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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정 Jun 08. 2024

<아이리스>와 <꽃보다 남자> 프랑스에서 한국드라마가!

 드라마 OST 가슴이 어떻게 됐나 봐 / LOVE OF IRIS



1895 프랑스 파리, 뤼미에르 형제가 영사기를 돌리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 1구 스크립가에 있는 공간에서 세계 최초로 영사기를 돌렸다. 발명의 세기라고 일컫는 19세기에 프랑스에서 화학자 니엡스가 사진의 원리를 발명하고, 사진작가 나다르가 인상주의 화파로 불리는 화가들과 예술가들을 선두로 해서 흑백사진을 찍을 즈음이었다.


1895년 파리에 위치한 스크립 호텔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영사기를 발명하여 이를 시연했다.


‘차르르르’ 영사기가 돌아가며 내는 정다운 소리는 귓전에 맴돌고 눈앞에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실제처럼 웃고 화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바야흐로 수세기 동안 획기적인 변화 없이 이어져 오던 예술 세계에  새로운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무궁무진한 것들과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세계가 영화라는 세계 아니겠는가? 만약 영화라는 장르가 없었다면 지금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금도 프랑스 정규방송에는 드라마가 거의 없다. 영화라는 장르를 창조해낸 종주국답게 텔레비전 채널에서 매일 영화를 방영한다. 케이블 방송들은 그럴 수도 있겠으나 정규방송 저녁과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 내내 영화로 채워진다.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방송국에서 친절하게도 1년에 몇 차례씩 같은 영화를 해주는 덕분에 나는 웬만한 영화 내용은 마치 시나리오를 쓴 작가처럼 꿰뚫고 있으며 다음 장면을 먼저 떠올리며 어떤 대사가 나올지 외우는 영화들도 있을 정도다. 혹자께서 이미 본 영화를 왜 다시 보냐고 물으신다면, “봤어도 재미있으니까.” “볼 때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니까.”라고 대답하고 싶다.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드라마를 만나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나는 한국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지난해 3월까지는 그랬다. 프랑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나는 워낙 바쁘게 지낸 데다가 한국 드라마를 어디서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지난해 2월 말로 기억한다. 내가 사는 몽파르나스 아파트에 신소재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그것을 설치하기 훨씬 전인 2019년부터 통신사에서 예전 기계를 새로운 기기로 교체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기술자가 집으로 가서 케이블을 설치해야 한다고 안내 전화와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왔었다.


하지만 2020년 2월부터 코로나로 암울했고, 국가 봉쇄령이 강압적으로 세 번이나 내려져 케이블 설치는 자동적으로 연기됐었다.


봉쇄령이 풀린 후에도 나는 바이러스 전염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으므로 누군가가 집으로 온다는 것 자체가 크나 큰 심적부담으로 다가왔다. 통신사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나는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설치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연기하고 늦추다가 순식간에 1년이란 시간이 날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통신사에서 2021년 2월까지 새로운 기기를 설치하지 않으면 예전 시스템인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거라고 최후통첩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는 수 없이 2월 말에 약속을 잡고 기술자들이 와서 기존 기계를 교체하고는 한참 동안 꼼꼼히 연구하듯이 집 안팎을 오가며 케이블을 설치했다.


그날 오후 수십 개 넘는 채널이 연결되었다.
한 채널, 한 채널 확인하다 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채널 775를 누르자마자 한국말이 울려 퍼진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에 KBS 2가 뜨고,
우리말이 먼저 귀에 들어오면서 한국 탤런트들 모습이 보였다.
반갑고 신기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순간이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너무나 슬픈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서 반가움도 잠시! 그렇게 모든 채널을 재워둔 채 시간은 지나갔다.



드라마를 돋보이고 빛나게 하는 주제음악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어땠을까? 나는 1년에 한두 번씩 서울에 가곤 했는데, 어느 때라도 편안하게 앉아서 드라마 볼 시간은 없었다. 저녁 시간에 잠깐씩 스치듯 본 적은 있었다.


그중 기억나는 몇 편 가운데 2005년에 갔을 때 봤던 <슬픈 연가>가 있다. 권상우와 김희선, 연정훈 등이 출연한 드라마였다.


그 당시 책 출간 때문에 갔기 때문에 드라마는 전편을 볼 수 없었고, 두 세편 정도를 잠깐 봤는데 내용보다 뇌리에 오랫동안 남은 것이 바로 배경음악, 노래였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흐느끼듯 부르는 <내게 오겠니?>라는 노래와 <몇 번을 헤어져도> 등 여러 곡이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 마침 교보문고에 갔는데 시디 코너에서 <슬픈 연가> OST가 눈에 띄었다. 그토록 애절하게 노래를 부른 가수가 ‘윤 건’이라 해서 윤 건 시디도 함께 담았다.


드라마 <슬픈 연가>


그 후로 본 것 중에 특히 기억나는 작품은
2009년 이른 봄에 갔을 때 봤던 <꽃보다 남자>였다.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따금씩 그 드라마의 OST <가슴이 어떻게 됐나 봐>, <별빛 눈물> 등 구슬픈 배경음악과 구준표, 금잔디 여러 등장인물 이름들과 함께 그즈음 내 상황이나 그때  봄바람 불던  스산한 날씨와 상황이 복합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꽃보다 남자>도 <슬픈 연가>처럼 드라마에 나오는 배경음악과  노래들이 스토리보다 훨씬 기억에 남았다. 경쾌한 노래들도, 애잔한 노래들도 다 괜찮았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


주인공들이 고등학생들이라 내 나이와 동떨어진다고 하지는 마시기를! 당시에 <꽃보다 남자>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도 주인공 구준표에 대해 호평하실 정도로 연령대를 초월해 시청자들로부터 사랑받는 드라마였다.


