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엄마, 낯선 단어 ‘엄마’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조심스레 말했다.
“아줌마가… 이제 ‘엄마’라고 불러주길 바라신단다.”
그 한마디는 내 어린 마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전까지 아줌마는, 가끔 우리 형제를 초대해 밥을 차려주던 사람이었다.
항상 반찬이 많았고, 밥은 꼭 두 그릇씩 퍼주셨다.
그 집의 식탁은 언제나 따뜻했고,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괜히 마음이 편해졌다.
아버지는 늘 바빴다.
그래서 그 집을 자주 찾아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그 집에서 숙제를 하고,
아줌마는 우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끝이네” 하고 웃었다.
그 웃음은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어느 누구의 표정보다 부드러웠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 그 순간들 속에서
그분은 우리를 조금씩 ‘자신의 아이들’로 품기 시작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날, 아버지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이미 마음 한켠에서는 그분을 ‘가족처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막상 입으로 “엄마”라고 부르려 하니
그 단어는 낯설고 무거웠다.
혀끝에서 머뭇거리다, 겨우 내뱉었다.
“엄… 마.”
그 짧은 한마디에 방 안 공기가 달라졌다.
아줌마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나는 이유 모를 어색함에 시선을 피했다.
그때의 따뜻함과 낯섦이
지금도 동시에 기억난다.
그날 이후,
그분은 내게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 단어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라는 말은 따뜻하면서도 낯설었다.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섞여 있었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었다.
‘이제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거야.’
그 어린 확신 하나로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내 안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남았다.
친모를 떠올리면 가슴이 멍해졌고,
‘왜 나는 기억이 없을까?’라는 질문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사와 이별이 반복되는 동안,
‘정착’이라는 단어는 내게 낯설었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새로운 나를 만들어야 했다.
울 수도, 화낼 수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런 내 마음에 오래 남은 한 문장.
“나는 맡겨진 사람이다.”
그 문장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외로움이야말로 내가
스스로의 집을 짓는 이유가 되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