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Apr 21. 2024

우울증 환자의 5년 전은 어땠을까

블랙 코미디 같은 인생이라도 괜찮아

방에 있는 책들을 살피다가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약 5년 전 일기장을 발견했다. 25살이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파릇파릇했기에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생각하며 찬찬히 읽어봤다. 그런데 내 착각이었다. 웃기게도 그때의 나는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사는 곳이 달랐다는 것 정도. 참 블랙 코미디 같다.

2018년 6월 20일에 쓴 일기다.


어제 술 먹고 실수를 해버렸다. 처음에 눈을 딱 떴을 때는 너무 놀라고 자괴감이 들었다. 실수를 하면서도 이렇게나 술을 좋아하다니 참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쳐야지 정말.


금사빠 기질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다.

그 애를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고 있다. 자주 듣는 노래가 뭔지 궁금하고, 요즘 본다는 드라마는 나도 챙겨보고 싶다. 그 느낌을, 그 감상 소감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그 애가 나에 대해 궁금해 해주는 게 좋다. 어떻게 사적으로 아직 만난 적도 없는데 이럴 수가 있는지 신기하다. 나 원래 이렇게 금사빠였나? 그 애도 나를 이만큼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참 아련한 사랑이다. '그 애'가 누군지 지금으로썬 명확히 알 길이 없다. 대충 예상가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와 나중에 이틀 정도 사귀었다가 좋지 않은 이유로 헤어졌기 때문에 생각하기 싫다. 너무도 신기한 건 최근에도 이와 같은 일기를 쓴 적이 있다는 것이다. 작년 8월 24일에 쓴 일기다.

 

OOO 선배 마성의 선배. (중략) OO 선배와 조금만 연락을 이어가도 계속 설레고 생각나는 병에 걸렸나. "선배가 너무 좋아서 술만 마시면 생각나고 자꾸 연락하고 싶나 봐요."라고 말하고 싶다. "선배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세요?" 물어보고 말 걸고 싶다. 밤새 시와 소설, 선배의 가치관 이야기를 하며 카톡하고 싶다. 전화도 하고 싶다. 너무 멋있다고, 좋아한다고 백 번쯤 고백하고 싶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당시에도 난 사랑에 빠지고 술을 매일같이 마셨으며 고백 공격을 준비하곤 했다. 어쩜 이렇게 변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아마 그때도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오가며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황혜빈에게도 배울 점이 있었다.


이번 일기는 2017년 12월 13일에 쓴 일기다. 25살을 맞이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평범'의 기준에 욱여넣고 살아왔다. 다수가 살아온 대로. 그들이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는 삶. 도대체 뭐가 옳은 것이고 뭐가 평범한 거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건데? 남들과 공감하기 위해, 그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내 가치관을 뭉개버리는 짓은 하지 않겠다. 훗날 후회하더라도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 (그렇다고 개처럼 막 살겠단 소리는 아님) 내 아픔과 오롯이 마주하고 그것과 소통하며 귀 기울이겠다. 누가 뭐라고 비난해도 나는 내 아픔이 가장 크고, 애틋하고, 슬프다.

나는 지금도 그렇다. 이때 쓴 일기처럼 살고 있다. 나는 내 아픔이 가장 크고 애틋하고 슬프며, 나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다.


또, 24살의 황혜빈은 글을 쓰고 싶어 했다. 글 쓰는 사람들을 멋있어 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일기가 아닌 사람들이 보는 이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는 사실. 새삼 신기하고도 감사했다. 2017년 11월 20일에 쓴 일기는 이렇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크다. 가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자신의 생각을 '명쾌한' 단어들로 잘 표현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들. 내가 글을 쓰려고 할 때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단어들. 내 생각과 비슷한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참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예상컨대 이십대 중반의 황혜빈은 서른살이 되어 우울증 판정을 받을 줄은 몰랐겠지만, 꽤 괜찮은 서른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즘의 나는 보통의 삶은 아닐지라도 나만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고 있다.


30대를 지나면서도 지금의 글들을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있겠지. 그때도 괜찮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느끼길 바란다. 20대의 나날들을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쓴 나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전 14화 혐오스러운 인간들에 대한 탐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