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

by 따심토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밤, 선이는 맨발로 골목길을 뛰고 있었다. 집 안에서 들려오던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발바닥은 차가운 빗물에 젖어 얼얼했고, 얇은 원피스는 몸에 달라붙어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쓰레기통 옆에서 선이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젖은 털은 칠흑같이 검게 보였고, 고양이는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선이는 주춤하다가 우산을 고양이 위로 살짝 기울였다. 고양이는 눈을 끔벅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 순간, 선이는 이상하게도 고양이에게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세상에 쫓기며 숨어 사는 자신 말이다.
“너도… 쫓기고 있구나. 나처럼.”
그녀는 고양이에게 ‘까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까망은 그날 이후로 골목 근처를 맴돌았다. 선이는 매일 밤 골목에 나가 까망과 마주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는 부모의 고함과 날카로운 소리들이 쏟아져 나왔고, 학교에서도 선이는 늘 혼자였다. 아무도 선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녀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오직 까망만이 선이의 말 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선이를 둘러싸고 비아냥거렸다.
“야, 넌 진짜 친구도 없잖아.”
“맨날 혼자 밥 먹고 혼자 다니고, 진짜 귀신같아.”
선이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있어. 나 친구 있어.”
“누군데?”
“…까망이. 우리 동네 고양이야.”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고양이랑 친구래! 진짜 이상한 애다!”
며칠 뒤, 아이들은 장난 삼아 까망이를 찾아오겠다며 선이를 따라 골목까지 몰려왔다.
까망은 그날도 골목 입구에서 선이를 기다리듯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학교 아이들이 몰려왔다.
“야! 저기 고양이 있다!”
선이는 움찔했다. 아이들의 눈빛은 장난과 잔혹함이 뒤섞여 있었다.
“저거 네 친구라며?”
모두가 선이를 바라봤다.
그 짧은 순간, 선이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까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모두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두려움이 뒤엉켰다.
그리고, 입이 저절로 열렸다.
“…아니야. 모르는 고양이야.”
까망이 잠시 눈을 끔벅였다.
마치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한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까망에게 돌을 던지고, 발로 위협하며 몰아세웠다.
선이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폭우와 함성, 그리고 까망의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겁에 질린 까망이는 골목길을 뛰쳐나갔고,
이내 도로 끝에서 귀를 찢는 듯한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적.
까망의 작은 몸은 어둠 속에 쓰러져 있었다.
피가 검은 털을 따라 번져나갔다.
선이는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의 입에서 방금 튀어나온 그 한마디가, 까망을 세상 밖으로 몰아낸 것만 같았다.
‘모르는 고양이야.’
그건 모두를 피하고 싶어서 한 말이었지만, 결국 그 말이 까망을 버린 것이었다. 그날 이후, 아무도 까망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장난이었을 뿐’이라며 서로 책임을 피했다. 하지만 선이는 알고 있었다. 까망을 세상 밖으로 내몬 책임에는 자신의 거짓말도 있어다는 사실을...
며칠이 지나도 집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해 소리를 질렀고, 어머니는 방에 숨어 침묵했다. 선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까망이 없는 골목은 텅 비어 있었고, 그녀의 마음도 함께 비워졌다.
그리고 어느 폭우 내리는 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다시 고함을 지르며 방 문을 발로 찼다.
“이 썩을 년, 또 어딜 쳐 돌아다닌 거야!”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 엄마의 비명. 선이는 벽에 등을 붙이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문이 열리며 아버지의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거친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세상이 기울었다. 바닥에 머리가 부딪히며 번쩍였다.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벽 너머 어둠 속에서 낮고 길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야옹’

선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시야 속에서 까망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건 분명히 죽은 까망이의 눈이었다.
“까망…?”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물속처럼 멀어졌다. 눈앞의 까망이 점점 선명해졌다. 젖은 골목에서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까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선이는 힘없이 손을 내밀었다. 까망이 고요히 다가와, 그녀의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했다.
‘이제 괜찮아.’
누군가 속삭이는 듯했다.
선이는 마지막으로 숨을 내쉬었다. 빗방울이 천천히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다. 까망의 눈동자에 번진 조명이 번쩍이며 흔들렸다.




작가의 이전글따뜻한 심장의 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