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장점이라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 같지만,
시험관 통보를 받고 급작스럽게 결정했던
유럽여행이 나에겐 그랬다
지난 4월, 세 번째 인공수정마저 실패로 끝나고
시험관 권유를 받은 나는
도망치듯 난임병원을 빠져나왔다
아직은 자신이 없었다
격일로 맞던 주사를 매일,
하루에 많게는 3대까지 맞아야 한다는 소식에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그럼에도 실패한다면?'이라는 불안감이
득달같이 나를 쫓아왔다
어느덧 만 33세를 지나
노산의 기준인 만 35세까지 2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나는 빠른 결정을 해야 했지만
어쩐지 자꾸만 미루고 싶어졌다
난임 과정의 끝판왕이라고 생각되는
시험관 시술까지 했는데도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 절망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이가 간절하지 않아서일까,
혹은 너무나도 간절해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인 걸까
나는 환기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남편에게 유럽여행을 제안했다
코로나 시국에 결혼해
신혼여행은 제주도밖에 가지 못했으니
마침 좋은 핑곗거리도 있었다
내가 진짜 시험관을 해야 한다면
그전에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불안과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 기복을,
기다림에 지치고 무너져가는 우리를
조금이나마 다시 일으켜 세워야만
다음 관문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퇴근 후엔 언제나
온갖 난임 관련 검색어로 채워졌던 나의 시간이
여행 준비의 설렘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여행지에 어울릴만한 예쁜 옷을 사고,
예쁜 옷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 정보 수집으로 자투리 시간을 가득 채웠다
비로소 내 머릿속에서 '임신'이라는 단어와
잠깐이나마 멀어질 수 있었다
'그래, 이게 내 일상이었지'
난임병원 방문 일정과
주사 스케줄로 신경을 곤두세웠던 그 하루하루가
원래 내 일상인 줄로만 착각을 했었다
우리는 신혼여행보다 더 긴 여행을 떠났다
14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파리는
낭만 치사량을 넘어섰고,
하얀 눈이 쌓인 스위스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 날의 날씨와 일정을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호숫가에서의 피크닉,
황금빛 노을과 보석처럼 반짝이던 에펠탑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순간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날 정도로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난임이 아니었더라면
쉽사리 계획하기 힘들었을 낯선 곳으로의 여행.
아이가 생긴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큰 마음을 먹어야 할
남편과의 자유로운 시간들이
난임이 나에게 준 선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