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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 맞이해 기록하는 테라스 텃밭일기

어른이 된다는 건

나는 테라스가 있는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한 이후로 하나의 취미가 생겼는데 바로 씨앗 심기다. 본가에 있을 땐 엄마가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고 있어도 큰 관심이 없었는데, 넓은 테라스가 생기다보니 부지런한 농부이자 정원사가 되었다.


기억이 없던 아주 어린시절에나 했을 법한 씨앗심기는 어른이 된 내 삶에 새로운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어렸을 때 나는 농사 짓기와 관련된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는 과정이 뭔가 모를 뿌듯함을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게임을 실제로 하고 있는 것과 같은데, 그때와 다른 점은 씨앗을 심고 언제 틀지 모르는 싹을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도 항상 씨앗을 심지는 않고 눈에 보이는 모종을 심는다. 아이들은 눈에 보여야 흥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아마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생긴다는 것 아닐까.


씨앗이 싹이 틀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지루함이 아닌 설렘의 나날이다. 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고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면서, 정성을 들여서 돌봤다면 분명히 싹이 트기 때문에, 언제 싹이 틀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매일 같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아주 작은 싹이 틀 때면 어린 아이들처럼 신기해하고 기분이 들뜬다.


어릴 때보다 크기는 커졌지만 여전히 작은 손으로 한 생명을 태어나게 했다는 사실은 굉장한 뿌듯함을 준다. 아이를 낳는 일은 이것과 비교도 되지 않겠지?


모종부터 심는 일은 중간과정부터 즐기는 일이라면 씨앗을 심는 일은 첫 시작부터 함께 하는 일인 것 같다. 첫 시작부터 함께 하다 보면 마치 스타트업의 첫 직원처럼 중간부터 입사한 사람들이 모르는, 재밌는 추억과 에피소드들이 생기고 서로 더 돈독해지는 게 있다. 나도 씨앗을 심으면서 식물에 대해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해바라기는 씨앗에서 싹이트면 그 씨앗 안에 잎이 들어간 채 자란다. 마치 해바라기 씨앗이 잎을 잡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처음 멀리서 봤을 땐 잎에 벌레가 앉았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씨앗이었다. 이것도 씨앗을 심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인데 너무 흥미로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잎이 펴지면 씨앗은 흙위에 떨어지는데, 왠지 싹이 자라는 과정의 흔적 같아서 치우지 않고 그대로 뒀다.


그렇게 다양한 씨앗들을 하나씩 하나씩 심다보니 어느덧 작은 텃밭이 생겼고, 다양한 새싹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퇴근 후에 집에 오면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기 전에 하는 일이, 이 새싹들을 관찰하는 일이다. 키가 조금 자라거나 잎이 하나 더 생기는 등 이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릴 때 그렇게 귀엽고 재밌을 수가 없다. 정말 보고 있으면 귀엽다. 왜 아이들을 새싹같다고 비유하는지 알 것 같다.


같은 종이라도 싹이 트는 기간도 조금씩 다르고, 그 모양도, 자라는 과정도 다 다르다. 아이들도 같은 나이라도 발달상황이 다 다르고 외모와 성격 모두 다르고,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도 다 다르다. 그런 아이라는 새싹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데, 그 어른이 꽃을 피우는 계절도 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나‘라는 유일한 씨앗에서 자라난 싹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방법에 따라 물과 햇빛, 바람을 줘야하고, 그 꽃이 피는 시기를 기다려야한다. 지금껏 내가 쌓아아왔던 것들로 예쁘게 필 꽃을 기대하고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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