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가 활보하는 세상

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13화 / 몰리에르 작품 <타르튀프>

by 강문정

[표지] 루드빅 글레이저 나우데 삽화


17세기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는(1622~1673)는 극작가며 연극배우, 연출가인 동시에 연극극단을 이끌던 극단장이다. 그는 우화작가 라 퐁텐느와 비극을 주제로 작품을 쓴 라신과 함께 당대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라 실력을 인정받으며 명성을 떨쳤다. 몰리에르가 1664년에 발표한 <타르튀프>는 주인공 이름이며 위선자의 상징이다.


당시 위선자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성직자와 귀족이 포함되었는데, 사람들은 잘난 체하는 부유한 귀족 오르공이 타르튀프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 면에서 타르튀프는 유쾌함을 주는 위선자다.


Le Tartuffe, Moliere.jpg 17세기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1622-1673)


위선자는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타르튀프 같은 위선자는 우리에게 웃음과 통쾌함마저 느끼게 하지만 대체적으로 위선자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우스꽝스럽게도 위선자 중에는 자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 체 위선을 부리기도 한다. 위선자들은 음흉하고 탐욕스러운 내면은 감춘 채 겉으로는 인자한 척, 너그러운 척, 모든 것을 이해하는 척하다 결정적인 순간엔 야비하게 변한다.


그들은 법률에 위반되는 행동은 하지 않지만 교묘하게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힌다. 위선자는 교만하기 이를 데 없고 필요하다 싶으면 카멜레온처럼 표정과 말 등을 바꿔가며 행동한다. 시커멓기 그지없는 속을 감추고 짐짓 욕심이 없는 척, 선량한 체하면서 자신의 이익이나 욕심을 다 채우는 유형이다.


Le Tartuffe Book cover.jpg


위선자들은 자기들이 한 일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옳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한 행동조차 반성하지 않는 채, “아니오” “모릅니다”로 일관한다. 글쎄, 요즘 우리 주위에는 희한한 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분명 자신들이 말하고 행동한 것이 명명백백한 상황에서도 “모르는 일이다.” “아는 바 없다.” “처음 듣는 일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조작된 일이다.” “사실이 아니다.”로 말을 바꾸어 가며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린다.


떼쓰는 철부지 아이도 아닌 어른들이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과 행동들을 하는 것인지!


Le Tartuffe 2005 poster.jpg 미시간 대학 뮤직스쿨 <타르튀프> 공연 포스터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태를 저지르므로 그걸 늘상 보는 사람들마저 “그러려니”하고 넘겨 버린다. ‘잡아떼기’나 ‘사건을 날조해서 나를 음해하려 한다.’로 일관하는 이들이 오히려 누명 쓴 것처럼 이상한 분위기조차 만들어진다.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건 참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반성은커녕, 제 잘못까지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야비한 인격을 지닌 위선자들을 보는 일반 시민들은 자괴감마저 느낀다.


위선자를 어느 한순간에 없앨 수는 없다 하더라도 위선자들이 이 사회를 주도하거나 여론을 움직이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유민주사회의 바른 시민이라면 적어도 그런 위선자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성공을 했다거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권력과 재력이 있다 해도 양심과 인격이 없다면 그건 허깨비일 뿐이다.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인성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명세를 타며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난 사람, 각 분야나 사회에서 원하는 자격요건을 갖추거나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해 든 사람, 정의와 양심을 지킬 줄 알고 사람의 도리가 무언 지 알며 그것을 실천하는 된 사람이 있다.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 중에 으뜸은 된 사람인 것이다.”하시던 중학교 때 선생님 말씀이 떠오른다.


몇 해 전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을 때, 돈 10억을 받으면 몇 년 교도소에 갈 의향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이 상당수였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소름이 돋았었다. ‘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극히 일부이겠지!’하면서도 지극히 염려스럽다.


순수한 마음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도전해야 할 청소년 시기에 그런 대답을 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만능주의로 뒤엉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를 돈과 외형적인 것에만 두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생들의 대답은 뒤틀린 어른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어른들이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우리 교육이, 우리 신문 방송 매체들이 “된 사람이 되기보다는 난 사람이나 든 사람이 돼라.”라고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말로는 “된 사람이 중요하지.”하면서도 자신과 자녀들에게, 혹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난사람과 든 사람을 강요하는 게 우리 자신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사람들 각자가 저마다 추구하는 방향과 살아가는 방법이나 취향이 다르다 해도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아는 된 사람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회적 인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Le Tartuffe theatre.jpg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몰리에르 희곡작품 <타르튀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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