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Apr 25. 2024

나는 개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술 없이 즐겁게 사는 법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안장애, 알코올 중독 등 각종 판정을 받아 놓고도 치료에 마이너스가 되는 술을 꾸준히 음용해왔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인생 처음으로 '금주'를 선언했다. 10년 동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내가 금주라니. 나는 누구보다 술을 사랑해서, 금주랑은 거리가 아주 아주 아주 먼 사람이었다. 심지어 과거 남자친구들 중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다. "넌 술이 나보다 좋지?" 그 말에 난 차마 답하지 못했다. 그런 술고래가 술을 끊는다고 선언한 것은 남북이 통일할 만한 아주 중대한 사건인 거다. 참고로 난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함부로 입 밖에 내뱉지 않는다. 특히 술과 관련해서는. 


나는 완벽한 금주를 하기 위해 주변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정말로 정말로 금주를 할 것이라고. 실패하면 길거리에서 줌바 댄스를 추고(난 요즘 줌바를 배우고 있다) 사람이 아닌 개로 살겠다고 밝혔다. 오늘은 금주 선언 3일째, 나는 지금 소주를 무지 들이붓고 싶다. '소주'라는 두 글자만 생각하면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커진다. 역시나 알코올 중독은 쉽게 고칠 수 없다. 


여러 가지 정신병에 걸렸어도 술을 매일같이 먹던 내가 돌연 금주를 선언한 이유는 단순히 백해무익해서다. 술을 마시고 나면 항상 후회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음 날 피곤과 숙취에 절어 해야 할 일을 못하거나, 우리집이 아닌 곳에서 눈을 뜨는 등의 일을 경험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내가 금주를 하게 된 데는 최근 친해진 사람들이 술을 안 마시는 덕분도 있다. 덕분에 나는 술 없이도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아주 조금은 알게 됐다. 선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배운, 술 없이 즐겁게 노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바로 게임이다. 그것도 아주 건전한 보드게임. 나는 처음으로 보드게임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다같이 둘러 앉아 게임에 열중하다 보니 술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좀 생각나긴 했다.) 내가 술병을 붙들고 있는 동안,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은 건전하고도 머리까지 맑아지는 게임을 즐기고 있던 것이다. 나는 평소에 자주 만나왔던 사람들이 거의 술을 먹어서 보드게임을 하는 방법도 모르는 데다, 하려는 시도조차도 안 해봤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술이 당기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사실 나에게 그런 음식은 매우 드물긴 한데, 보통의 사람들이 소주 없이 잘 먹는 음식을 찾으면 된다. 예를 들자면 떡볶이나 짜장면, 햄버거 등이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엔 처음부터 차라리 술 없이 게임을 하는 편이 낫다. 나는 모든 음식에 술을 곁들이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밥알 한 톨에도 소주를 곁들이고 싶은 병에 걸렸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성향이라면 이 방법을 아주 추천하진 않는다. 


나는 기쁠 때도 술, 슬플 때도 술, 화날 때도 술, 친구들과 만날 때도 술, 데이트할 때도 술…… 항상 술이었다. 나에게 술이란 전혀 질릴 수가 없는 음식이다. (현재형으로 서술한 이유는 지금도 질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담배도 마음 먹고 끊는 중인데, 담배보다 술 끊기가 100000000배는 더 어렵다. 담배란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나에겐 담배가 아니라 술이 그런 존재다. 참는 것도 3일을 넘기기가 정말 힘들다. 


정말로 술을 끊기 위해 술의 단점과 장점을 나누어 적어봤다. 내가 생각해도 장점은 정말 쥐어 짜냈다. 단점이 훨씬 많았다. 역시 술은 안 먹는 게 나았다. 특히나 나는 흑역사를 자주 생성해내는 편이기 때문에, 내 이미지를 '나이를 서른이나 처먹고 맨날 술 먹고 실수나 하는 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결국 술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가족도, 남자도, 마지막엔 그토록 사랑하는 술 자체도. 



생각건대, 나는 술 자체보다는 '즐거운 자리'가 좋았던 것이기 때문에 술 없이 즐겁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요즘엔 게임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운동을 함께 하려 하고 있다. 줌바를 배우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술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나갈 것이다. 나는 술 없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정말로 개가 되어 거리 한복판에서 줌바 댄스를 추는 날이 오지 않길 바라며. 

이전 15화 우울증 환자의 5년 전은 어땠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