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눈, 그리고 무너짐
눈을 밝히던 가로등 아래에서
나는 세상을 떠난 사람처럼 서 있었다.
담배 연기가 천천히 퍼지고,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새벽 공기 속에서
내 심장은 조용히 부서지고 있었다.
그날 난
집에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도 내 마음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친구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쏟아졌다.
익숙한 술 냄새, 라면 냄새, 웃음소리.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그저 회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왔냐?”
친구가 가볍게 웃으며 소주잔을 건넸다.
그날 밤 우린 아무 이유 없이 웃었고
아무 이유 없이 취했다.
창밖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 작은 원룸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난 홀로 살아있는 척 하고 있었다.
새벽이 깊어갈 무렵
우린 옥상에 올랐다.
도시 불빛이 숨 쉬듯 반짝였다.
찬 공기가 코끝을 베어내고
담배 불은 어둠 속에서 작은 별처럼 흔들렸다.
“야, 우리도 언젠가 잘 될 거지?”
내가 던진 질문이었다.
확신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내 불안을 대신 말해주길 바랐을 뿐.
친구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몰라. 근데 지금은 그냥 이대로 가보자. 어차피 아직 멀었잖아.”
그 말이
위로인지 체념인지 분간이 안 됐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순간부터 웃음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눈은 계속 내렸고
내 마음은 조용히 얼어붙고 있었다.
3일이었다.
그렇게 3일 동안 나는 세상 밖에 있었다.
밤마다 술이 있었고
낮마다 잠이 있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삶은
처음엔 달았지만
금방 쓰디썼다.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을 봤을 때
웃지 않는 내가 있었다.
눈 밑은 퀭했고
입가에는 자조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게 진짜 자유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셋째 날 밤,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왔다.
표정은 없었다.
말도 없었다.
그냥 내 팔을 잡고 끌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순순히 걸었다.
반항할 힘도, 이유도 없었다.
집 문이 닫히자
회초리가 튀었다.
따끔한 통증이 몸을 스쳤지만
마음은 이미 무감각했다.
“너 이게 사람 사는 방식이냐!”
아버지의 목소리는 분노보다
실망에 가까웠다.
그게 더 아팠다.
“나쁜 짓 한 거 아니라고요!
왜 제 말을 안 들어요!”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소음은
대답 없는 침묵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가출은
도피였고,
반항이었고,
철없음이자
간절함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부서지는 소리를
나는 그 집 거실에서 들었다.
눈은 멈췄는데
내 안의 겨울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내가 믿었던 자유는
누군가의 품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 자리를 찾는 것이라는 걸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