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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26. 2024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프로 고백 공격러

나의 지인들은 잘 알고 있다. 내가 고백 공격을 밥 먹듯 하고 100번쯤 후회한 적 있다는 것을. 나는 금방 사랑에 빠지고 고백 공격을 개시한다. 그 공격이 상대방으로부터 받아 들여지면 온마음 다해 사랑한다. 내가 처음부터 고백 공격을 늘상 해왔던 것은 아니다. 물론 내가 먼저 고백 받은 적도 많다. 정말이다. 나는 대학교를 거치면서 남자가 먼저 고백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리고 술 먹고 앞이나 옆에 앉은 이성이 조금만 마음에 들어도 고백을 해대기 시작했다. 성공률은 꽤 높은 편이다. 차여서 남 모르게 눈물을 훔친 적도 있긴 하다. 


▲ 한 남성에게 한 고백 공격. /카카오톡 캡처본


정말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내 고백을 받아준다면, 나는 그때부터 진정한 사랑에 돌입한다. 비혼주의를 외치던 내가 "이번에는 진짜 짝을 찾은 것 같다"며 친구들에게 떠벌린다. 한 달 이상 만난 상대마다 결혼할 생각을 갖는 인간이 또 있을까. 가끔은 내가 비혼주의가 아니라 결혼주의자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이런 적도 있다. 술자리에서 처음 본 상대에게 플러팅 공격을 하고 연락을 몇 번 주고 받다 사귀게 됐다. 그리고 사귄 지 거의 열흘 만에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이 기록은 쪽팔리게 내 일기장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당시 나는 

'항상 연애할 때마다 느끼는 건진 모르겠지만(당연히 느꼈을 거다) 이렇게 배려심 넘치고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남자친구는 처음인 것 같다.' 

라고 적었다. 당시에도 분명 결혼한다면 이 사람과 하게 될 것 같다고 친구들에게 떠벌리곤 했는데, 결국 한 달 뒤 헤어졌다. 내 애정표현이 너무 부담스럽고 가치관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치관이 안 맞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애정표현은 본인도 똑같이 했으면서. 나쁜놈) 어찌됐든 나의 연애는 그렇게 끝났고, 헤어짐의 충격에서 헤어나와 4일 만에 쓴 일기에는 

'벌써 헤어진 지 4일째인 것 같다. 여전히 잘 헤어진 것 같다. 헤어진 지 얼마 안돼서 그렇기도 한가. 난 내 자유로운 영혼이 좋다.' 

라고 적혀 있다.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나의 사랑은 빠르게 불타오르고 끝난 후엔 까만 잿덩이만 남는다. 미련 없는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미저리처럼 붙잡은 적 또한 많다. 물론 대부분 술 먹고 나서다. 하지만 나의 전 남자친구 중 대부분은 고백 및 재회 공격을 다시는 받아주지 않았다. 나 같아도 전 애인이 술에 절여진 채 다시 사귀고 싶다는 말을 지껄이면 전화를 끊고 싶을 것 같다. 


실제로 최근에 사귀었던 남자 중 한 명은 나를 차단했다. 그 사람도 내가 먼저 고백해 사귀게 됐던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 사람과는 정말 결혼까지 생각이 들 정도로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 (친구들은 내가 아무리 진심에 진심을 더해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믿지 않았지만.) 그 당시 나는 차였는데, "너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신뢰가 안 간다", "이제 날 좀 놔줘라" 등의 말을 들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듣고 알겠다고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울고 불고 미련 섞인 말들을 내뱉으며 그 사람을 붙잡았다. 그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고 더욱 헤어짐을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나는 공허함과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를 사귀어왔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근 10년 간 남자친구를 쉴 새 없이 사귀었다. 연애를 가장 많이 쉰 기간이 3개월인가 그렇다. 스스로 일어날 힘을 갖춰야 하는데 그런 힘을 못 갖추고 남자친구에게 기대려고만 했던 것이다.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난다면 이렇게 구질구질한 연애의 반복을 멈출 수 있을까.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내 연애는 항상 잔인하게 박살나고, 내 자존감 또한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조만간 또 큐피트의 화살을 맞고 누군가에게 고백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받아준다면 이번에도 진짜 사랑이라고 믿으며 연애를 시작하겠지.

 

하지만, 이제 나는 스스로를 '사랑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큐피트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밖에. 아, 이렇게 박애주의인 사람이 또 있나. 나는 그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만 키우려 한다. 그리고 사랑을 하되, 남에게 무조건적으로 기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 근육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이별을 겪더라도 상처를 덜 받고 덜 구질구질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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