌에 빠진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차분하게 다시금 기억을 되뇌어 본다.
세찬 바람이 폐부를 저민다.
나를 안은 사람의 유약한 숨이 뜨겁게 벅차오른다.
비릿한 겨울 냄새가 스며든다.
눈발이 흩날렸다.
오늘은 어딘가 비극적이다.
확증편향의 사람처럼,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믿었다. 어머니는 분명 슬픔에 젖어 나를 이곳에 놓았다…….
—정말로 어머니는 나를 사랑했을까?
이 질문은 더 이상 어머니를 믿지 못하게 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그것은 혹한의 계절 속에서—그것도 자신의 아이를 유괴한 어머니의 잔혹함에 대한 불신도 아니었다. ‘잔혹’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보다 더한, 그러나 마땅히 존재해야 할 단어가 있을까? 설령 그런 말이 있다고 한들, 내면 깊숙한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거대한 전쟁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었다. 소년의 거침없는 자아와의 사투란 그 무엇 하나 표적이 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단순히 창 너머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도 나는 쉽게 피로감을 느꼈다. 정적이 가득한 공간이 어딘가 존재한다면, 나는 그 무표정한 고요 속으로 주저 없이 몸을 던졌을 것이다. 그것은 심연으로의 몰락이 아니라 정밀하게 조율된 악기처럼 설계된 나의 신경계가 갈망하는 침묵의 몸부림이었다. 오늘 같은 밤, 창밖에 흩날리는 눈발은 백색의 망각처럼 조용히 나를 덮쳐왔고, 피로는 머릿속 깊은 곳에 진득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나라는 존재는 본디 집착이라는 눅눅한 진흙에 젖어있었고, 의존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정교하게 세공된 유리 조각을 손바닥으로 으스러뜨릴 때처럼, 스스로를 향한 서늘한 혐오가 내 안에서 무수히 반짝이며 피어올랐다.
이마에서 떨어진 땀방울 하나가 책상 위에 사뿐히 부서졌다. 나는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그것을 쓸어내고, 맑게 젖은 살갗을 펼쳐 보았다. 수분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손금 사이를 기어다녔고, 그 끈적한 투명함 속에 나 자신이 한순간 매몰되는 듯한 기묘한 전율이 일었다. 나는 그 손을 입가로 끌어올려, 조심스럽게 혀끝으로 핥았다. 금속성의 냄새와 함께 짙고도 날카로운 단맛이 혀를 물었다. 그것은 피도 아니고, 눈물도 아닌, 오직 살아 있는 육체만이 분비할 수 있는, 오만하고도 절박한 생의 증거였다.
그 감각이 혀끝을 스치자, 어느 날보다 더 원초적이고도 문명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한 조각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기억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가느다랗고, 상상이라는 미혹에 가까운 것이었다. 특히 그것은 유체, 다시 말해 물이라는 본질적 요소와 맞닿아 있다.
—부드러운 유체의 원천. 다름 아닌 양수의 기억이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올챙이처럼 유영하던 기묘한 체험과 같은 기억….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집을 짓고 처음으로 무중력 상태에서 양분을 흡수하던 순간의 기억이, 그저 하나의 상상으로만 남아 있지 않음에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왜 그런 기억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을까? 나는 암흑의 세계 속, 아직 육체도 의식도 불완전한 형상으로 어머니의 자궁 속을 무중력처럼 떠돌고 있었다. 지식과 환상, 본능과 자각의 경계가 해체된 그 어둠 속에서, 피부는 피부가 아닌 감각으로만 존재했고, 나는 스스로가 세포의 군집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뜨겁고 차가운 감각과 유대를 이루었다. 그것은 학문도, 생리학도, 인간의 얄팍한 이해조차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세포의 서사이자, 태초의 교향악이었다.
아마 그 감각은, 물이라는 원소 속에 각인된 태곳적 시초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살보다 먼저, 그녀의 목소리보다 앞서, 물이라는 존재에 감싸여 있었다. 그것은 찰나의 불안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고요였으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경계의 어스름, 어떤 사물도 자아도 허용되지 않는 무중력의 감실과 같았다.
그렇기에, 이 육체가 물에서 안식을 느끼는 것은 단지 망각이 주는 쾌락의 한 형태가 아니라, 무언의 원죄와도 같은 생의 본능을 되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그 유대—어머니와 나 사이의 불가역적 교류를 끊어낼 수 없었다. 그것은 피보다도 진한, 언어 이전의 음성, 세포 안에 각인된 기억이었다.
