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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Apr 09. 2024

나만의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

오늘은 내가 비련의 여주인공

내 기분은 약을 먹지 않으면 하루종일 조절이 되지 않았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우울을 갑자기 끌어와서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 세웠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소용 없고, 물을 가득 집어넣은, 장막 쳐진 원 속에 갇혀 발 끝이 닿지 않아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우울은 자꾸 나에게 '이렇게 살아서 뭐할 거니?'하고 물어댔다. 나는 갑자기 원인도 모를 눈물을 흘리며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우울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나만의 방법에 대해 소개해보겠다.  

▲ 글의 내용과 상관 없는 술집에서 서비스로 받은 귀여운 아이스크림. 가끔은 이런 귀여운 서비스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첫 번째, 이건 누구나 많이 들어봤을 뻔한 얘기지만, 정말 효과가 좋기 때문에 소개한다. 바로 운동이다. 나 역시 "운동은 사람에게 활력을 주고 어쩌구……."하는 말을 귀에 딱지 앉게 들어봤다. 우울하다고 누군가에게 말할 때마다 "네가 지금 일을 안 해서 그래. 운동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 봐." 라든가 "땀을 흘리는 운동을 시작해 봐. 기분이 한결 나아져." 등등의 말들을 들었다. 하지만 깊은 우울에 빠져 당장 밖에 나갈 신발 신을 힘도 없는 나에게 운동을 하라는 건 몹시 어려운 문제였다. 나아지리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렇게 귀를 막고 살아오다가 약을 먹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어느날, 나는 용기 내어 아파트 헬스장에 등록하게 된다.


헬스장은 가까운 게 최고다. 우리 아파트 헬스장은 야외에 나갈 일 없이 지하 주차장을 통해 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추레한 차림으로도 빠르게 갈 수 있다. 헬스장까지의 동선이 짧아서 많은 사람들을 마주칠 일도 없다. 헬스장에 가보니 사람들이 활력을 되찾는 데는 운동이 최고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생각보다 많은 주민들이 러닝머신을 타며 땀을 흘리고, 근육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기구를 들고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란 사람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오랜만에 러닝머신에 올라타 15분간 뛰다 걷다 해보니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힘들어도 억지로 했다. 다른 사람들도 열심인데, 나만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보다 15분 만에 땀이 빠르게 흘렀고, 뭔가를 내가 이뤄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더 열심히, 제대로 운동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휴무일 빼고는 매일매일 헬스장에 다니게 됐다. 최근엔 줌바(Zumba)가 재밌어 보여서 시작했다. 많은 아주머니들과 뒤섞여, 되지도 않는 동작들을 열심히 따라추다 보면 세로토닌(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게 마구 분비되는 것 같다. 헬스가 아니라도, 줌바가 아니라도 좋다. 배드민턴이든, 달리기든 어떤 운동이든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우울이 멀리 떠나 있다. 내가 장담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조금 이상한 방법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꽤 오랫동안 써먹어 본 방법인데 효과가 있다.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설정을 하는 것이다. 콘셉트는 그날그날 다르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동네 양아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우울이 찾아올 때마다 '씨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노래를 자주 듣는 편이다. 슬픈 노래를 들을 땐 가사에 맞춰 헤어진 지 얼마 안된 여리여리한 여자가 된다. '이별했다……. 슬프다'를 되뇌이며 예쁘게 꾸미고 밖을 나선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걷는 나에게 한 남자가 걸어와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건 현실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뭐 어떤가.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더라도 집에 와서 양푼 비빔밥 하나 먹으며 나를 찬 남자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면 된다.


동네 양아치가 되는 방법은 쉽다. 나의 경우엔 유튜브로 '기분이 좆같을 때 듣는 노래'라는 플레이리스트를 자주 듣는 편인데, 이걸 들으면서 벤치에 앉아(흡연구역이어야 한다) 담배를 피운다. 어떤 노래든 상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힙(Hip)한 노래를 들으면 된다. '좆됐다 좆됐어'라는 노래도 추천한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 '어쩌라고요. 담배 피우는 사람 처음 봐요?'라는 눈빛으로 쳐다봐줘야 한다. (계속 눈을 부라리다가는 싸움이 붙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콘셉트질하기를 좋아한다. 모든 것이 콘셉트이기 때문에 우울하더라도 나는 '우울한 비련의 주인공'일 뿐이지 결코 우울증 환자가 아니다.


세 번째, 안 해봤던 행동을 한다. ESTP인 나의 경우엔 계획에 없던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갑자기 버스를 타고 월미도까지 떠난다거나, 지하철을 타고 서울 끝까지 떠나본다. 이런 경우에 어떤 콘셉트까지 더해주면 좋다. 망사 스타킹을 신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가 센치해져서 혼자 여행하는 콘셉트나, 버스나 지하철의 종점까지 가는 내내 더럽게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수학박사 콘셉트로 가도 좋다. 어차피 사람들은 나에게 한 번 이상의 눈길을 주진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먹혔던 방법이지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통할 수도 있다.(다만 운동만큼은 진짜 효과 보장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다 보면 언젠가 꼭, 반드시, 나도 모르는 새에 우울이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장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형태의 우울에 빠져 있든 나의 감정은 나만이 결정할 수 있다.


오늘 나는 일본에서 처음 한국에 온 자유분방한 여자 콘셉트로 외출을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길을 걷다 히메컷에 자유분방한 일본인 콘셉트를 한 것 같은 여자를 마주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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