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한 대, 엄마의 눈물, 그리고 처음 생긴 길
세 번째 가출 후 돌아온 날이었다.
집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또다시 아버지의 회초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분노와 고함, 무거운 침묵.
어떤 방식이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관에서 나를 맞은 건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었다.
형이었다.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
어디에도 분노는 없었다.
대신… 아주 작은 슬픔이 스쳐 지나가는 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두려웠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왔어.”
형은 아무 말 없이 다가왔다.
그리고 어깨를 향해
툭, 한 대를 쳤다.
세게 맞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 순간
가슴 안쪽이 무너져내렸다.
심장이 멎는 것처럼 아팠다.
숨이 막히고, 뭔가 안에서 울컥 올라왔다.
형은 단 한 문장만 남겼다.
“이제 그만하자.”
그 말은
나를 혼낸 것도 아니었고,
나를 이해해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너무 지쳤다는 목소리였다.
나 때문에 지친 사람.
나 때문에 울지 못하는 사람.
나 때문에 침묵하는 사람.
그날 처음 느꼈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형은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고
문이 천천히 닫혔다.
그 문틈 사이로
형의 뒷모습이 작아 보였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떠나는 것처럼.
나는 거실 한가운데 멍하니 섰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그 침묵이 나를 벌하고 있었다.
그때 한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어머니였다.
말없이 식탁에 숟가락과 반찬을 놓았다.
그리고 굳은 손으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혼을 내지도, 붙잡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냥… 울었다.
날 바라보지도 못한 채.
내가 무너져가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붙잡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집을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집 안의 나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엄마의 눈물 소리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그건 어떤 회초리보다 아팠다.
그 집 안에서 가장 무거운 소리는
항상 울음이었다.
나는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밥이 목에 걸렸지만 억지로 삼켰다.
무책임한 아이가 아닌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날 밤,
불 꺼진 방에서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그만해야겠다.’
처음으로
내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야
가슴 한 켠에서
미약한 불빛 같은 생각이 피어올랐다.
미용실에서 본 멋진 디자이너들.
친구의 머리를 만져주며 느껴졌던 묘한 설렘.
거울 속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던 표정.
아마 그게
내가 처음으로 붙잡을 만한 꿈이었다.
“그래, 나… 미용사가 되어야겠다.”
그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으로 내 편이 되어
나 자신에게 건 첫 약속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누가 밀어줘서가 아니라,
누가 잡아줘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 보기 위해.
그렇게,
내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