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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정 Jul 22. 2023

슈퍼마켓 그 남자

[대문 사진] 2023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마네/드가> 특별전에 전시된 에두아르 마네의 <압쌩트주를 마시는 사내>



내가 그 남자를 본 것은 한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마로니에 청록빛 나뭇잎에 연갈색 얼룩이 스며들고, 거리엔 바삭거리는 소리가 날 만큼 메마른 낙엽이 쌓여가는 그런 날이었다.  


그날 오후 슈퍼마켓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바캉스가 끝나지 않아서인지 유독 한산했다. 그래서 그 남자가 더욱 눈에 띄었다. 자동문 안으로 들어가자 왼쪽으로 늘어선 카트 옆에 엉거주춤 선 남자가 있었다. 얼핏 봐도 그는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체격은 작지 않았으나 또래 청년들과 다르게 행색이 초라하고 안색도 그리 건강한 것 같지 않았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처음에 나는 그가 노숙자나 슈퍼 근처에서 구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때나 저녁 무렵이면 그들도 구걸한 돈으로 샌드위치나 음료수를 사러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남자는 내가 계산을 끝내고 나갈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며칠 후에 다시 슈퍼로 갔을 때 그는 역시 카트 옆쪽에 서 있었다. 여전히 어정쩡한 자세였으나 첫날 봤을 때보다 한결 밝은 표정이었다. 얼굴은 약간 부어있었는데 이마 위엔 방금 세수를 했는지, 물을 발라 머리카락을 단정히 붙였는지 물기가 배어 있었다. 첫날도 그랬고 볼 때마다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는 슈퍼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사람들에게 "봉쥬~", "메르시"라고 인사도 하고, 카트와 작은 바구니도 정리했다. 바닥에 휴지도 줍고, 무거운 짐을 들고나가는 손님을 도와주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과 행동은 어딘가 어색했고 가끔씩 하는 말투도 어눌했다.


유니폼은 입지 않았지만 그가 매장에서 일을 돕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점장이나 누군가의 허락으로 카트 정리와 허드렛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가 하는 일로써 보수를 받는다기 보다는 아마도 허기를 채울 정도의 식품을 얻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가 슈퍼에 갈 때마다 그는 나날이 달라져 있었다. 얼굴엔 아직도 약물과 알코올에 젖었던 날들의 흔적이 보이고, 행동도 또래 청년들보다 둔해 보였으나 환하게 웃기도 하고 사람들에게도 어눌하게 큰 소리로 인사하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그에게 눈길이 갔다.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리고 눈물이 날 정도로 연민을 느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할 것이다. 세상에 거지가 한 둘이며, 약물과 알코올에 절어 살았던 사람에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천성이 착해보이는 그 청년에게서 전해오는 슬픔은 깊었다.


무슨 연유로 어쩌다가 어리고 젊은 나이에 알코올과 약물에 절어 세상을 떠돌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모든 걸 끊어내고 슈퍼에서 필요이상으로 열심히 움직이는 몸짓이 정상적인 세상에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너무도 어색한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한없이 대견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청년이 제발 그렇게 견뎌내서 건강하고 건전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며 가끔 그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럴 때면 그는 초점은 허공을 향한 채 "봉쥬! 마담! 메르씨 보꾸! 본 쥬르네! 마담! 메르씨 보꾸! (안녕하세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큰 소리로 인사하며 90도 각도로 인사하곤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일정이 너무 바쁜 나머지 슈퍼에 오랜만에 가게 되었을 때,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갔지만 카트 옆에서 그가 인사하던  자리엔 바구니들만 가득 쌓여 있었다. 그렇게 청년은 사라졌다.


파리엔 완연한 늦가을 기운이 맴돌고 아침저녁으로는 시린 기운이 가득했다. 어디에선가 열심히 잘 지내고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다시 거리를 헤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절망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부디 그가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잘 단련해서 정상적인 세상의 일원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해 여름과 가을의 회전문 틈새에서 세상에서 힘겹게 살기 위해 버둥대던 한 청년과 내 모습이 다르지 않았기에 더욱 가슴 시린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슈퍼마켓 그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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