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들렸다.
“나 요즘 잠이 안 와.”
“괜히 불안해.”
“병원 다니고 있어.”
자모 모임에서,
아이들 이야기 사이사이에서
그 말들은 마치 날씨 이야기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그 말들이 그렇게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그 말들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버텨온 사람들만이 조용히 무너진다
그들은 늘 잘해온 사람들이었다.
아이들 학교 일정도 놓치지 않았고,
집안일도, 인간관계도,
자기 몫의 역할을 묵묵히 해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그렇게 단단해 보이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약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게.
“나도 처음엔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어.”
“버티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안 되더라.”
그 말속에는
오래 참고 온 시간들이 묻어 있었다.
우울은 갑자기 오지 않았다.
불안도, 불면도
소리 없이 조금씩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이를 챙기고, 집을 돌보고,
하루를 마치고 나면
정작 자기 마음을 돌아볼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친언니, 그리고 오래된 이름들
어느 날은 친언니에게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또 어느 날은
수년 만에 만난 동창들이
이미 몇 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얼굴들은
내가 기억하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웃고 있었고,
여전히 일상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두려움이 숨어 있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이유는 달랐지만, 도착지는 비슷했다
누군가는 큰 상실을 겪었고,
누군가는 호르몬의 변화를 겪고 있었고,
누군가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하루하루가 버거워졌다고 말했다.
이유는 달랐지만
도착지는 비슷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유 없이 불안하다
예전 같지 않다
감정이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그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때로는 약이 필요하다.
분명히 필요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들이 ‘자기 변화를 인지했을 때’
이미 다른 선택지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
나 역시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잠을 못 자던 밤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이 조급하던 날들,
다음 날의 생활이 두려워지는 새벽.
그때의 나는
“이건 아직 병은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감각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나는 우연히 ‘소리’라는 선택지를 만났다.
그 선택이
이렇게까지 내 삶을 바꾸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이 장을 여는 이유
이 장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우울과 불안과 불면이
병이 되기 전의 시간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는
약 말고도,
내가 나를 돌볼 수 있는 방법들이 남아 있다는 것.
이 책은
이미 무너진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너지기 직전,
혹은
“이상하다”는 감각을 처음 느꼈을 때
펼쳐보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엄마들이,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조금 덜 혼자가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