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혼의 입항

01. 기억 속으로 (3)

by 성빈

내가 죽음에 무기력하게 뛰어드는 위험천만한 상상을 하는 것은, 유기적인 호흡을 끊어내려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직 죽음이 나를 덮치지 않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 상상은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졌다.


길을 걸을 때도, 책상에 앉아 있을 때도—


갑자기 달려든 괴한이 내 하복부를 찌르고, 피를 토하듯 쏟으며 쓰러지는 순간.

책상에서 잠든 사이, 차가운 칼날이 목덜미에 슬며시 얼굴을 내밀어, 경련하던 나의 몸에서 붉은 혈이 터져 나오는 장면.

혹은 신호를 무시한 트럭이 내 몸을 유쾌하게 깔아뭉개는 바람에 모든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 찰나.

그러나 이런 상상 속에서도 나는 쉽게 죽지 않는다고 믿었다. 아니, 죽음조차 나를 비껴갈 것이라 확신했다. 나의 특별함은, 설령 현실에서 숨이 끊어진다 해도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으리라는 오만한 믿음이 있었다. 마치 전설 속 신들이 불사의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그러나 그 믿음은 어디까지나 추상적 관념에 불과했다.


‘죽음은 늘 나를 피해 간다.’


이 믿음은 나의 관념상으로는 성립할 수 있었으나, 앞선 ‘추상’이라는 진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를 긍정의 편에 서서 변호 해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증이 존재했다. 나는 그 어떤 신 앞에서도 내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양가의 감정이 균형을 잃을 때도, 나 자신을 향한 편애만큼은 끝없이 이어졌다. 혐오 속에는 긍지가 숨어 있었다. 내 존재는 모순과 어폐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소년의 사명이라면 누구보다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불현듯 기억나는 하나의 일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복잡한 심경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잦았다. 특유의 회의적인 감성은 내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오후, 보육원에서는 저녁으로 고깃국을 배식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그릇을 들고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어 거대한 배식 통 앞에 다다랐을 때, 커다란 통 안에서 푹 익어 흐물거리는 고깃덩이들이 미끄러지듯 떠돌고 있었다. 기름진 국물 위로 어른거리는 붉은빛이 핏물처럼 스며들었다. 그 순간, 속이 울컥 뒤집히며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배식받은 고깃국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느껴진 것이다.

뼈는 왜 생명처럼 보이지 않는 걸까? 피부와 살점은 쉽게 생명을 연상시키는데, 단단한 뼈를 마주하면 그 모든 생명감이 증발해 버린다. 찢긴 상처보다 생소한 관념이라서 그런 걸까? 피와 내장은 처참하지만, 뼈는 처참하지 않다. 갈비뼈나 다리뼈를 떠올리면 별것 아닌 모형처럼 보이는데, 분출된 피와 찢어진 살점이 떠오르면 반사적으로 고통이 느껴진다. 남의 상처를 보기만 해도 온몸이 움츠러들지만, 뼈만 남으면 그 무게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두뇌와 심장은 어떤가? 그토록 은밀하게 감춰져 있으면서도, 어째서 이토록 강렬한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육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박동하며 피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웅변한다. 마치 침범을 불허하는 금기, 혹은 영원히 베일에 싸여야만 하는 숙명처럼.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부드러운 맥동이 실은 생의 가장 원초적인 목소리라는 사실을. 손끝으로 닿을 수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명확하게 감지되는 것. 어쩌면 그것은 숨겨진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더 강렬한 존재감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순간, 가슴을 가르는 상상을 했다. 만약 손으로 갈라 그 속을 들여다본다면, 그것들은 나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 끈적한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붉은 심장이, 무표정한 두뇌가, 여전히 나를 나로서 지탱해줄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그 안에는 내가 믿어온 나 자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눈부시게 빛나던 피부와 탄력 있는 가죽은 생명으로부터 무참히 단절되고, 한때 뜨겁던 심장과 연결된 혈관은 불길 속에서 서서히 가열되었다. 익어가는 살점이 국물 속에서 조각나더니, 이윽고 뼈와 분리되어 그들 앞에 놓였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젓가락을 들어 뼛조각에 남은 살점을 집어 들었다. 입안으로 밀어 넣고, 혀끝으로 굴려 가며, 서서히 씹었다.

어떻게 이렇게 선명한 죽음의 잔해를 삼키면서, 감미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가. 붉은색은 참혹하지만, 그 외의 빛깔들에는 무감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의 감각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에만 반응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였다.

이런 오만한 생각이라니!

자신이 속한 것에는 본능이 깃들어, 의식주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학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이런 이유 때문일까? 모든 감각은 본래 이기적이라, 오직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을 아름답다고 여기며, 불필요한 것들을 가차 없이 배제해간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도, 결국 하나의 개체로서 유기적인 연결을 이루도록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라면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미(美)라는 것도 애초부터 그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관념으로 끌어온 추상적인 죽음과 달리, 현실의 죽음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고, 때로는 지나치게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어 있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을 과대한 망상처럼 부풀게 된 건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내가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그러한 것이 바로 내 운명이기 때문이다. 사명에 젖어 든 새벽과의 마찰은 더없이 고독했다. 아름다움이라는 건, 비할 데 없이 조화를 이루는 숲의 호수에 존재했고, 그로부터 어긋나는 것들은 모조리 아름다움으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런데도 기어코 그 균형에 완전히 들어맞은 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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