처음엔 ‘청소년 드라마를 왜 밤 시간대에 하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귓가에 들리는 여러 배경음악과 노랫말들이 나를 화면 앞에 멈추게 했기 때문이다.


<꽃보다 남자> 역시 드라마 전체가 아닌 몇 편을 단편적으로 봤는데 박완서 선생님 말씀처럼 내게도 구준표가 눈에 들어왔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난과 시련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주인공 금잔디가 몹시 가엾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런 금잔디에게 다가가는 구준표와 윤지후, 학급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잔디를 감싸주고, 구해주는 구준표와 윤지후라는 캐릭터 그리고 멋진 두 청년 소이정과 송우빈 모습이 왜 그리 든든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던지!


가난한 집 주인공이 부잣집 주인공과 좋아하는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꽃보다 남자>역시 판에 박힌 뻔한 스토리라고 할 수 있지만 어차피 우리네 사람 사는 세상에 드라마건, 영화건, 소설이건 기본 주제는 그런 것들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보다 남자>는 차별화된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 구준표와 친구들이 워낙 돋보인 데다 거기에 덧붙여 드라마 주제곡들이 가슴을 아리게 할 만큼 애잔하면서도 절절하고, 싱그러운 봄기운과 훈향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2009 3월, 4주 동안 꿈같은 귀한 날들이 지나고 다시  프랑스 파리로 출발하기 전날, 레코드 가게에서 <꽃보다 남자> OST 1, 2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렸다. 그때를 생각하니 신선한 레몬과 파인트리향이 주위에 맴도는 듯하다.


시간이 흘러 흘러 2022년 10월, 나는 지금도 프랑스 파리에 있다. 이제 코로나 공포로부터 벗어나 한결 평화로워지긴 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은 나로서는 아직도 전율하고 참담한 심정일뿐이다.


그 가공할 괴물, 코비드(COVID)로 멈춰버린 일상, 뒤죽박죽 엉켜버린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고 견뎠다. 지난 3여년동안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도 가슴팍이 저리고 아프다 못해 해진 헝겊조각처럼 날캉날캉해진 느낌이다.


마음이 아프고 암담할 때가 많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져 에너지 충전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애써 마음을 달래기도 했었다.


 가끔 시간 날 때 케이블 채널 775를 누르면 <슈퍼맨이 돌아왔다>(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기들이 지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라는 걸 하기도 하고, 몇몇 드라마를 방영하는데 시간대가 애매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할 여유가 없어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775 채널을 눌렀을 때,
곱슬머리 이민호와 단발머리 구혜선,  
이병헌과 정준호 얼굴이 언뜻 보였다.
<꽃보다 남자>와 <아이리스>라는 드라마 예고편이었다.

와우! <꽃보다 남자>는 알겠는데 <아이리스>는 뭐지?
아이리스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꽃이기 때문에 시도 썼고,
2년 전 탈고한 장편소설에도 아이리스라는 닉네임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래서 몇 초 안 되는 예고편을 눈여겨 보니
총을 든 특수 요원들 모습이 나오는데 뭐지?'

그렇다면 아이리스는 암호명인가?'호기심이 일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 어느 날엔가 보니 이미 앞부분은  지나갔고, 에피소드 4편을 볼 수 있었다. 아! 또 배경에 흐르는 노래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언젠가 프랑스 TV에서 <터미네이터>와 <레드>를 방영했다. 그 영화들에서 이병헌을 볼 때는 별 감동이 없었는데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나온 이병헌은 정말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현준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했고, 처절하고 슬픈 눈빛 연기가 압권이라 생각했다. 아울러 이병헌 목소리가 좋다는 걸 새삼스레 프랑스 텔레비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김태희란 이름을 그리 많이 들었어도 연기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으나 아이리스에서 처음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주인공 김태희와 이병헌 두 사람이 등장할 때 나오는 노래가 너무 애절했다.


노래하는 여자 가수는 백지영인데 남자 목소리는 누굴까? 정말 궁금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내 이런 궁금증이 우스울 수도 있겠다. 이미 오래전에 유행했던 노래를 2022년에야 처음 들었다고 하다니!



어쨌거나 드라마 <아이라스>는 오며 가며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치는데 귀에 들리는 멜로디와 노래는 잊히지 않고 끊임없이 맴돌았다.


도저히 그냥 흘려버릴 수 없어 찾아보니 세상에! <아이리스>는 <꽃보다 남자>가 방영되던 해였던 2009년도에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13년 전 드라마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노래는 신승훈이 부른 <Love of Iris>였다. 시간을 거꾸로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다!)


그러나 어차피 가상의 세계를 보는 것이고, 드라마나 영화속 주인공들은 만들어진 캐릭터이므로 시간이 지났다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주인공 역을 맡은 탤런트나 영화배우를 내가 만날 것도 아니고, 만나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13년의 시간차를 뛰어넘는 드라마들과  감동적인 배경음악들은  절미하고 훌륭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므로 그저 보면서 재밌고 감동하면 되는 것이다. 시청자나 관람객이 감정이입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행복하면 되니까 말이다. 힘들고 괴로운 현실을 견뎌내는 용기와 에너지를 전해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수많은 연기자 분들을 포함해서 주제곡과 배경음악을 만드시는 분들,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모든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 모든 분들께 내 마음의 꽃바구니를 한 아름 전하고 싶다.


 -  2021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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