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가출, 눈, 그리고 무너짐

by Asurai

눈을 밝히던 가로등 아래에서

나는 세상을 떠난 사람처럼 서 있었다.


담배 연기가 천천히 퍼지고,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새벽 공기 속에서

내 심장은 조용히 부서지고 있었다.


그날 난

집에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도 내 마음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친구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쏟아졌다.

익숙한 술 냄새, 라면 냄새, 웃음소리.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그저 회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왔냐?”

친구가 가볍게 웃으며 소주잔을 건넸다.


그날 밤 우린 아무 이유 없이 웃었고

아무 이유 없이 취했다.

창밖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 작은 원룸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난 홀로 살아있는 척 하고 있었다.


새벽이 깊어갈 무렵

우린 옥상에 올랐다.


도시 불빛이 숨 쉬듯 반짝였다.

찬 공기가 코끝을 베어내고

담배 불은 어둠 속에서 작은 별처럼 흔들렸다.


“야, 우리도 언젠가 잘 될 거지?”

내가 던진 질문이었다.

확신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내 불안을 대신 말해주길 바랐을 뿐.


친구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몰라. 근데 지금은 그냥 이대로 가보자. 어차피 아직 멀었잖아.”


그 말이

위로인지 체념인지 분간이 안 됐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순간부터 웃음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눈은 계속 내렸고

내 마음은 조용히 얼어붙고 있었다.


3일이었다.

그렇게 3일 동안 나는 세상 밖에 있었다.

밤마다 술이 있었고

낮마다 잠이 있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삶은

처음엔 달았지만

금방 쓰디썼다.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을 봤을 때

웃지 않는 내가 있었다.

눈 밑은 퀭했고

입가에는 자조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게 진짜 자유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셋째 날 밤,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왔다.

표정은 없었다.

말도 없었다.

그냥 내 팔을 잡고 끌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순순히 걸었다.

반항할 힘도, 이유도 없었다.


집 문이 닫히자

회초리가 튀었다.

따끔한 통증이 몸을 스쳤지만

마음은 이미 무감각했다.


“너 이게 사람 사는 방식이냐!”


아버지의 목소리는 분노보다

실망에 가까웠다.

그게 더 아팠다.


“나쁜 짓 한 거 아니라고요!

왜 제 말을 안 들어요!”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소음은

대답 없는 침묵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가출은

도피였고,

반항이었고,

철없음이자

간절함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부서지는 소리를

나는 그 집 거실에서 들었다.

눈은 멈췄는데

내 안의 겨울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내가 믿었던 자유는

누군가의 품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 자리를 찾는 것이라는 걸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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