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가득한 사람 이야기 15화 / 사랑하는 사람들
<작가 협회> 모임에서 프랑스인이 내게 물었다. 교양프로를 주로 하는 텔레비전 채널에서 한국 노래를 들었다며 노래 제목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누가 불렀는지, 기억나는 멜로디가 있는지 되물었다. 상대방 대답은 잘 모르겠다는 거였다. 몇 곡의 제목을 말했지만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뭘까? 순간 아리랑이 떠올랐다.
프랑스 방송에서 한국 노래가 나온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래전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기사를 본 일 있는 아리랑이 스친 것이다. 내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부르자 그녀는 바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 표현에 의하면 멜로디가 좋고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반복되는 후렴구가 재미있다고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에 인류 문화재로 등재된 <아리랑> 가사다. 우리 문화가 세계 사람들에게 하나둘씩 알려지고 잊히지 않을 보물로 기록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바람직한 일이다. 이 노래가 유네스코에 인류 문화재로 등재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과 인내가 있었으리라. 감사할 따름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 1월 나운규(1902-1937) 감독이 우리나라 최초로 무성영화로 제작한 <아리랑>을 종로에 있는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주인공 영식과 여동생 영희 그리고 일제 앞잡이인 기호와 영식 친구 현구 등이 출연한 영화 배경음악이 민요 아리랑이고 영화가 끝날 때 관람객 전체가 감동과 울분으로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우리 전통 민요가 나운규 감독 <아리랑>을 전환점으로 해서 일제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게 된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가사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아리랑 가사를 살펴보면 노랫말을 지은 이의 적극적인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이런 말을 듣고서도 냉정하게 떠나갈 수 있을까? 그리 개운치는 않을 것이다.
사실 나를 버리고 간다는데 “행복하게 잘 사세요.”라고 말하는 건 보통사람의 심정은 결코 아닐 게다. 떠나는 사람에게 날 버리고 떠나가면 발병 날 것이니 가시지 말라고, 내 곁에 머물러 달라고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가사, 그런 이유로 아리랑은 내게 정감 있고 소박하게 다가온다.
아리랑이 그렇게 적극적이고, 진솔하게 감정을 표현했다면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은 어떤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1902-1934) 시인이 1922년 7월에 발표한 <진달래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겠다는 님을 말없이 보내주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런 무정한 님에게 꽃을 바치겠다니! 그것도 한 아름 따다 가는 길에 뿌려줄 테니 사뿐히 밟고 가시란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성인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물론 반어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님이 떠날 때, 눈물 흘리지 않고 님을 보내주겠다는 다짐이 처절하리만큼 안쓰럽다.
김소월 시인의 수많은 시들은 우리나라 가곡과 가요로 널리 애창되고 있고 <진달래꽃>도 예외는 아니다. 가곡으로 작곡된 <진달래꽃>도 좋지만 또 다른 멜로디가 더욱 쉽고 지금도 애절해서 부르곤 한다.
중학교 2학년 봄에 이사를 했다. 나와 언니가 쓰던 방 창문 너머로 담을 경계로 해서 맞은편 집 창문이 보였다. 봄 지나 기온 오르자 간혹 열린 창문으로 먼발치에 고등학교 남학생이 보이고 저녁시간이나 주말이면 하늘색 교복을 입은 친구들도 서너 명 보였다. 그들 역시 맞은편 집에 또래 여학생들이 이사 온 걸 알았는지 우리 집 창문 쪽으로 시선을 두곤 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도 창문을 열면 남학생들 웃음소리나 음악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그리곤 이따금씩 내가 창가에 설 때면 우리 집 창을 보고 서 있는 남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어색해서 얼른 고개를 돌리거나 괜히 창문을 닫아버리는 매정한 여학생이었지만, 그들이 창문가에 서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마음 설레곤 했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 노을이 황홀할 정도로 신비롭던 저녁나절 기타 소리와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그때 나는 누가 부르는지도 모른 채 책상에 앉아 귀 기울여 노래를 들었다. 마음이 아릴 만큼 구슬프고 애절했다. 창문 너머 남학생들도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는지 고요가 맴도는 여름 저녁, 부드러운 기타 소리와 노랫소리 <진달래꽃>의 향기만이 주위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얼굴도 모르는 남학생은 기타를 치며 나직한 목소리로 <진달래꽃>과 팝송 등을 불렀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가 부르던 <진달래꽃>의 멜로디가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김소월 시인의 대부분 시들은 너무도 애절해서 그저 시를 암송하기만 해도 가슴팍이 아팠다. 특히 <임의 노래>는 4월과 5월이란 남성 듀엣이 슬픈 멜로디에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했고, <초혼>도 가곡과 가요로 만들어졌다. 나는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그 곡들을 나직이 부르곤 한다.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임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래 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임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임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어버려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부서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초혼>, <진달래꽃>의 임이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슬픈 우리나라와 민족을 비유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순수한 사랑 시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1934년 12월 24일 춥고 메마른 겨울날, 힘들고 지난한 삶을 접은 시인의 마음이 서러워 눈물이 난다. 살아보려 무진 애를 써도 시대적 상황이 암울한 데다, 하고자 하는 일조차 할 수 없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삶 속에서 절절한 시를 쓰고 되뇌었을 소월의 시린 손이, 쓸쓸한 모습이 그려져 가슴이 저려온다.
그때로부터 수 십여 년이 지난 이 시대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때는 가슴 설레거나 애틋하게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별할 때는 원망하고 증오하며 상대를 탓한다. 때론 그냥은 헤어지지 못하겠다며 말로 저주하고 신체적으로 상해를 가하는가 하면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으로 치닫는 것을 종종 본다. 물론 사랑했으므로 애증이 생긴 것이리라.
그렇다 할지라도 진정 사랑했었다면 가끔은 <진달래꽃>처럼 아픔과 미움조차 삭이고 견뎌내며 눈물을 참으면서도 떠나는 이에게 한 아름 꽃을 뿌려 고이 보내는 마음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시인의 마음이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