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즐겁고 싶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 부터 방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학창시절에 금요일이 되면 내 방은 시끌벅적했다. 작은 다락방에서 침대와 옷장, 책상 모든 가구들을 배치를 바꿨다. 매주. 그럼 엄마는 늘 “또 시작됐네.”라고 말하곤 하셨다. 혼자서 그렇게 새로 배치한 가구들을 볼 때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작은 힘으로 무엇하나 혼자서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낄 때 방 꾸미는 일은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땐 취향이랄 것도 없으니 그저 엄마가 사다놓아준 각자 색이 다른 원목의 가구들과 각양각색 화련한 무늬의 침구들로 채워졌다.
조금 더 크자 깔끔한 것이 좋겠다고 하여 화이트로 가구들을 바꾸고 싶다고 하였는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하나로 통일된 화이트가 아닌, 조금씩 다 다른 화이트 가구들을 사주셨다. 마음에 크게 들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그곳에서 내가 꾸밀 수 있는 건 책장 위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올리는 일이 다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낭만을 즐기며 산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락방이 딸린 집에 살았던 우리 가족의 집의 다락방은 늘 내 방이 되었다.
다락방은 다들 선호하지 않는다. 벌레도 많이 나오고 추울 때 엄청 춥고 더울 땐 엄청 덥다. 바빠서 뛰어서 계단을 내려가거나 올라가다보면 크게 다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난 다락방이 좋았다. 오로지 나만의 공간이라서 그런지 그 불편함들 쯤이야 나만의 공간을 위해 참을 수 있었다. 한 번도 다락방이 싫다고 한 적은 없었다. 아쉬운 거라곤 그땐 지금처럼 스마트폰 사용이 활발하던 때가 아니라서 사진 한 장 없다는 것이다. 소중한 나만의 아지트였는데. 그래도 내 기억속에 있어서 평생의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고, 그때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꾸미는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도 독특하게 보라빛 가득한 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그 당시에 느끼는 감정보다 지금 그 시절을 떠올리며 느끼는 감정이 더 클 것 같다. 그땐 즐거웠고 당연했고 그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즐겁다고 느낀다면 꼭 기록을 해놓는다. 특히 사진을 꼭 찍어놓으려한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글보다는 사진이, 사진보다는 영상이 그때의 감각을 더 생생하게 떠올리게 해준다. 오늘 오랜만에 방구조를 바꾸면서, 그리고 ‘아이들은 즐겁다’라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그 시절 나의 아지트가 떠올랐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주 구체적인 디테일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락방에서 있었던 큰 사건들과 감정들은 남아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보니 내가 그때 참 즐거웠나보다. 아이들은 즐겁다. 어른도 즐겁고 싶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보다 독특하면서 즐겁고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추억에 젖어 급 그려본 다락방 구도ㅋㅋㅋ 창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옥상과 연결되어 있어서 옥상에 있는 사람의 발이 보였고, 하나는 바로 뒤에 산이 있어서 차문을 열면 나뭇가지가 뿅 하고 튀어 나오기도 했다. 참 재밌는 곳에 살았다. 다락방에서 계단으로 내려가기 전에 아주 작은 공간이 있는데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서 항상 그곳에서 빨래를 널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가끔 장난으로 다락방이 있던 그 집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말 못 할 정도로 심했던 벌레와의 사투들 때문에 망설여지기는 한다ㅋㅋㅋ 그래도 언젠가는 다락방이 있는 집에 한 번 더 살아보고 싶다. 나에게 자녀가 생긴다면 어렸을 때부터 ‘나만의 공간, 아지트‘라는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고, 또 옥상과 테라스도 있으면 좋겠다.(욕심 많은 사람,,) 이렇게 거대하게 꿈꾸다 보면 한 두가지는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때 지금의 글을 보면서 ’그때 꿈꾸길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