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해주시면 일급 5만원 드려요."
내가 병원에 갈 때 적어간 증상 중 하나가 '청결 관리 능력 제로'라는 것이었다. 성인ADHD까지 의심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검사 결과 ADHD는 아니었고,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셨다. 하루에 4번 이상은 시켜 먹는 배달 음식. 집 안에 쌓여가는 음식물 쓰레기와 플라스틱 용기들, 각종 비닐봉지들. 그리고 1평은 차지하고 있던 옷 무덤. 옷은 한 번 입고 옷장에 다시 넣어두거나 빨래통에 넣고, 먹은 음식과 쓰레기들은 바로바로 치우면 되는 그 쉬운 일들을 나는 해내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청소와 4시간 왕복 출퇴근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후자를 선택할 정도로 청소가 싫었다. 남들은 매일매일 해내는 일상 속 일들이 나에게는 커다란 과업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청소를 대신해 줄 사람을 구하는 거였다. 이 글을 엄마가 보신다면 등짝을 10대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방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혼자서 저걸 다 처리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사실 저 정도가 그나마 깨끗한 상태의 사진이다) 구청 분들과 청소 미화원 분들께는 죄송스런 말이지만 일반 쓰레기 봉투에 모조리 처박아 버리고 싶었다.
처음에 나는 청소업체를 찾았다. 작은 원룸이었기에 당연히 10만원 안쪽일 줄 알았는데 업체들은 내 방 사진을 보더니 대부분 20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불렀다. 그들은 말했다. "이 정도면 18만원 정도는 받아야 해요. 평수는 좁아도 쓰레기가 많잖아요." (나도 이 말에 동의하긴 한다) 그러다가 당근 알바를 찾게 됐다. "6평대 원룸 청소해주실 분 구합니다." 일급은 5만 원으로 입력했다. 그리고 속옷 등도 함께 널브러져 있었기에 40대 여성만 구한다는 조건도 걸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글을 올리자마자 지원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중 청소 알바 경험이 가장 많아 보이는 분을 채용 확정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구멍가게 사장이라도 된 듯했다. 방식은 이랬다. 내가 집을 비우면 청소를 해주시는 알바 님이 오셔서 청소를 해주시고 완료했다는 인증샷을 찍어서 당근 채팅으로 보내면 내가 바로 송금하는 식이다. 사실 나는 당근마켓으로 청소 알바 구인을 한 번만 해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청소된 방은 1~2주 만에 또 더러워졌다. 더러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살기 시작해 7월 초까지 총 4번의 당근 알바를 구했다. 처음 입주해서 한두 달은 최대한 깨끗하게 살았던 것을 감안하면, 한 달에 한 번은 나 대신 청소해줄 사람을 구한 셈이다. 항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최대한 더럽혀진 후 알바를 찾았다. 친구들이 그럴 바엔 자신이 치워주겠다고 했지만(당연히 돈을 주는 대가로), 친한 친구에게도 내 방을 공개하긴 쪽팔렸다.
나는 청소를 해줄 당근 알바를 구할 때마다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집을 비워줬다. 동네의 작은 분식집이나 조그마한 카페에서 시간을 때웠다. 청소를 해주시는 분과 마주칠 일은 없었다. 나는 늘 청소 알바 님들에게 내가 집에서 나오면 그때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집 비밀번호와 함께. 이렇게 했던 이유는 그렇게 더러운 방이 내 방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어서다. 방은 늘 깨끗하게 청소되었다. 경제관념이 없는 나는 누군가가 대신 청소해주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청소업체보다 더 싸게 청소를 해주시니 감사의 그랜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방이 더러우면 스트레스는 항상 내 몫이다. 방 안에 가득한 쓰레기들과 빨지도 않은 옷가지들은 나의 어지러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젊은 ADHD의 슬픔>을 쓰신 정지음 작가 님은 청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내 방은 늘 얼기설기 엮인 옷가지와 책과 온갖 조그만 물건들, 그리고 자잘한 쓰레기로 고통받았다.' 그리고 이 대목이 중요하다. '그 방을 공격하는 나도 그 방에 반격당해 어쩔 줄 모르니 슬픈 일이었다.' 내가 너무나 공감하는 구절이다. 내가 방을 공격하면 다시 방이 나에게 반격하고 ……. 그 싸움에서 나는 결국 두손 두발 들고 알바를 구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현재 나의 청결 능력도는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남들이 하루에 한 번 한다는 샤워도 몰아서 할 만큼 내 몸조차 돌보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부끄럽지만 지금도 가끔 그렇다) 하지만, 본가에서는 엄마의 끊임없는 꾸지람이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청결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머리를 말리면 수챗구멍이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워야 하고, 드라이기를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 화장을 하면 늘어놓은 화장품들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놓아야 한다. 옷을 갈아 입으면 이전에 입었던 옷은 빨래통에 넣거나 옷장에 넣어두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혼자 살 땐 전혀 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본가에서 내가 먹고 난 밥그릇을 바로 설거지할 줄 아는 경지까지 올라왔다.
내 생각에 나는 혼자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사실 약을 먹고 언젠가 나아질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그나마 본가에서는 함께 사는 구성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욕 먹기 싫어서 억지로라도 치운다. 결국은 본가에 사는 편이 나은 것이다. 덕분에 집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고질병도 많이 고쳐졌다. 당장 필요한 그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조금 핑계 같긴 하지만 그렇게 허비한 시간은 내가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혼자 사는 것보다는 본가에서 나아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만족하며 사는 중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당근 알바를 찾을 일이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