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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31. 2024

차라리 입원하고 싶어요

누가 나 좀 가둬줬으면 좋겠다

최근 며칠 간 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엄마 앞에서 더 이상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살고 싶지 않다며 목 놓아 운 적이 몇 번 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너무나 죄송한 일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실 엄마께 다시 한번 죄송했다고 전한다. 또 몇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무의식에도 반영된 건지 술을 먹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내가 옥상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나는 술에 취해 옥상에 올라가 난간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위험천만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차라리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간 내가 정말 내 힘으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최근엔 섣불리 죽으면 안 되는 이유가 생겨서 죽으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죽으면 안 되는 이유는……. 솔직히 나 때문은 아니다. 가족과 친구들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무너질 내 주변 사람들.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들은 슬퍼하다가도 나중엔 결국 죽은 사람을 잊고 자신들의 생을 살아가게 된다는데. 나는 그들에게 나로 인한 잠깐의 아픔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다.


병원에 가서 "살고 싶지 않아요. 삶에 희망이 안 보여요. 차라리 입원하고 싶어요"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그런 생각이 든 이유가 있나요?" 나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눈물이 자동으로 나올 줄 알았지만, 눈물 한 방울 없이 담담히 말했다. "제가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시더니,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뇌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세로토닌 등을 분비해야 하는데 그 기능을 뇌가 지금 하지 못하고 있으니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드는 거라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자꾸 비난하지 말고, 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해요."라고 했다. 그리고 "혜빈 씨는 자유로운 게 좋아요? 갇혀 있는 게 좋아요? 입원에 대해선 혜빈 씨 스스로 판단해야 해요."라고 덧붙이셨다. 물론 나는 자유로운 쪽이 좋다.


내 생각에 의사 선생님은 누구보다 이성적인 T다. T 비율이 80%은 넘을 것 같다. 병원을 다니는 동안 나에게 한 번도 "힘들었겠어요."라는 말을 해준 적 없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힘들었겠다 라고 말하면 스스로를 동정하며 울어버릴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고마웠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증상이나 감정 상태를 말하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해주신다. 그러면 나는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병원에 갔을 때는 항상 의사 선생님 말에 깊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병원에서 나오기만 하면 문제다. 나는 술을 끊을 의지도, 외모 강박에서 벗어날 의지도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선, 술은 뇌를 마비시키기 때문에 절대 마셔서는 안 된다는데 술이 그렇게 먹고 싶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확 좋아지기도 하고. 술을 마실 때 나는 잠깐 다른 세상에 다녀오는 것 같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간 느낌이랄까. 그러나 술이 깨면 나는 다시 시궁창 같은 현실로 돌아와 있다. 백수에다 하루종일 음식 생각, 남자 생각만 하는 돈 없는 거지(Beggar).


한번은 의사 선생님께 "술을 꼭 끊어야 하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술을 왜 먹고 싶은 거냐고 되물었다. 순간 '술을 먹고 싶은 데에 이유가 있나?'라는 알코올 중독자다운 생각을 했다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즐겁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집에서 혼자 술을 먹지는 않았다. 이전에는 혼술을 꽤 즐겼으나 이제는 흥미를 잃었고 본가에서는 가족들의 한심하다는 눈초리와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술을 먹는 이유가 친구들 때문이라면, 술 없이 친구들과 즐기는 방법을 찾아보라 하셨다. 솔직히 지금도 그 방법을 모르겠다. 친구들과 술을 안 마시면 뭘하지? 방 탈출하기? 카페 가서 셀카 찍기? 내 생각에 돈을 가장 적게 들이고 오랫동안 노는 방법은 술 마시기뿐인 것만 같다. 내가 백수에서 벗어나 고정적인 일을 하면 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아무튼 술 없이 사는 방법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또, 나는 매일 같이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밖으로 탈출하고 싶어한다. 아무래도 외모 강박의 영향이 있다. 사람들로부터 예쁘게 보이고 싶고, 시선을 받는 게 좋다. 의사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인정 욕구' 때문이라고 하셨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자꾸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외모 강박 때문에 운동하러 갈 때도 화장을 하고 싶다.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 상태로는 꼭 마스크를 쓴다. 선생님은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위(꾸미기 등)를 할 때마다 내 목에 조여맨 목줄을 다른 사람 손에 내어주는 이미지를 그려보라고 하셨다. 내가 스스로 내 삶의 목줄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떤 케이스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문제 증상을 고치려는 의지를 포함해 삶에 대한 의지가 정말 없을 때 입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의 경우엔 술과 외모 강박을 고칠 의지가 아직까지 없다. 특히 술을 끊을 자신이 도저히 없다. 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덕분에 삶에 희망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한다. 마인드 자체를 뜯어고치기 위해 차라리 입원이 하고 싶다가도, 입원하면 술도 못 먹고 화장도 못 하게 될 테니 하기 싫다. 참 아이러니하다.


난 이 글을 쓰면서도 술을 끊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정말로 알고 싶다. 건강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끊어야 한다, 술을 먹으면 위험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끊어야 한다 등의 말들은 모두 들어봤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겐 의지가 없다. 일주일에 2~3번 먹는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양을 줄이면 되는 거 아닌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의사 선생님도 병원 진료가 모두 끝나면 소맥을 말아드시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만 든다.


일단 난 내가 행복한 쪽을 택하기로 했다. 대신 술을 많이 먹으면 뇌가 마비돼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르니 조금만. 적당히가 안 되면 난 정말 입원 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외모 강박을 고치기 위해선 적당히 먹고, 화장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을 때만 하기로 했다. 화장하는 건 나에게 행복을 줄 때가 많으니까. 그때까지 입원은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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