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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24. 2024

엽떡은 맛있어

나를 거지로 만든 엽떡

내 뇌는 음식만 떠올리면 자동으로 배달 앱을 켜는 알고리즘으로 설계돼 있다(있었다). 음식 중에서 특히 '동대문엽기떡볶이'(엽떡)를 열렬히 사랑했다. 매운 것을 잘 먹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항상 가장 매운맛으로 먹는다. 엽떡이 2000kcal에 육박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매일같이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먹토(먹고 토하기) 덕분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밝힌다. 먹토는 명백히 몸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해선 안 된다. 주먹밥에 계란을 추가하고 배달비까지 더하면 2만 원을 훌쩍 넘기는데, 일주일에 5번 정도 주문했으니 계산해 보자면 한 달에 40만 원 이상을 엽떡에 투자한 셈이다. 거기에 다른 음식들도 당연히 하루에 기본 2번 이상은 시켜 먹어댔으니 자연스레 알거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번 돈을 모두 음식에 갖다 바쳤다. 나에게 배달 앱은 헤어진 지 얼마 안된 전 남자친구 같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거지가 될 걸 알면서도 내 뇌는 배달 앱만 찾도록 설정돼 있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 나의 엽떡 사랑. /카카오톡 캡처본


나의 음식 사랑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나는 부어치킨(당시 부어치킨이 집 가까이에 있었다) 한 마리를 혼자 해치우는 발랄한 여중생이었다. 당시의 나는 자존감이 넘치고 넘쳐 몸무게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몸무게 걱정 없이 음식을 복스럽게 먹어 치우던 내가 외모 강박이 생긴 건 대학생이 되면서다. "안 좋은 것만 빼다 박았다"며 나의 외모에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계셨던 엄마가 거액을 투자해 나를 수술대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내가 느끼기에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아직도 압구정역 5번 출구에 있는 모 성형외과 원장님을 제2의 아버지로 생각하며 감사해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얼굴이 괜찮아지니 살이 통통하게 오른 내 몸뚱이가 보였다. 그러면서 몸무게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 것이다.


이전 화에서 밝힌 바 있지만, 살이 찌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는 당연한 이치를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땐 정상적인 방식으로 살을 빼려 노력했다. 그러나 2013년이 되고 2학년부터는 기나긴 다이어트에 지쳤던 탓인지 '먹고 토하기'라는 요령을 피우게 됐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너무 많았고, 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는 타이틀을 놓치기 싫었다. 토하기 시작하면서 뇌가 고장난 것인지 청결에 대한 감각도 잃게 됐다. 그리고 우울하고 공허해졌다. 배달 음식을 끊임없이 먹어대니 내 방은 온갖 배달 음식 쓰레기들로 가득 차게 됐다. 특히 엽떡 플라스틱 통이나 치킨 종이박스가 주를 이뤘다. 어떤 때는 술병도 마구잡이로 굴러다녔다. (나중에 다시 밝힐 테지만 나는 내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현재 집 말고 이전 집에서 엄마, 동생과 함께 살 때(2016~2021년)는 내 방의 쓰레기들을 들키면 안 되니까 책상 밑이나 화장실로 쓰레기를 숨겨놨다.


하지만 그렇게 숨겨놓은 쓰레기들은 스멀스멀 영역을 넓혀 내 방 전체를 집어 삼켰다. 내 방 화장실 변기는 매일 먹토를 한 흔적으로 곰팡이가 가득했다. 당시엔 엄마도 일을 다니셔서 내 방을 매일 살필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번은 쓰레기장 방을 들켜서 엄마를 쓰러질 지경에 만든 적도 있다. 2018년도쯤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난 남자친구를 만나고 외박을 한 후 밖에 있었다. 그런데 당장 집으로 들어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게 된다. 쓰레기 방을 들킨 건가, 난 죽었다 싶어 집에 가다가 차라리 사고가 나서 병원에 실려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방을 이 지경까지 만들다니 정신병이 있는 것 아니냐며 정신병원에 끌려갈 줄 알았다. 그때 차라리 정신병원에 끌려갔으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집에 가니 고모와 아빠도 함께였다. 아빠와 엄마는 이혼 후 따로 살고 있었지만, 당시엔 나와 동생 때문에 가끔 함께 만났다.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숨과 함께 온갖 욕설이 날아왔다. 나도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쓰레기장이 된 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먹토를 하고 있다는 것부터 거슬러 올라가 설명을 해야 하는데, 세월의 간극은 내 입을 꾹 닫게 만들었다. 결국 고모와 엄마, 아빠가 힘을 합쳐 내 방을 깨끗하게 치워주었다. 도저히 나 혼자서는 치울 수가 없는 방이라는 걸 다들 알았다. 하지만 그후로도 나의 먹토는 계속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고쳐지지 않은 채 음식물 쓰레기들과 함께 방치되어 가고 있었다. 매일 꼬박꼬박 토를 해대니 손등에는 이빨자국이 생겼다. 당시엔 토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기에 토를 하고 나서는 꼭 슬프고 공허해졌다. 그러면 비워진 속을 또 음식으로 채워야 했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건강에 대한 걱정도 했다. 내가 먹토를 하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인간인 전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오늘도 다섯 번이나 토했다, 이러다가 나 병 걸려 죽을 것 같다, 무섭다며 울어 재꼈다. 그는 토하는 나를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안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쉬운 걸 나는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먹토도 자해의 일종이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땡전 한푼 못 모으고 돈을 버는 족족 음식에 모조리 갖다 바치다가 결국 난 현재 진짜로 주머니에 5000원도 없는 거지가 됐다. 이젠 눈물도 안 나오는 비극적인 거지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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