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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31. 2024

알중자에게 술이란

미친 망아지가 되어 전 남친에게 차단 당한 건에 대하여 

나는 '술독에 빠져 죽을 년'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쌀 정도의 알코올 중독자다. 아마도 유전인 것 같다. 우리 황가네는 할아버지 때부터 '황대포'라는 별칭을 붙이고 다닐 정도로 술을 사랑했다. 나는 나에게 알코올 중독자라는 명칭보다는 알코올 러버라는 명칭을 붙이고 싶다. 알코올 러버들에게 술은 기쁘면 기뻐서 먹고, 슬프면 슬퍼서 먹고, 기분이 그저 그러면 좋아지기 위해 가까이 해야만 하는 존재다. 난 알코올 러버 대표로서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기자일 때의 나는 술을 낮과 밤으로 나누어 부어라 마셔라 해댔다. 점심을 먹으며 선배들과 한 잔, 저녁에는 그 술 기운이 이어져서 선후배·동기 혹은 친구들과 한 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술 마시고 멀쩡히 기사를 써?'라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술 마시고 나면 기사가 술술 써지는 기분이었다.(아마도 내 경험상 나 같은 기자들이 많을 것이다.) 마치 술이 잠재된 나의 문장력을 끌어내주는 듯. 생각나지 않던 단어들도 술만 마시면 예술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중독이라는 것은 무섭다. 알코올이 건강에 백해무익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지금도 이렇게 어떻게든 좋은 점을 이끌어 내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 내용과 상관 있는 병나발 부는 김수미 짤. /인터넷 커뮤니티


어떤 때는 한 달에 하루도 쉬지 않고 술을 마셨다. 기본으로 하루에 두 번 나눠 마셨으니 60회쯤 먹지 않았을까 싶다. 자랑은 아니지만 하루에 3탕을 뛴 적도 있었다. 점심에는 선배, 저녁에는 후배, 최종적으로는 친구로 이어지는 루트였다. 나는 술도 좋았지만 사람 만나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술에 절여진 뇌는 어떻게든 나를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로 이끌었다. 술을 2병 반 이상 마신 나는 고삐를 놓아버린 미친 망아지 같다. 갑자기 진실게임을 하자고 조르거나, 세상 다 산 노인네마냥 나만의 개똥철학을 뱉어대곤 했다. 술 마신 내가 자주 하는 말은 "어차피 흙에서 흙으로 가는 인생이야. (손을) 잡아! 마셔!"다. '흙에서 흙으로'는 내가 항상 스스로 새기는 철학이다. 흙에서 탄생해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갈 미친 망아지인데 다음날을 걱정할 리가 없었다. 술자리에서 진실게임을 하자고 조르거나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내뱉어 댄 정도면 정말 약과다. 다음날 눈을 떴는데 내 방이 아닐 때……. 그때부턴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특히 옆에 전 남친이 자고 있을 땐 더더욱 그렇다. 어젯밤의 미친 망아지를 누군가 죽였어야 했는데. 최근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악은 술에 절여진 채로 전 남친에게 전화를 7번쯤 한 후 집에 찾아간 것이다. 사귈 때는 기억도 못했던 전화번호를 술만 처먹으면 어떻게 기억해내는 건지, 내 집도 못 찾아가면서 그 집은 어찌 그리 잘도 찾아 기어 들어갔는지 정말 의문스럽다. 그딴 짓들을 해댔으니 전화번호와 카카오톡 모두 차단 당할 만도 하다. 여전히 난 전 남친의 카톡 프사를 볼 수 없다.(프로필 사진까지 비공개 설정했나 보다.) 며칠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천 년의 사랑을 했었는데, 지금은 보고 싶어도 사진조차 볼 수 없게 차단 당했으니 이렇게 슬픈 엔딩이 또 있을까. 미친 망아지로 변한 나는 항상 이따위 결말을 만들어내곤 했다. 


웃긴 건 아무리 흑역사를 백천 개 만들어내도 술을 끊을 의지가 없다는 거다. 이전 화에서도 밝혔듯 나는 술과 멀어질 생각이 없다. 술을 먹은 후 기억을 아무리 잃어도, 택시에서 기절해 깨어나지 않아 경찰에게 끌려갈 뻔 했어도, 전화번호부에 있는 남자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댔어도 금주할 생각이 안 든다. 지금은 분명 병원에 다니고 있고, 이 정신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술을 끊어야 한다는데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술을 끊을 생각이 없지만 난 요즘 행복하다. 흑역사 백만 개를 생성해내고 후회에 후회를 밥 말아먹듯 하고 있지만 나는 나아지고 있다. 점점 '적당히'를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나는 2병 이상의 알코올을 먹으면 필름이 끊기고 미친 망아지로 변신할 준비를 한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외모 강박이 있기에 술을 많이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술을 마시면(안주를 미친듯이 먹어대기 때문에) 살이 찐다. 술을 많이 마시면 뇌가 마비돼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 또한 안다. 이런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나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난 앞으로도 나아지며 행복할 것이라는 거다. 그러다가 언젠가 미친 망아지가 되더라도 행복한 망아지이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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