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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Apr 02. 2024

병원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주머니에 2000원도 없는 그지 백수 거렁뱅이 이야기

나는 이전 화부터 계속 밝혀왔듯 폭음·폭주에 온갖 돈을 쏟아부었다. 가장 큰 문제는 10년 전부터 경제관념을 담당하는 뇌 기능이 소실된 건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돈을 써왔다는 거다. 대학생 때부터 간간이 알바를 하며(물론 엄카 찬스도 썼다) 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 돈으론 나의 폭식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학자금 대출 제도를 이용해 생활비를 대출 받고 그 돈으로 온갖 음식을 시켜 먹고, 술을 마셔댔다. 끝내 먹토(먹고 토하기)로 마무리할 땐 대출 받은 돈을 변기로 와르르 쏟아버리는 기분이었다. 대출까지 받아서 음식에 쏟아붓다니 빚더미에 올라앉기 딱 좋았다. 뉴스에서 대학생들의 학자금 체납률이 지난해 대비 얼마 늘었다고 떠들어댈 때마다 뜨끔했다. 나도 그 체납자 중 한 명이니 말이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는 게 당연한데 나는 졸업 후 일을 하면서도 그럴 능력이 없었다. 경제관념이 전혀 없었을 뿐더러, 월급을 받아도 모조리 배달 앱에 처박아버리는 식이니 돈을 모을 수도 갚을 수도 없었다. 나는 정승처럼 일해서 개같이 써버리는 인간이었다. 


▲글 내용과 상관있는 거지가 된 손현주 짤. /인터넷 커뮤니티


학자금 대출뿐만이 아니다. 월급을 다 탕진하고 나서는 휴대전화 소액결제 차례였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쓸 뿐 아니라 어떻게든 돈을 갖다 쓸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미친듯이 써댔다. 기자로 일할 때 당시 나의 월급이 적은 편도 아니었는데, 배달 앱과 온갖 술자리, 휴대전화비 등으로 탈탈 털려 나갔다. 신용카드도 두 개나 써댔으니 월급날 통장에 들어온 돈은 흔적만 남기고 빠져 나갔고, 그걸 보면서 내 영혼도 빠져 나갔다. 그래도 나는 이 미친 짓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밝혔듯 나는 음식만 떠올리면 자동으로 배달 앱을 켜는 알고리즘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난 이게 우울증으로 인한 공허함을 채우려는 행위인지도 모른 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돈을 써댔다. 회사에서 통신비 지원도 10만원 가까이 해주었는데, 내 통장은 항상 보이스피싱이라도 당한 것마냥 돈이 탈탈 털려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문제는 내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면서 더 커진다. 회사도 그만둔 상태였고, 퇴직금도 동나가는데 병원조차 갈 돈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처음엔 검사비용이다 뭐다 해서 많은 금액이 나와도 남은 퇴직금으로 해결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병원을 다니면서도 폭식과 먹토는 계속 됐고 돈은 계속 사라져갔다. 약도 술을 먹을 땐 안 먹고 깜빡하고 안 먹고 하다 보니 이 망할 우울증이 호전되지는 않고 더 악화되는 기분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어 본가로 들어온 후엔 소소한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원비를 위한 '급전'이 필요했기에 주급으로 지급해주는 쿠팡 물류센터 알바를 일주일에 2~3번 정도 했다. 


새벽 1시에 시작해 오전 9시에 끝나는 일이었는데, 물건을 정해진 곳에 넣거나 바코드를 찍는 등 단순 업무였는데도 힘이 매우 들었다. 그래도 차주에 30만 원 안팎의 돈이 들어온 걸 볼 때마다 뿌듯했다. 게다가 본가에서는 가족들이 상주해 있으니 배달 앱을 이용할 수가 없어 폭식이 줄었다. 먹토 또한 덜 했다. 돈이 빠져나갈 루트가 하나 줄어든 것이다. 난 그렇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한다. 쿠팡 알바가 끝나갈 때쯤(오전 8시 50분경)이었다. 나는 갑자기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리고 기절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식은땀도 나고 숨을 못 쉴 것 같았다. 당시 써놓은 일기장 내용이다. 


쿠팡 물류센터 알바가 끝날 때쯤 갑자기 이명이 들리면서 쓰러질 것 같았다. 과호흡 증상이 와서 숨도 잘 쉬어지지 않고 침도 잘 삼켜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꿈을 꾼 것 같다. 다들 물건을 옮기며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말할 사람이 없어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가는 동안에도 중심이 잘 안 잡히고 기절할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서 30분가량 주저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입이 계속 마르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수돗물도 마셨다. 조금 안정됐나 싶어 다시 물류센터 현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 곳에서 물건 옮기는 소리와 박스를 탁탁 내려놓는 소리가 또 다시 귀에서 웅웅 거리며 중심을 잃을 것 같아 화장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때 나는 화장실에 40분가량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이 상태론 절대 집에 못 갈 것 같아 500번쯤 119 번호를 눌렀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일어서기만 하면 기절할 것 같았다. 결국 화장실에 한참을 머문 후 정신을 꽉 붙잡고 천천히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다행히 집에 잘 도착했다. 처음 겪어보는 증상에 쉴 새 없이 눈물이 나왔다. 며칠 후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이런 증상이 있었다고 설명드리니 '공황장애'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우울증에 걸리면 공황장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원인은 알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까지 약을 꾸준히 먹은 게 맞냐고 하셨다. 찔렸다. 약을 시간에 맞춰 먹지 않고, 까먹고 안 먹고, 술을 먹을 땐 당연히 약을 안 먹고를 반복했기에 병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병원 약을 늘리고 더 많은 돈을 약값으로 내야 했다. 나에겐 내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했지만, 만만치 않은 병원비를 해결할 방법도 너무나 중요했다. 안 그래도 경제관념이 없는데 병원 가기 전까지 병원비를 남겨놓는 능력이 없었다. 그 전까지 술값으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엄마께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30살이나 처먹고 교통비도 없고 병원비도 없으니 내가 봐도 참 한심한 인간이었다. 우울증으로 시작한 폭식과 먹토는 나를 거지로 만들었고 병원비조차 없는 슈퍼 거지로 이어지게 했다. 지금은 그나마 당근마켓으로 발품 팔아 작고 귀여운 생활비를 마련해놓은 상태다. 


나는 지금까지 교통비·병원비까지 몽땅 탕진하여 매일매일을 돈 걱정에 시달리는 그지 백수 거렁뱅이로 살아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다시는 거지로 살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우선 나는 거지 신세를 면하기 위해 집 근처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또, 누구보다 열심히 취업을 준비 중이다. 나는 '뼈를 갈아 일하겠으니 뽑아만 줍쇼'의 마인드로 이력서를 몇 군데에 넣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어디든 넣으면 어떻게든 되겠지'하며 대충 쓴 이력서를 아무데나 넣곤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진심을 담아 썼다고 자신한다. (그만큼 좋은 회사에 넣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취업 후에 월급을 받게 되면 무조건 엄마에게 맡기기로 다짐했다. 내 통장에 넣어뒀다간 깨진 항아리마냥 돈이 줄줄이 새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빚 또한 갚아 나갈 예정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간 경제관념도 생기고 돈도 한두 푼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내 나이는 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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