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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20. 2024

기자 황혜빈

찬란하고 당당했던

나는 2018년 하반기부터 약 6년간 기자로 일했다. 기자로서의 삶은 좋았다. 이슈를 찾아내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도 좋았고, 그 과정이 항상 뿌듯했다. 나는 '사회성 좋고 자기애가 강한' ESTP답게 사회생활도, 일도 잘했다. 단독 기사를 많이 써서 상을 받기도 했다. 기자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이 좋았고, 기사를 써내기 위해 이슈 발굴, 취재 등을 열심히 하는 내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렇게 꾸준히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매일 같이 스트레스 받는다는 명목하에 폭음·폭식을 하고 모두 토해내고 있었다. 뇌의 한 기능이 고장난 것 같았지만 이겨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주변에는 나같이 일하는 기자들이 많았고,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기자들도 많았기에 그들과 경쟁자로서, 동반자로서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우울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물론 구체적인 증상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어찌됐든 괴롭더라도 살아내야 했고, 가끔씩 받게 되는 기자상은 가뭄 속 단비처럼 행복이라는 감정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일을 열심히 할수록 상태가 심각해졌고, 내 삶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이 우선인 삶이 됐고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일이 끝나면 공허함이 찾아왔고, 공허함이 찾아오면 술과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고, 그후엔 변기를 부여잡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서 하루에 한 번이라도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토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그러면 매번 배가 아픈 척 화장실을 찾아야만 했다. 남자친구와 있을 땐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고 소리가 안 들리게 봉쇄했고, 회사에 있을 땐 사람이 없는 틈에 와르르 토해냈다. 변기에 튀긴 토사물을 조용히 닦아내며 이 요상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이미 나는 먹토(먹고 토하기)를 10년 이상 반복 중이었다. 이 사실은 대학생 때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밖에 모른다. 돌이켜 보면 TV나 유튜브에 뜨는 거식증·폭식증 환자보다 내가 더 심했는데 묵인해왔던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매체를 통해 음식 저장 강박이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엔 먹고 싶은 욕구가 커서 음식을 일단 사둔 후 먹지 않고 자꾸 저장해두는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었는데, 나 같은 경우엔 먹고 싶을 때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 아낌 없이 배달을 시켜 먹고 모두 토해버리는 양상이니 더 심각한 거였다. 돈은 돈대로 쓰고 몸은 망가져갔다. 어떤 때는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토한 적도 있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나의 이런 증상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한 편이었다. 그리고 활동 시간이 달랐다. 나는 일을 끝낸 후 모두가 잠든 새벽에 집에 들어오는 식이었고, 엄마는 내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 동생은 방에서 컴퓨터를 실컷 할 시간이었다. (우리집은 이혼 가정이라 엄마, 동생, 나 3명으로 이뤄져 있다) 


토를 처음 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를 다니던 2013년이었다. 당시 나는 158에 55~56Kg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몸무게였다. 처음 시작한 것은 운동이었다. 먹을 것을 도저히 끊을 수 없었기에 유산소 운동(자전거 타기)을 나름 빡세게(?) 했다. 술을 먹고 와서도 자전거 위에 올라 탈 정도였다.(이건 따라하면 안 되는 위험한 행동이다) 다이어트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48Kg까지 감량에 성공했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모두 놀랐다.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었다. 나도 하면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과 함께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부쩍 올랐다. 그런데 어떤 남성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 "하체 살만 빼면 더 완벽할 텐데."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이상한 강박은 그때부터 생겼다. 생크림빵이 너무 먹고 싶은 날이었다. 당시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동전을 탈탈 털어 천 원짜리 생크림빵을 샀다. 그리고 집에 가서 음식을 먹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손가락을 넣어 모조리 토해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셈이었다. 그래도 그땐 남자친구가 데이트 하며 사준 음식, 엄마가 정성들여 만들어주신 반찬 등을 토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단지 살이 찌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런데 죄책감도 먹토가 반복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내 삶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졸업 후 기자로 일하면서도 먹토를 열심히 이어갔다. 먹토를 하지 않은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고 마음이 너무나도 불안했다. 


기자일 때의 나는 자신감 있고 당찼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MBTI도 ESTP(여기서 T는 이성적인 성향을 나타낸다)이고 기자이기 때문에 매사에 이성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겐 그렇지 못했다. 살이 찌기 싫어서 몰래 숨어 토를 하고,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망쳐왔다. 이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꽁꽁 싸매고 살아왔다. 10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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