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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Apr 18. 2024

혐오스러운 인간들에 대한 탐구

혐오 인간 보존의 법칙

나는 혐오스러운 인간들이 생기면 데스노트를 쓴다. 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언론사에 다닐 땐 기사를 쓰다가도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생기면 일기장을 꺼내 그 사람에 대한 욕을 적었다. 나는 회사 내에서 멍청한데 쓸데없이 부지런한 사람(줄여서 멍부)을 극히 혐오해서, 그들에 대한 욕이 가장 많다. 멍부가 상사일 땐 답도 없다. 나의 한 상사는 본인이 했던 업무 지시를 금붕어 대가리마냥 자꾸 까먹어서 나를 애먹였다. 그때 나는 기사를 쓰다 말고 일기장을 꺼내 욕을 마구 써재꼈다. 내 우울증의 원인에는 그들의 지분도 크게 있다. 내가 썼던 일기장의 한 구절이다.


'멍부 미친놈이 또 시작이다. 개새끼라는 단어는 개들한테 모욕적이니까 빡대갈이라고 해야겠다. 대단한 새끼. 이 정도로 멍청한 놈은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살인 충동 든다.'


멍부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본인이 지시했던 것 기억 못 하기, 최고로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하기. 전자는 그나마 괜찮다. 그들이 지시했던 메신저 내용을 그대로 복붙하거나 캡처해서 다시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무 말도 못한다. 하지만 후자는 최악이다. 일단 상사이기 때문에 지시를 그 방식을 따르는 척이라도 해야 하고, 멍부들은 대체로 고지식한 데다 고집스럽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처음부터 지시하면 금방 끝났을 일을 세 번에 걸쳐 지시하니 일이 안 끝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봐온 멍부들은 주말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들 눈엔 워커홀릭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가까운 팀원이 봤을 땐 그냥 '멍청해서'다.


내가 혐오하는 또 다른 인간 유형이 있다. 남의 아픔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이다. 나의 경우엔 최근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의 사장이 그랬다. 그도 나와 같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다. (나는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아 병세가 악화되어 공황장애가 가끔 온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 나는 약을 먹지 않으면 기절할 것 같고 심장이 매우 빨리 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었다. 가게에서 6시에 맞춰 약을 먹는데 사장이 말했다.


"약을 왜 먹어? 난 정신력으로 극복했어~"


어리둥절한 나는 어떻게 정신력으로 극복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의지를 가지면 충분히 약을 안 먹고도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개소리였다. 그렇다면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심지어 입원 치료도 받는 수많은 환자들은 다 의지가 박약해서란 말인가.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 않기로 했다.


심지어는 남의 아픔에 공감 못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인간들도 있다. 'T'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인간들은 '세상 사람들은 다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자신은 MBTI가 T라서 공감을 잘 못한단다.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도 T지만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이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타인에 대한 공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자랑이란 말인가. (참고로 난 사회화된 T다)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 우리는 힘들 때 자신의 아픔을 가장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인간들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는 금물이다. "너는 그나마 나은 거야~ 나는 어쩌구……. "와 같은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혐오스러운 인간들은 어디에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를 그만두니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혐오스러운 인간이 있었고, 새 아르바이트를 구하니 거기에도 그런 인간이 있었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처럼 혐오 인간 보존 법칙도 있는 게 분명하다. 가끔은 나도 누군가에겐 혐오스러운 인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순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데스노트에 내 이름이 빨간 글씨로 적혀 있을지도. 뭐 어쩌겠는가. 그냥 최대한 남에게 피해 안 주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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