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의 당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연재하고 있는 이 글을 아빠가 영원히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부풀려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실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오랫동안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공황장애로 인해 밤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나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하셨다. 그땐 단순히 아빠가 술을 먹고 와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병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측은지심이 든다.
내가 알기로 아빠는 10년 이상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 게다가 황가네 명성에 알맞게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병원에 제때 다니지 않았으니 병이 호전될 리가 없었다. 아빠는 극도로 심한 우울증에 잡아 먹혀서 나아질 의지조차 잃어버린 것 같았다. 예전에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살 땐 나를 비롯해 엄마와 동생 또한 아빠의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밤마다 술을 먹고 와서 공황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빠를 보며 왜 저러나 싶었다. 솔직히 그땐 술이 아빠를 지배했다고 생각했기에 술을 마시고 와서 나의 잠을 깨우는 아빠가 미웠고, 전적으로 아빠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이해해보려는 시도조차 안 해봤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우울증은 환경적인 요인도 있지만 유전적인 요인도 어느 정도 차지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어렸을 때의 난 전혀 우울하지 않아서 유전적인 요인은 전혀 없는 것 같은데도 그렇다고 한다. 나의 우울증은 어렸을 때 속에 꼭꼭 감춰져 있다가 서른이 돼서야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온 건가. 어쨌든 나는 나의 병이 아빠로부터 유전되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아마도 환경적인 요인이 더 크지 않았을까. 아빠가 절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며.
서른이 된 나는 그때의 아빠처럼 알코올 러버에다 같은 병을 가지게 됐기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빠도 아팠던 거다. 지금 난 여러 가지 이유로 아빠와 연락을 하지 않은 지 꽤 돼서, 아빠가 현재 병에서 벗어나셨는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중요한 사실은 아빠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오랫동안 앓았고, 작은 일도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내 이야기를 들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나보다 아빠가 더 괴로워 할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충격을 받고 또 술을 오랫동안 들이키실지도 모른다. 아빠는 한번 술잔을 들면 술에 잠식당할 정도로 마신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술을 마시는 게 두려웠다. 병도 심해지는 데다 자고 있는 가족들을 모조리 깨우고 상처를 입히기 일쑤였다. 그런 아빠를 보며 '나는 커서 절대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는데 끝내 나도 알코올 러버가 돼 버렸다. 내 생각에 우울증은 모르겠지만 술은 확실히 유전이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글을 아빠에게 들키게 된다면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나아지고 싶다고. 나는 아빠가 당신 스스로를 비관하지 않기를 바라왔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랄 것이다. 병에 걸린 건 우리 잘못이 아니니까. 일종의 감기 같은 거니까 약만 꾸준히 먹어도 호전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