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보면
마음은 늘 먼저 말을 걸어왔다.
다만 내가 그 말을
너무 바쁘게 지나쳤을 뿐이다.
우울이나 불안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그건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벨을 누르지도 않는다.
그저 생활 속에 슬쩍 들어와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몸이 아니라 생활이 달라진다
처음 변한 건
감정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예전엔 대수롭지 않던 일들이
괜히 귀찮아지고,
사람을 만나는 게
조금씩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하루를 시작하는 게 무겁고,
하루를 마치는 게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몸은 멀쩡했다.
아픈 곳도 없고,
검사를 해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이건 그냥 피곤한 거겠지.”
“요즘 다들 이러잖아.”
하지만 마음은
그때부터 이미
자기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잠이 망가지면,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가장 먼저 흔들린 건
잠이었다.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자다 깨는 횟수가 늘거나,
아침에 눈을 떠도
쉰 것 같지 않은 느낌.
처음엔
“나이 들면 다 그렇지”라고 넘겼다.
하지만 잠이 계속 흐트러지자
하루 전체가 달라졌다.
집중이 잘 안 되고,
사소한 말에 예민해지고,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들이 늘었다.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마음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시간이라는 걸
그때서야 실감했다.
불안은 이유 없이 찾아온다
불안은
대개 이유 없이 찾아온다.
특별히 걱정할 일이 없는데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미래 생각을 하면
괜히 숨이 막히는 느낌.
사람들은 불안에 이유를 붙이려 한다.
“이 일 때문일 거야.”
“저 사람 때문이겠지.”
하지만 많은 경우
불안은 이유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마음이 너무 빠르게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몸은 오늘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내일, 다음 달, 몇 년 뒤까지 가 있다.
그때 마음이 보내는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다.
“잠깐만, 나 좀 천천히 가자.”
우리는 왜 그 신호를 무시했을까
그 신호를 무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늘
해야 할 역할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챙기고,
가정을 돌보고,
관계를 유지하고,
하루를 책임지느라
내 마음의 작은 변화쯤은
뒤로 미뤄두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나 말고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 말들이 쌓이면서
마음의 신호는 점점 더 크게 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병원을 찾게 된다.
병원에 가기 전의 시간이 있다
이 장에서 꼭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병원에 가기 전의 시간은
분명 존재한다.
그 시간은
아주 짧을 수도 있고,
아주 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 안에서는
아직
나에게 선택지가 남아 있다.
생활의 속도를 조절해 보는 것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것
마음을 자극하지 않는 소리를 곁에 두는 것
잠을 ‘노력’ 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
이 책은
그 시간을 붙잡고 싶어서 쓰였다.
이 장을 마치며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이거… 내 이야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이미
자기 변화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건 약함이 아니라
감각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다음 장에서는
내가 그 경계에서
어떻게 ‘소리’라는 선택지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음악이
약보다 먼저 손에 닿았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