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12화/ 영웅에서 마녀로, 다시 성녀로 거듭나
하늘 푸른 아침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바삐 걷다가 리볼리 길과 피라미드 길이 연결되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평소에 못 보던 꽃다발이 수북이 쌓여 꽃밭 같았다. 잔 다르크를 위한 기념행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황금빛 잔 다르크가 말 위에서 하늘을 향해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평소보다 힘차 보인다.
잔 다르크는 1412년 오를레앙 지방의 작은 마을 동레미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백년전쟁이 계속되던 시기에 잔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그 지역을 빈번하게 약탈하고 괴롭히던 영국군 만행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잔이 열세 살 되던 해, 그녀는 미카엘 천사장으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신비한 영적 체험과 계시를 받게 되고 평범한 소녀에서 구국의 기수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일반인들의 해석이 다르긴 해도 소녀 잔 다르크가 나라를 위해 의연히 일어나 전쟁터로 나간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당시 프랑스 군대는 영국군에게 이리저리 몰리고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냘픈 소녀가 나라를 위해 깃발을 흔들며 전진하는 용기에 감동해 필사적으로 영국군에 대항했고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잔 다르크와 함께 하는 부대는 승승장구했으며 당시 부르고뉴 지방에 머물던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에게 기사 작위를 부여했다. 잔 다르크는 1429년 7월 랭스 대성당에서 치러진 국왕 대관식에 샤를 7세가 무사히 참석할 수 있도록 시농에서 북쪽 랭스까지 국왕을 안전하게 호위했다.
아울러 잔 다르크는 1429년 9월에 파리 생 토노레 근처에서 큰 부상을 당하면서도 지쳐 쓰러질 때까지 혼신을 다 해 영국군에게 저항했다. 자신의 안전을 생각지 않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잔 다르크 모습은 수많은 프랑스 병사들에게 힘과 용기를 전해주었다.
이후에 잔은 샤리트 쉬르 루아르에서 퇴각하고 콩피에뉴를 함락했지만 우스꽝스럽게도 프랑스 군대인 부르고뉴 병사들에게 생포되었다. 그리고는 1430년 5월에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잔 다르크는 만 열여덟 살에 생포되어 무려 1년 넘게 감옥에 갇혀 심문과 심한 고문을 받았다. 결국 루앙에서 보배 지역 주교였던 피에르 코숑이 이끄는 종교재판이 여러 차례 열렸고 그곳에 모인 검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잔 다르크는 이교도와 마녀라는 누명을 썼다.
중세 시기인지라 재판관들은 잔 다르크가 마녀이므로 화형에 처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권이 개입되어 있던 성직자들도 약간의 양심은 남아있었던지 혹은 역사적 책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 그녀를 세속 재판으로 다시 넘겼다.
그러나 한줄기 빛 같은 희망 같은 건 애초에 바라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가 세속 재판으로 넘겨지자마자 광장에 모인 광폭한 군중은 잔 다르크를 향해 야유했다. “빨리 마녀를 죽여 버려라!” “어서 짚단에 불을 붙여 마녀를 불태워버려라!” 무지하고 야만스러운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군중심리와 부화뇌동의 전형적인 참상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오를레앙 지방 동레미 마을의 잔 다르크는 1431년 5월 29일 루앙에서 끔찍하게 산 채로 화형 당했다. 잔 다르크는 그런 사람들의 행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람에 의해 영웅이 되고 사람에 의해 마녀가 되어 화형 당해야 했던 잔 다르크는 하늘을 바라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장작더미에 붙여진 불길이 이글거리며 몸을 태울 때 잔 다르크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잔인하게 죽이는 사람들과 광분하는 사람들에게 원망도 저주도 하지 않았고 울부짖지도 않았다. 살아서 프랑스 군대를 이끌 때처럼 고통과 치욕을 참으며 죽음조차도 의연하게 견뎌냈을 뿐이다.
믿기지 않지만 무려 오백여 년 가까이 잔 다르크는 마녀라는 누명을 벗지 못했다. 1431년에 처형당하고 나서 세월은 흘렀고 프랑스 인들 중에서 잘못된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들이 로마 교황청에 잔 다르크가 마녀가 아니라는 요청을 했다. 마침내 로마 교황청은 잔 다르크를 1909년에 시복하고 1920년에 시성했다.
이제 더 이상 잔 다르크는 마녀나 이교도가 아닌 성녀 잔 다르크로 거듭난 것이다. 파리의 수많은 거리나 교회에서 잔 다르크를 만날 수 있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르는 잔 다르크 동상이나 칼이나 깃발을 든 채로 의기충천해 있는 잔 다르크 기마상을 볼 수 있다.
특히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인 몽마르트르에 세워진 사크레 쾨르 성당 정면에 자리 잡은 잔 다르크 기마상은 압권이다. 아바디가 건축 설계한 성당을 바라볼 때 왼편엔 성 루이로 불리는 루이 9세가 한 손엔 가시면류관을 든 채 십자군 전쟁의 종식을 염원하듯이 칼을 내리고 있고 오른편엔 잔 다르크가 칼을 높이 든 자세로 애국과 구국을 외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하다.
5월 말에 처형당한 잔 다르크의 축일은 5월 13일이다. 1일 노동절을 시작으로 5월 내내 황금빛 잔 다르크 기마상 주위에는 꽃다발이 가득 채워진다. 리볼리가와 생토노레가가 이어지는 곳에 방금이라도 박차를 가하며 앞으로 나갈 듯한 잔 다르크, 말 위에 앉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잔 다르크는 언제까지나 양심 있는 프랑스인들에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