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 시와 시집

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14화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by 강문정


12월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12월이 되면 푸른 하늘처럼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윤동주 시인이다. 윤동주 시인은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 1945년 2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언제나 변함없이 나는 시인이 세상에 온 12월부터 세상을 떠난 2월까지 그와 그의 시들을 되뇌며 생각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오래전 어느 해 11월,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2차 대전 시기에 몇몇 연구소에서 자행했던 생체실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낡은 기록 필름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내용이라 숨죽여 보다가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런 끔찍한 기록영화가 있는 이유는 잔인한 연구소 관계자들이 생체 실험대상자들에게 강제로 주사를 놓거나 신체 일부에 균을 바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는 장면들을 촬영까지 했기 때문이다. 성인 남자가 온몸을 발가벗기고, 묶인 채,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주삿바늘로 찔리고 실험당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공포에 질린 남자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실제 상황이라 끔찍했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 몸에 온갖 균을 주입해 신체 변화를 관찰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생체 실험을 주도한 이들 말로는 실험 대상자가 범죄자라 했지만, 그 시기에 정치범이란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투사들이나 그들에게 저항했던 학생들도 포함된 것이라 더욱 분노했다. 건강한 젊은이들이 굴 속 같은 어둔 공간에 갇혀 날마다 차례로 끌려 나가 독과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주사를 맞거나 신체 일부를 훼손당했다. 점차 독과 균이 퍼져 나가 정신이 혼미해지고 고통받으며 피부병을 앓거나 몸이 기형으로 변할 때, 그들이 느꼈던 공포와 절망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으리라.


방송이 끝나고도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고 악랄할 수 있을까? 고통스럽게 죽음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과연 신이 함께 했던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괴로웠다. 더구나 그렇게 죽어간 희생자들 중에 윤동주 시인도 있기에 더욱 가슴 저렸고 분노가 잦아들지 않았다.

윤동주 시인은 1943년 7월 한국말로 글을 쓰고 불온한 모임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체포됐다. 사촌 송몽규와 함께 재판을 받고 시인은 사상범으로 몰려 2년 형을 선고받아 후쿠오카 감옥에 투옥되었다. 윤동주 시인은 세상에 알려진 바와 같이 감옥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1945년 2월 16일 한스럽게도 세상을 떠났다. <참회록>은 시인이 체포되기 1년 반전에 쓴 시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1942. 일월)


나는 잠들지 못하던 그날 밤, 윤동주 시인이 쓴 시처럼 많은 밤을 헤아렸다.


못 자는 밤


하나 둘 셋 넷……

밤은 참 많기도 하다.

(1941. 유월)


저항시인인 그 역시 순수한 청년이었으므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체포되기 3년 전 서울에서 쓴 시는 윤동주 시인의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달 같이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 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나간다.

(1939, 구월)


나는 고등학교 때 정음사에서 출간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늘 들고 다녔다. 마침 같은 시집을 생일 선물로 또 받은 참에 윤동주 시인 사진들을 오려내어 수첩에 붙였다. 흑백 사진들은 작고 희미했지만 오랫동안 너무도 소중하게 지녔었다.


정음사에서 간행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러던 어느 날인가 선배 중에 윤일주 교수님 딸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윤일주 교수님은 윤동주 시인 막내 동생이다. 윤동주 시인 친 조카 되는 선배는 내게 윤동주 시인 사진을 선물했다. 복사본이긴 해도 구하기 힘든 사진을 정성껏 전해준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2010년 파리에서 우연히 선배와 재회했다.


처음에 서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래전 내게 사진을 준 선배였다. 인연이었다. 2011년 서울에서 <그가 사랑한 베르사유> 출판기념회를 하던 날, 선배가 기념식장에 와서 축하해주며 <정본 윤동주 전집>을 선물해줬다. 그 순간 책을 받으며 내 책이 출간된 것만큼 기뻤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니고 있는 정음사 시집과 프랑스 출판사 <Autres temps>에서 번역 출간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세계사에서 출간한 <윤동주 평전>만 있던 터라 새로운 시집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문학과 지성사의 <정본 윤동주 전집>


그날 밤 책상 서랍에 고이 간직한 고등학교 때 수첩을 꺼냈다. 시와 단상들, 한시와 팝송 가사까지도 빼곡히 적혀 있다. 순수한 열정이었다. 그때 즐겨 읽던 윤동주 시집에 지인들이 시인 생전 모습과 품성에 대해 회고한 내용들을 찬찬히 읽다 보니 마치 시인을 만난 듯이 반가운 마음이다.


“그가 베적삼 베고의에 고무신을 신고, 저녁 산책을 하는 것은 수수한 아저씨 그대로였다.”

“양복은 언제나 구김살이 없었고, 머리가 헝클어지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이래도 저래도 다 동주다웠다. 그렇다. 동주다운 것, 그것이 좋았고, 아무도 흉내 낼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멋’이 한국 민족의 자연스러운 풍모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아무튼 동주 형은 소위 멋을 낸다는 청년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멋’, 그의 성품에서 풍겨 나오는 ‘멋’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의 멋에서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한국적인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그는 극히 멋지게 한국적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넓고도 넓은 ‘한울’과 같았다.”

“그의 저항 정신은 불멸의 전형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헤일 수 없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강아지, 비둘기, 토끼, 노새,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도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들은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1941, 십일월)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십일월)


정직하고 양심을 지닌 청년 윤동주, 섬세하고 따뜻한 시인의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시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애송된 <서시>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정본 윤동주 전집>에는 제목을 <무제>로 정정했다. 하지만 <서시>를 되뇌며 학창 시절과 젊은 날을 보낸 나로서는 그저 <서시>로 부르고 싶을 뿐이다.


내 유년시절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준 시인들, 윤동주(1917-1944), 한용운(1879-1944), 김소월(1902-1934), 이육사(1904-1944), 이 분들이 살았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였다. 일본에게 핍박받던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민하고 의분하며, 시와 글로써 저항했던 그분들을 나는 닮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네 분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벗어나 광복이 되기 전에 이승을 떠났지만, 어디에선가 그들이 염원하던 자유의 빛을 보고 기뻐했으리라 믿는다.


그런 야만의 시대로부터 수십 년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졌다 해도 의롭고 좋은 마음을 지닌 시인들의 노래는 언제까지나 우리들 가슴속에 이어질 것이다. 만약 세상 사람들에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억울하고 비참하게 스러져가는 생명은 없을 텐데 말이다. 이 세상에 평화와 사랑이 내내 함께 하길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프랑스 Autres Temps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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