—또 하나.
공교롭게도 나는 세계 물의 날에 태어났다.
내 생일에는 언제나 비가 내렸다. 초봄의 흐릿하고 불결한 물빛 하늘은, 마치 나의 출생을 축복하기보다는 조용히 애도하는 듯했고, 그늘진 계절의 빈틈에서 비는 언제나 우수에 젖은 포옹으로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전날까지 맑던 하늘이, 마법처럼 구름을 품고 색을 잃는 기이한 전조. 그 기묘한 반복을,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 기질과 결부 지어 받아들였다. 그러니 내가 물에 민감하다는 이 불가해한 패악—이를테면 자궁 속의 유동하는 양수, 그 부드럽고도 폐쇄된 유체의 기억이 지금도 내 신경의 심층에 가느다란 떨림으로 남아 있다는 믿음—은, 결국 내가 ‘물의 아이’였다는 은밀한 자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예민한 만큼 섬세했고, 어딘가 우울한 공상과 쉽게 친밀했다. 나는 일찍이 혼자라는 것을 배웠고, 오히려 그 고독 속에서 나 자신을 더 깊이 바라보았다.
이러한 공상가적인 관념은 세상이 이끄는 방향으로부터 반대로 향하고 있어서, 태양이 내리쬐면 음울했고, 밤이 되면 달빛에 싫증을 느꼈다. 건조한 바람은 더욱 쓰라리게 다가왔고, 수분이 가득한 바람이 밀려 들어오면 피부에 착 달라붙는 입자들은 전부 어머니로부터 불어 드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내가 밝은 곳을 내켜 하지 않는 것을 뒤틀린 기질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어둠이 가득한 곳이라고 해서 늘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가령 그런 것이 이분법적으로 불행과 행운을 나눌 수 있다면, 빛이 사그라지지 않는 세상이 혹독한 것은 왜일까? 관행적으로, 빛으로 모여들어 현란한 죽음을 휘감는 불나방의 돌진은 세상을 압축한 형상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반면 양수 속—깊고도 부드러운 그곳은 무게가 사라지고, 어디에도 기울지 않는 공간이다. 한없이 느슨해진 감각 속에서, 나를 지탱하는 것은 오직 보이지 않는 물결뿐이다. 그곳이야말로 가장 오래전부터 나를 받아들이고, 어떤 판단도 없이 품어주던 공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을 지나온 자들이기에, 이곳이 지옥임을 결국 알게 된다…. 적어도 나만큼은 사실이라고 믿었다. 세상은 무수한 벽이 겹겹이 쌓인 곳 같았다. 그 벽들 사이로 흘러드는 소음은 절벽을 타고 흘러내린 비처럼 내 귀에 침투했고, 나는 그 모든 소리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 한번, 그리고 이곳에 버려졌을 때 두 번. 두 번 태어나고 한번 죽은 몸이다. 보육원에는 비슷한 또래들이 많았다. 그러나 비슷한 사연은 없었다. 나는 워낙에 말도 없고 소심해서 또래를 사귀는 것을 익숙지 않아 했다. 인사를 시도하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이러한 외부와의 공생을 쉽게 누리지 못했던 건, 내게는 심각한 걸림돌이 있었다는 것에서 왔다.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는 치부. 발달 속도가 느릴 거라는 의사의 말, 혹은 흉측하게 얼굴에 달라붙은 동전만 한 종기 때문이라고……
나는 한동안 운명론적인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첫째는 볼에 굳게 달라붙은 종기, 둘째는 그것이 불러온 패배감이었다.
볼에 강직하게 자리잡힌 커다란 종기는, 지나치게 비밀스러운 나의 존재를 한층 현실적인 것으로 뒤바꿔주었다. 종기는 내 기분을 그대로 반영했다. 감기에 걸리면 창백해졌고, 불안할 때면 붉게 번들거렸다. 누구보다도 은밀한 구석을 갈망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오류 같은 종기는 이렇게 나를 제압했다. 그러니 나는 성장의 문턱에서 이미 주저앉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주어진 시간보다 더딘 걸음을 걷는 동안, 종기는 그 문 앞에서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한 종기는 세상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않아도 커다랗게 공표해주는 확성기의 역할을 했다. 내가 부끄러움이 많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건, 원치 않는 내 안의 소란스러운 외침이 세상에 자꾸만 분출되기 때문이었다. 종기는 나의 치부와 열등감을 거침없이 드러냈고, 나는 그것을 감추려 부단히 애썼다. 그 누구라도 이 처절한 노력을 쉽게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시선을 피하려 몸을 움츠릴수록, 입을 열 때마다 목소리까지도 불안에 떨었다. 그럴수록 말투는 점점 느려졌으며, 단어들은 혀끝에서 미끄러지듯 흩어졌다.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는 자의 운명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나의 운명은 선명한 부조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건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극복된다면 세상이 건설적인 거짓으로 불행의 만행을 회복하는 시도를 하는 중인 것이다.
