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과 악인 그리고 메두사의 뗏목

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11화 / 소크라테스, 토마스 모어, 제리코

by 강문정


이른 아침 집을 나서니 거리에 낙엽이 지천이다. 오늘따라 거리에 흩어져 있는 낙엽 빛이 곱게 느껴진다.

‘생명을 다 한 잎들 빛이 저렇게 화사할 수 있을까? 생의 마지막은 그렇게 서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거야. 생명을 다한 후에도 저렇듯 아름다울 수 있는 거야. 찬 길 위에 살포시 누운 단풍잎 빛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듯이 길 위에 쌓인 낙엽 빛깔이 고귀하게 빛난다. 살아서 아름다운 우리들은 죽음 앞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며, 옳고 바람직하게 산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상이 평화로운 시기에는 자신의 본성을 본인조차 완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극한 상황이 되면 잠재되어 있는 개개인의 품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17세기 극악무도한 독약 제조범 라부아쟁.

대체적으로 악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죽음 앞에서 비열하고 비굴하게 행동한다. 문학작품이나 영화에 묘사되는 유형이 그렇고 실제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예가 그렇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지닌 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허망하고 비참하게 사라져 간 이들이 너무 많아서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 글을 쓰는 저자가 이미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샘터)에서 언급한 이야기로 17세기 프랑스에 라 부아쟁이 그랬다.


이 여자는 딸과 함께 몇 년에 걸쳐 끔찍하고 해괴망측한 방법으로 독약과 '사랑의 묘약' 등을 제조해서 헛된 욕망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귀족들을 현혹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고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다가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았다.


현재 파리 시청이 있는 그레브 광장에서 처형 집행이 시작될 때, 죽음을 앞둔 라 부아쟁은 반성은커녕 죽지 않겠다고 발악을 하면서 형리들을 쥐어뜯으며 욕을 퍼부었다. 2월 음산한 기운이 내려앉은 그날, 독약과 괴상망측한 것을 만들기 위해 가엾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그렇게 제조한 독약으로 또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간 라부아쟁은 마치 죄 없는 자신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마냥 울부짖었다. 독약 제조범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저주하며 목소리가 쉬어서 나오지 않을 때까지 악을 쓰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죽어갔다.


아울러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전, '혁명의 도화선'이라 일컬어지는 다이아몬드 사기사건이 있었다. 당시 왕실과 귀족사회는 물론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던 사기사건의 주범 쟌느 생 레미도 라부아쟁과 같은 경우다. 이미 출간한 책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에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정말 기가 막힌 사기사건이었다. 잔 느 생 레미가 어찌나 잘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는지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어느 누구라도 그들이 꾸민 계략에 속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사건이 드러난 시기는 1785년이지만 그 몇 해전부터 잔느 생 레미는 다양하고 내밀한 정보를 수집하고 사기극에 이용할 대상 인물들을 물색했다.

사기꾼은 마치 연극무대를 꾸미듯이 등장인물들을 설정해서 연습까지 시켰다. 심지어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닮은 니콜이란 여자까지 포섭해서 베르사유 정원을 배경으로 가짜 왕비 행세를 하게 하는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스스로 라 모트 백작부인이라 주장하던 이 여자는 온갖 사악한 짓은 다 했으며 입에서 나오는 것이 거짓말이었다. 왕비의 문서와 직인을 위조해서 로앙 추기경과 보석상인 뵈머와 바상쥬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어이없게 속였다. 역사에 기록된 사기극으로 2,840 캐럿 다이아몬드를 수중에 넣은 뒤에는 더욱 기고만장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았다.


복원한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마침내 죄악이 드러나 사기죄로 기소된 잔느 생 레미는 파리 시청사 앞에서 공개적으로 도둑이라는 단어 볼뢰즈(Voleuse)의 이니셜인 V자가 어깨에 찍히는 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비열한 사기꾼은 벌이 집행될 때 발버둥 치면서 온갖 저주를 퍼붓고 격렬하게 반항하다가 결국 V자가 가슴팍에 찍히고 말았다. 더 가증스러운 일은 이 사기꾼이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힌 이후에도 이어졌다.


