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 위에 동상

by 따심토

리안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수도 중심에 있는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의 한가운데, 그 동상은 여전히 위엄 있게 서 있었다. 몇십 년 전 리안의 조국인 A국의 한 명장이 B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나라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세워진 동상. 어린 리안은 그 장군을 우러러보며 마음속 다짐을 했다.‘나도 언젠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어.’ 세월이 흘러, 리안은 역사학자가 되었다. 전쟁의 기록을 탐구하며,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B국의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폐허 위로 쌓인 먼지와 얼어붙은 공기는 그곳에서 죽은 수많은 목소리들을 담고 있는 듯했다. 도시 끝자락, 그는 낡은 집 한켠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주름진 얼굴과 침묵 속에서 나오는 힘 있는 목소리가 그를 압도했다. 리안은 노인에게 전쟁에 대해 물어봤고, 동상으로 기록된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알고 있는 장군? 그는 영웅이 아니다.”노인은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민간인을 학살했다. 마을을 불태우고, 어린이와 노인조차 가리지 않았지. 이곳 사람들에게 그는 악마였다...”리안의 심장은 요동쳤다. 어린 시절 존경했던 장군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흔들렸다. 광장에서 바라보던 금속의 동상, 그 엄숙한 표정 속에 숨겨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B국 사람들의 기록과, A국의 찬양은 정반대였다. 승리자는 영웅으로, 패자는 희생자로 기록되는 것이 역사였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그 사이 어딘가, 피와 재 속에 숨겨져 있었다. 리안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전쟁에는 선과 악이 없다. 오직 살생과 기억만이 있을 뿐.’ 그의 시선은 다시 동상으로 향했다. 금속으로 굳어진 얼굴은 영원히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속에 새겨진 권력과 두려움, 그리고 인간의 잔혹함은 묵직하게 느껴졌다.
리안은 다시 B국의 폐허가 된 도시 곳곳을 걸었다. 시간이 꽤 지나었도, 폐허 속에는 전쟁의 흔적이 아직 살아있었다. 어린아이의 장난감, 타버린 책, 깨진 창문.
B국 주민들이 남긴 기록과 구술자료를 살펴볼수록 리안은 어린 시절 자신이 믿었던
영웅상이 허상 위에 세워진 것인지 깨달았다.
“내가 존경했던 사람... 그는 정말 영웅이었을까?” 그 질문이 입술을 떠나지 않는다.
전쟁의 진실은 단순히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서로를 향해 총, 칼을 겨누고, 죽음으로써만 권력을 확인한다. 영웅이라 불리는 자도 결국 수많은 피와 눈물 위에 서있는 사람일 뿐이다.
해가 저물어 다시 A국으로 돌아온 리안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동상을 보았다.
얼어붙은 동상의 금속 표면은 차가웠지만 저물어가는 햇살을 받아 빛났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들은 모든 이야기를 되새겼다.
죽어간 사람들의 얼굴, 불타버린 집, 흩어진 가족들의 기억. 동상은 승리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비극과 비애를 숨긴 채 서 있었다. 리안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을 보며 가슴이 뛰었던 소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다고 했던 순수함.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마지막으로 리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동상 앞에 무릎을 꿇고 , 바람에 흩날리는 공허함 속에서 속삭였다.

“당신은 영웅이었을까, 악마였을까… 아니, 아마 그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이름일 뿐이겠지. 그 이름 속에 숨겨진 진실을 난 기억 하겠다.”리안은 동상을 뒤로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 위에는 차갑고 묘한 정적만이 남았다. 전쟁의 승리와 패배, 인간의 잔혹과 비극, 그리고 그 속에는 오직 기억만이 살아남았다. 역사란 결코 단순한 승리와 패배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동상의 그림자를 뒤로한 채, 인간의 비극과 모호함을 품고 사라졌다.
동상은 여전히 위엄 있게 서있겠지만 금속으로 굳은 얼굴아래에는 많은 희생과 잘못된 믿음이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비극과 모호함은 언제까지나 영웅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창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