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비관하는 이들에게
나는 원래 나 우울증이 있어서 병원에 다닌다, 먹토(먹고 토하기)도 한다 등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지 못했다. 특히 먹토를 한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면 혐오스러워 하고 역겨워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난 내 우울을 병원에 가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않아도 혼자서 잘 이겨낼 줄 알았다. 나는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온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울이란 그림자는 항상 내 옆에 드리워져 있었다. 매일 같이 토하고 울고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한 건 병원에 다닌 후 글을 써보기로 다짐하면서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내 생각보다 놀라지 않았다. "헐 그랬어?", "야, 난 진짜 몰랐잖아.", "진작 말하지. 혼자 얼마나 힘들었냐." 등의 반응이 대다수였다. 어떤 친구는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말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나는 친구를 포함해 사람들에게 내 약점을 밝혔다간 흉이 될까 봐 무서웠다.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면 '하자 있는 인간'이라는 낙인을 스스로 꽝! 찍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사회의 낙오자가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병원에 다니고 의사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생각이 바뀌어 갔다. 내 친구들은 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정말로 진심을 다해 힘이 돼 주었다. "힘이 나지 않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네가 너의 아픈 부분도 인정하고 그 또한 사랑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진심을 다해 해준 말이다.
나는 내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가엾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내 나이 또래의 누군가와 인생을 비교하면서 불행 배틀을 한다. 물론 내 인생이 가장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상에는 모두 각자만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는 우울증과 관련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 있는데, 거기 들어가면 모두 자신의 인생을 한탄한다. A씨는 가정 형편은 좋지만, 부모로부터 폭언을 들으며 자라서 평생을 자해하며 살아왔다. B씨는 가족 관계는 좋지만, 돈이 너무나 없어서 부모의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한다. C씨는 조현병에 걸려서 언제 이상 증세가 나타날지 몰라 밖에 잘 나가지 못한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 500명 가까이 된다. 모두 불과 몇 달 전의 나처럼 자신의 인생이 가장 망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채팅방에 있는 이들이 모두 친구들로부터 힘을 얻게 될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나는 그저 (친구가 있든 없든, 가족이 있든 없든, 빚이 있든 없든) 인생이 망해도 괜찮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인생은 유한하고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뿐이다. 우울함이 찾아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어느 누구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가족도, 의사 선생님도 그렇다. 내 인생은 내 거고 아무도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나는 자유롭게 살 자격이 있다. 어차피 모두 끝이 있는 인생인데 망하고 말고는 누가 판단할 것인가?
또 망한 인생이면 좀 어떤가? 그렇게 남과 비교해서 혼자 인생 망했다고 판단하고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건 결국 나다. 또한,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하다. 주어진 시간은 같고, 그 안에서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을 만들어가는 건 나 자신이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결정을 내릴 자격은 나에게만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인생이 망했다고 슬퍼할 시간엔 차라리 잠을 자기로 했다. 마냥 슬퍼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건 정말로 슬퍼서 눈물을 흘려야 할 때만 하고, 나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슬퍼하는 건 인생에 쥐똥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가장 낫다. 정말이지, 내 인생을 평가할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대충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인생에는 대충 살고 말고의 기준 또한 없다. 예를 들어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기준을 스스로 정해놓으면, 그 족쇄에 항상 끌려다니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 기준에 미달한다면 나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거다. 나는 내 인생에서 항상 승리하기 위해 이런 기준들을 정해놓지 않기로 했다. 남들 눈에 실패한 것처럼 보여지면 어떤가. 남을 그렇게 평가내리는 그들 또한 평생 남들과 비교 당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병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잠깐 감기에 걸린 것일 뿐인데 뭐? 나으면 되지 어쩌라고? 그리고 내 인생에 훈수 두려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자. 감사합니다만, 어쩔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