잔느 생 레미(라 모트)


잔느 생 레미는 실제로 마리 앙투와네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체포된 직후에 재판에서도 그렇게 진술했었다. 그러나 당시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를 음해하려는 사악한 무리들이 간계를 꾸며서 이 여자에게 거짓을 사주했다. 그러자 사기꾼 잔느 생레미는 왕비가 온갖 범죄를 시켰으며, 자신은 그저 왕비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터무니없는 위증을 했다.


잔느 생 레미는 왕비를 직접 보거나 근처에서 말 한마디 나눈 일이 없는데도 마치 왕비 사생활을 자세히 아는 것마냥 과장해서 폭로했다. 이 부분에서 믿기지 않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이 사기꾼 거짓말에 현혹되고, 그것을 선동하는 자들 편에 섰다는 것이다. 잔느 생 레미는 마리 앙투와네트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며 세상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일말의 가책이나 뉘우침없이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생을 끝냄으로써 사기극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위인이나 의인들은 대체로 죽음 앞에서 의연함과 용기를 보여준다. 세상에 너무도 잘 알려진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일화는 늘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을 앞둔 소크라테스에게 제자들이 간곡하게 탈출을 권유하지만 그는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는 선문답 같은 대답을 하고는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유토피아> 저자 영국인 토마스 모어(1478-1535) 역시 그랬다. 인문학자이면서 정치가인 그는 외교적 수완도 뛰어났지만 헨리 8세가 정당치 않은 이유로 이혼하려 할 때 종교적, 정치적인 신념으로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헨리 8세와 그 측근들에게 미움을 받아 1534년 반역죄로 기소되고 1535년에 사형 선고를 받는데, 그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


참수되기 직전 그는 집행인에게 “내 목은 짧으니 아프지 않게 해주 게나.”라고 말하고 길게 기른 수염이 잘리지 않도록 죽는 자세까지 신경 쓰는 여유를 보였다. 오히려 그는 사형 집행인에게 용기를 주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0년 후인 1935년에 그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각 시대마다 정의롭게 양심을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 생을 다한 사람들이 있다. 나라가 외적으로부터 침략당했거나 전쟁으로 혼란할 때, 숱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기밀을 지켜내는 의리 있는 애국자들과 자신의 안전이나 목숨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구해내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지극히 드물기 때문에 <메두사의 뗏목>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메두사의 뗏목>은 19세기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가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극화한 19세기 프랑스 화가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루브르 박물관


1816년 아프리카 인근에서 메두사 호가 난파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장되고 권력자들만 구명보트로 탈출했다. 바다에 빠져 살고자 절규하던 사람들이 뗏목을 만들지만 작은 뗏목에 기어오르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을 밀어내고 살아남는다. 뗏목에 의지한 채 표류하다 인육으로 연명한 후, 열대여섯 명만이 구조된 실화를 프랑스 화가 제리코가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기법으로 표현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오직 생존을 위한 사투만이 벌어질 뿐이다. 아울러 본능을 드러내는 인간 군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림을 볼 때마다 그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것에 전율한다.



메두사의 뗏목


슬라이드 낱장 같은 얇은 비늘마다

아스팔트 빛 시간과 함께 살아온 흐린 모습

프레스코 벽화에 채색되듯 켜켜로 새겨져 있다.


낡은 영사기 돌다 멈추듯

잘린 기억의 한 면 한 면

홀로그램 되어 어른대다 사라지고


물결 닮은 푸른 비늘

공작 깃털처럼 파르르 떨다

팔랑팔랑 하나둘씩 날아간 후,


검초록 바다 위 구조를 기다리다

위태로이 떠돌며 인육을 먹어야 했던

‘메두사의 뗏목’ 사람들 가슴에 찍힌 낙인


그들이 그림 속에 갇힌 채 끝없이 절규하듯

모래기둥 솟은 지상의 왕국에 머물기 위해

무수히 박힌 가시들 물 빛 바람에 흔들린다.

- 강문정 <문학관> 2006년 가을호


몇 가지 예로 알 수 있듯이 사람이라고 해서 좋은 마음과 품성을 갖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바른 품성으로 정의로운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사람은 교육이나 독서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성격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푸르던 나뭇잎이 단풍 든 후 떨어지듯이 사람도 누구나 생을 다 한 후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고 난 후에도 빛 고운 낙엽처럼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 혹은 사회에 환한 빛과 같은 존재로 기억되거나 빛을 드리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지! 그렇게 기억될 수 있도록 내 안팎을 살피면서 정직하고 겸손하게 사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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