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Apr 11. 2024

썸남 100명 만들기 프로젝트

썸남을 100명 만들면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고백한다. 나는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끼)'였다. 썸남 100명 만들기가 목표였다. 물론 목표에 도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이런 목표를 세운 이유는 오랜 애정결핍과 우울증으로 인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어쩌구……. 변명 아닌 변명이다. 술 취하면 온갖 남자들의 번호를 따는 요상한 술버릇도 있었다. 나는 술 취해서 잘생긴 남자에게 번호를 따고 같이 사진도 찍는 대단한 남미새였다.


▲ 술집에서 처음 보는 남자와 찍은 사진.


이전에도 밝혔듯 나는 연애를 가장 오래 쉰 기간이 3개월인 사람이다. 그 연애 공백 사이에 썸남을 100명 정도 채워야 공허함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의 썸남들은 매일 내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언제 만날 건지 물어왔다. 그게 좋았다. 내가 우울하지 않게 적당히 웃겨주고, 안부를 물어봐주는. 그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와 친구들은 내 썸남들을 '심심이'라고 불렀다. 심심이1, 심심이2, 심심이3……. 그들은 대개 술집에서 헌팅을 하거나, 소개를 받았다가 썸만 타는 관계로 변한 케이스다. 돌이켜 보면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우울증은 어떻게든 내가 썸남들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만나도록 했다. 너무 많은 썸남을 만들어 냈다가 정보를 헷갈릴까 봐 저장해둔 이름 옆에 '(나이, 사는 곳, 회사)' 이런 식으로 적어놨었다. 썸남을 만날 때는 즐거웠다. 예쁜 내 모습을 좋아해주는 그의 눈빛이 좋았고, 정식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썸이라는 관계 하에 하는 데이트도 즐거웠다. 원치 않는 스킨십을 하려 할 땐 관계를 끊어내야 할 타이밍이다. 그럴 땐 "우리 아직 사귀는 관계도 아닌데?"라는 말로 끊어내곤 했다.


하지만, 썸남을 만나고 오면 우울함과 공허함이 항상 뒤따랐다. 그들을 만나는 순간에만 재밌고 즐거웠던 것이다. 그들을 통해 잠시나마 공허함을 없애고 자존감을 높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못됐다. 그래도 이런 행위에서 도파민을 찾았던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썸남들을 통해 이별의 슬픔을 달래려고 하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들이 많은데 그깟 한 놈 때문에 슬퍼할 이유가 뭐 있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에게 차였을 땐 썸남 100명으로도 이별의 슬픔을 달랠 순 없었다. 나는 썸남들과 카톡과 전화로 시시덕 대다가도, 같이 술을 마시다가도, 울어야 했다. 내 썸남들은 진짜 내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세상에 남자가 많으면 뭐해. 네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슬퍼했다. 결국 어떤 썸남도 나의 우울과 슬픔, 공허함을 완벽히 채워주진 못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를 규탄하고 반성한다.


병원에 갔을 때 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저는 남자에게 너무 기대려고 해요.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그게 너무 슬퍼서 다른 사람들을 자꾸 만나고, 술을 먹고 그래요. 잘못된 행동인 걸 알면서도 자꾸 그래요."


의사 선생님은 잠깐 고민하시더니 "잘못된 행동인 걸 알면서 왜 자꾸 하려고 하는 걸까요?"라고 내게 되물었다. 나는 "우울증 때문인지 항상 외롭고 공허해요. 그걸 술과 남자로 해소하려고 해왔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정말이었다. 선생님이 내려주신 처방은 내가 예상했던 것이었다. 술과 남자 말고 취미생활 등 다른 행위를 하면서 공허함을 없애려 노력해보라는 것. 그리고 제발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는 것. 선생님은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강조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하루종일 잠이나 자다가 저녁만 되면 남자에 홀린 미친년이 되어 술 먹으러 밖에 나가대니 우울함이 사라질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썸남 100명 만들기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심심이들과 나는 연락 몇 번 안 하면 끝이 나는 허무한 관계였다. 정말로 내가 연락을 제때 하지 않으니 썸남들은 점점 떨어져 나갔다. 어쩌면 나도 그들의 수많은 썸녀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나는 잘못된 걸 알면서도 우울하다, 공허하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더 망치는 행위를 계속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썸남들에게도 석고대죄할 만한 행동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거였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헬스와 줌바 등 운동과 공부를 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 노력하려는 의지를 가지니 바로잡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남자와 연락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딱 한 명의 남자와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이 정도면 남미새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겠지. 그리고 스스로 우울함과 공허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계속 배우는 중이다. 미스에이의 '남자없이 잘 살아' 노래처럼 남자없이도 즐겁게 사는 인생을 위하여 건배.

이전 11화 나만의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