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7화 / 소포클레스

by 강문정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쉴리 전시실 진입로에는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 장 구종(1510-1566)의 작품 네 점이 있다.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에 대한 내용이다. 관람객들은 네 작품 중에서 유독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를 집중적으로 바라본다. 사실 신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안티고네 가슴에 얼굴을 묻은 오이디푸스 모습은 연민을 느끼기는커녕 보기 민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보면 두 사람 얼굴에는 고통과 절망이 배어 있다. 두 사람 다 하늘을 향해 자신들의 비극적인 숙명에 대해 절규하는 표정이다. 그렇다. 그리스 신화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을 주제로 하고 그리스 작가 소포크레스는 그런 내용을 사람들에게 좀 더 극적으로 전해준다.



나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다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대체적으로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극한적인 비극이다.


신화의 주제는 자신 앞에 닥칠 불행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인간의 숙명론에 대한 것이겠지만, 설정 자체가 너무 잔인하다. 사람들이 흔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정도로 알고 있는 신화는 끔찍하며 처절한 이야기다.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태어날 아기가 왕권을 위협한다는 신탁을 받는다. 라이오스는 예언이 두려워 왕비가 아들을 낳자마자 갓난아기를 죽이라 명한다. 명령받은 자는 차마 아기를 죽일 수 없었으므로 나무에 매달아 놓고 왕에게는 죽였다고 보고한다.


마침 길을 지나던 농부가 아기를 발견해 부잣집에 맡기게 되며, 아기를 건네받은 부부는 아기 이름을 오이디푸스라 짓고 정성껏 키워 잘 성장한다.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더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 양부모 집을 떠난다. 그즈음 왕 라이오스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시종과 함께 길을 가다가 우연히 오이디푸스와 마주친다. 라이오스의 시종이 오이디푸스에게 강압적으로 길을 비키라고 하자 혈기왕성한 오이디푸스는 명령을 거부한다. 성질 급한 시종은 다짜고짜로 오이디푸스의 말을 죽이고 이에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시종과 시비를 벌이다가 라이오스가 자신의 부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를 죽이게 된다.


라이오스는 권력에 눈멀어 영원히 그것을 움켜쥘 욕심으로 비겁하고 무책임하게 아들을 버리지만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악만큼이나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자신 혼자 모든 영화를 누리기 위해 자식을 버린 그가 던진 부메랑은 잠시 눈앞에서 사라진 듯했으나 그가 지은 죄의 무게를 휘감고 되돌아와 그를 쓰러뜨린 것이다.


그즈음 테바이에는 괴물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머리는 여자고 몸은 사자인 스핑크스는 행인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 답을 말하지 못하면 잔인하게 죽여버려서 테바이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상에 두려울 것 없는 청년 오이디푸스는 외려 스핑크스를 찾아가서 어떤 것이든 풀 수 있으니 문제를 내라고 당당하게 맞선다.


스핑크스가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인 동물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자 오이디푸스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거침없이 대답하는 젊은 오이디푸스 기세에 짓눌려 스핑크스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사라진다.


앵그르, <스핑크스의 질문에 대답하는 오이디푸스> 1808, 루브르 박물관.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통쾌하게 물리치자 테바이 사람들은 용기 있고 지혜로운 청년을 왕으로 추대한다. 왕이 죽은 후 남편 뒤를 이어 여왕이 된 이오카스테는 새로이 등극한 왕과 자연스레 결혼한다. 그들은 아이들을 낳고 살게 되는데, 언젠가부터 테바이에 기근과 흉작이 이어지고 불행이 끊이지 않는다.


오이디푸스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신전을 찾고 나서야 모든 불행의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오이디푸스는 이제까지 자신이 저지른 과오와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스러운 일들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에 휩싸인다. 그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처절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눈을 찌르고는 미쳐버리기에 이른다.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죄책감에 자신의 눈을 찌르는 오이디푸스, 장 구종(Jean Goujon)의 조각 작품, 파리 루브르 박물관.


오이디푸스 어머니 이오카스테 역시도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이어진다. 모든 사람이 오이디푸스를 경멸하고 저주하는 상황에서 오직 그의 딸 안티고네만이 천형을 받는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보듬어 안고 아기를 달래듯 위로한다는 내용이다.


안티고네, 그녀는 예술에 자주 등장하는 고뇌의 상징으로 표현되지만, 듣고 보기만 해도 참담한 슬픔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는 상징적 모델이기도 하다. 문학, 연극, 조각이나 회화에도 자주 소재가 되는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신화는 인간 세상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이다.


요한 피터 크라프트(Johann Peter Krafft),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1809.


누가 오이디푸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안티고네를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라이오스는 자신의 안전과 부질없는 권력 때문에 아들을 버리고 죽이려 했지만 자신이 던진 날카로운 운명의 부메랑은 그대로 돌아와서 자기 심장을 찔렀다. 라이오스 본인이 천륜을 거부한 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아들에게 수천 배로 전가시킨 셈이다.


요즘엔 이 이야기보다 더 끔찍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적인 영화나 소설들이 많이 나와서 “이 정도는”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로서는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가 마음 아프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사람 사는 곳곳에서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 가정이 존재하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저질러지는 폭력과 갈등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이런 작품을 쓰고 만드는 작가나 감독들은 언어와 신체적인 폭력과 싸움이 반복되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결코 순탄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사회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고 법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는 가학적 행위를 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건 상대적으로 그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더구나 우울증이나 조울증, 피해망상증 혹은 정신 분열 증세가 있으면서도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채 살면서,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가정이나 사회를 서서히 파괴시키고 또 다른 희생자를 양산한다.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과 역사에서도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한 인물들이 사회를, 세계사를 얼룩지게 한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히틀러는 뒤틀린 영혼의 대표적인 예다. 한 개인의 증오가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수백 만 명을 학살하는 암울한 역사로 뒤덮게 한 너무도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새들은 알을 낳아 부화할 때까지 정성과 인내로 알을 품는다. 동물들도 자신이 낳은 생명체를 소중하게 보듬는다. 새들도 동물들도 자기가 낳은 어린것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먹을 것을 날라다 먹이고,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 애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자식을 버리거나 학대하고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여겨 생명을 빼앗아서야 되겠는가?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분노하며 마음이 몹시 무거울 따름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성인 남녀가 결혼을 해서 사랑의 결실인 자녀를 낳는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인내와 온화함으로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혼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모는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소한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줄 필요가 있다.


무려 2천5백여 년 전 비극을 이야기한 소포클레스는 그 오래전에 인간세상을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일까? 사람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인간의 헛된 욕망으로 인해 시작되어 끔찍한 파멸로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그렇게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기원전 5세기에도, 기원 후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 안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과 욕망이라 생각한다. 과연 2천5백 년 후, 미래에 사람들도 나와 같이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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