내가 속한 보육원은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 있었다. 시청에서 관리받는 곳이므로 규모도 크고 관리도 다른 보육원에 비해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건강한 몸을 지녔으며, 학업에서도 평균 이상의 성적을 견고히 유지했다. 일주일에 세 차례 진행되는 코칭 수업은 학교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던 나조차도 겨우 버티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 교육은 주입의 냉혹함이 깃들어 있었다. 학교의 숙제마저 가벼워 보일 만큼 과중한 복습이 쏟아졌고, 숙제를 내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무자비한 손바닥의 체벌이 뒤따랐다.
이 교육에는 여러 기능이 있었다. 체벌의 이면은 되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게 했다. 그리하여 어떤 아이는 반에서 손꼽는 우등생이 되었고, 누군가는 이미 ‘외교관’이라는 당찬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학습을 통한 희망을 얻지 못했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오히려 내게 희뿌연 안개처럼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졌다. 도대체 어떻게 일찍이 저 구체적인 미래를 품을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의사의 차가운 진단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이곳에서 간신히 발견한 희망은 오직 숲속의 작은 동물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라든지, 고슬고슬하게 자라난 풀을 발견하는 것이라든지, 울창하게 뻗은 나무 밑에 서서 질감을 확인하는 일에서 느끼고 있었다. 자연의 숨결이 닿는 이 공간에서만 어렴풋한 평온을 맛볼 수 있었다.
오후의 빛이 바스러질 무렵, 나는 창을 열고 서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호수를 바라보았다. 숲은 감청색의 그늘을 늘어뜨린 채 호수를 감싸고 있었고, 그 위로는 기울어가는 해가 가느다란 황금의 피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들은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듯한 기묘한 기세로 바람에 몸을 떨고 있었으며, 그 틈새로 언뜻언뜻 스치는 호수의 형상은 마치 한 점의 신비로운 육체처럼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 풍경을, 마치 사랑하는 이의 옷깃을 훔쳐보듯 응시했다. 그렇게 창가에 선 채로 밤을 새운 것이다. 무도회처럼 화려하게 흘러가던 구름의 그림자, 달빛이 투과된 잿빛의 숲, 그리고 마침내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그날 이후, 나는 그 풍경을 단순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언가 절대적인 감정의 형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체험이었고, 감상이 아니라 거의 종교적 도취에 가까운 것이었다. 달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비추는 호수…. 양수에 대한 애상적인 감각이 호수로 녹아들었다.
청순하고 맑은 공기가 불어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온몸을 감싸며 정신을 맑게 씻어냈다. 창가의 커튼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외부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 여린 움직임은 정념을 삼킨 자의 적막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태양과 달이 호수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광경을 처음 본 그날, 문득 이 호수의 고요 속에서 영원히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충동이 스쳤다. 죽음이라도 이런 것이 죽음이라면 아름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만물이 일그러지며 저무는 그 형상이야말로 죽음의 실체라면, 어쩌면 죽음조차도 하나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날의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 서성이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는 그림자들이 흥미롭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 무엇도 이 호수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속의 불안과 갈망을 잠시 내려놓았다. 알 수 없는 평온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조우할 용기를 얻었다.
물결이 잦아들며 달빛과 함께 호수 속으로 잠겼다. 죽음의 입김이 조용히 퍼져가듯, 차갑고도 부드러운 어둠이 세상을 감쌌다. 그러나 그 감각은 슬픔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생명이 찬란하다면, 사라지는 순간에도 동일한 무게의 경외가 깃들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태동하는 것이 아름답다면, 저무는 것 또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빛에 물든 소년의 정념은 불꽃처럼 머리칼 사이를 흘러내렸다. 바람이 한 올 한 올을 감아올릴 때마다 그 결을 따라 서린 격정이 번득이며 타올랐다. 태동하는 숨결과 죽음의 회한이 담긴 숨결이 뒤섞여 바람을 이루었다. 탁월한 감각을 지닌 소년은 홀로 고뇌하고 체험하며, 타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아름다움을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체로 체화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아름다움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죽음을 사랑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