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무겁다. 영국 작가 토마스 하디(1840-1928)가 쓴 작품 <테스>는 당시 중학생이던 내 가슴에 거대한 바위 같은 무게로 내려앉았다. 소설을 읽을 때, 내 나이 열네 살이었음에도 테스가 당한 일과 그녀가 겪는 시련이 너무 마음 아파서 테스를 괴롭히는 사람들 모두가 미웠다.
순진하고 착한 테스가 결혼 전에 있었던 일로 말미암아 남편에게 버림받고, 끝내는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살해한 후 사형당하는 내용이 어린 내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테스의 어리석고 우유부단함에 답답함을 느꼈을 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안타까웠다.
요즘이야 결혼 전에 순결을 잃었다고 해서 아내를 모질게 몰아세우며 떠나버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결혼 전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유로워졌으며 관대해진 것이 사실이다.
1979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만든 <테스> 주인공은 나타샤 킨스키다. 이전에 여러 감독들이 만든 테스를 잊게 할 만큼 나타샤 킨스키의 큰 눈망울이 소설에서 읽은 테스 이미지와 겹쳐져 지금도 테스란 이름을 생각하면 그녀, 나타샤 킨스키의 슬픈 눈매가 떠오른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만든 <테스> 주인공 나타샤 킨스키
가난한 집안 딸 테스는 부모와 동생들을 떠나 더어버빌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그 집 아들 알렉은 예쁘고 순진한 테스에게 흑심을 품고 그녀를 성폭행하고 임신시킨다. 그녀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절망에 빠진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함으로써 꿈 많고 아름답던 시골 처녀 테스는 험난한 길을 가야만 했다. 아기를 맡기고 고향을 떠난 테스는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테스는 그곳에서 만난 엔젤 클래어로부터 청혼을 받지만 아픈 과거 때문에 그의 사랑을 거부하다가 끈질긴 구애에 마침내 결혼한다. 클레어는 그토록 결혼을 원했으면서 테스가 과거를 고백하자 충격을 받고 냉정하게 떠나 버린다. 테스는 자책하며 방황한다. 맡긴 아기마저 세상을 떠나자 테스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 괴로워한다.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지고 암흑 같은 상황에서 알렉이 다가오자 갈 곳도 의지할 데도 없던 테스는 그와 살게 된다. 기쁨도 행복도 없이 하루하루 지내던 테스에게 어느 날 갑자기 클레어가 찾아와 함께 떠나자고 애원한다. 잊지 못한 채 그리워하던 클레어를 보는 순간 테스는 절망한다.
테스는 그런 상황을 만든 원인이 알렉이라고 여기며 분노한다. 가시밭길처럼 힘들게 살아온 일들이 떠오르자 테스는 알렉을 죽이고 도망친다. 잠시나마 그녀는 사랑하는 클래어와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경찰에 체포되고 재판 후 사형을 당하게 된다.
글쎄, 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생각한다. 테스가 성폭행당하고 임신하는 것만큼 무서운 상황은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건 테스와 결혼한 클레어 태도다. 테스가 한사코 거부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애걸하던 그가 그녀 아픔을 보듬어주거나 이해하지 않고 냉정하게 떠났다.
그는 왜 다시 돌아와 그녀를 파경에 이르게 한 것인가? 혹자는 클레어가 떠난 후 알렉과 동거한 테스를 비난한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테스가 알렉과의 동거를 결심했을까?
당시 시대적 분위기는 이혼을 하거나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시기다. 홀로 사는 여자가 일할 수 있는 곳도 없었거니와 그런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가난한 집 딸, 교육받지 못하고 성폭행당해 아이를 낳은 여자, 결혼해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테스가 갈 곳은 사실 아무 데도 없었다.
그렇기에 죽음 같은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녀를 그런 상황으로 몰아간 몰이해와 경멸의 눈초리가 성폭행만큼이나 무거운 죄악이라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로 볼 때는 어찌 이럴 수가! 하고 통탄하지만 이런 일은 비단 소설이나 영화뿐이 아니다.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 사회에서 이보다 더 가공할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의지할 데 없는 어린 친인척 아이들을, 의붓딸을, 혹은 인지 능력이 없는 여자아이들을 동네 남자들이 돌아가며 성적으로 학대한다.
아침에 학교 가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야간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여학생들을, 심지어는 잠자고 있는 아이를 납치해 더럽고 시커먼 욕정을 채우기 위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피해자는 물론 가족까지도 평생 아물 수 없는 심신의 상처를 입히는 추악하고 악랄한 인간들이 늘고 있다.
그렇기에 요즘 사회면 기사에는 성폭행, 성추행에 관련된 것들이 적지 않다. 기가 막힌 건 때때로 사건 기사 바로 옆이나 아래쪽에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한 입맞춤에 관한 것, 혹은 ‘어느 여자 연예인의 뇌살적인 몸매’, ‘아찔한 가슴선’, ‘꿀벅지’ 등의 제목이 얽혀 있는 것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것들이 성범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할지라도 변태적이거나 성도착 환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청소년들도 호기심으로 충동적인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건 자체 심사에서 걸러내어야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당하고도 그들이 더욱 절망하는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던지는 경멸의 눈초리라고 한다.
그들이 죽음과 같은 고통을 당했더라도 주위에서 따뜻하게 아픔을 감싸준다면 완전히 치유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더는 그런 고통으로 눈물 흘리는 어린이나 여자들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그런 파렴치범들에겐 다시는 성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정의를 생각하는 우리가,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분노해야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다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