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 경주 한의원

by 껌딱지

작년 12월 어느 추운 겨울 날,

우리 부부는 경주에 있는

난임으로 유명한 한의원에 가보기로 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진료를 보기 위해 길바닥에서 밤을 꼴딱 새야하는

그 한의원에 가기로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결정이었다


(지금은 예약 시스템으로 바뀌었지만

내 결심이 섰던 그 때는 현장 접수에

선착순 진료를 보던 시기였다)


친한 친구의 언니가 그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먹고

귀여운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모든 난임부부가 그렇듯이,

나에게도 그런 기적이 오길 바라며 짐을 챙겼다


남편은 내가 얼어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경주로 떠나기 전날 밤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 뒷좌석을 젖히고 편하게 누울 수 있게

내 전용 차박까지 준비하고 연습했다


반면, 길에서 밤새도록 자리를 지켜야 했던

남편의 준비물은 원터치 텐트와 캠핑용 의자,

손만 겨우 녹일 수 있는 가스난로였다


아무리 군대 갔다온 남자라지만

이렇게 추운데 밖에서 잘 수 있을까?

뭐든지 다 괜찮다고하는 남편이라서

진짜 괜찮은게 맞는지 걱정이 앞섰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또 괜히 눈물이 고였다


몇겹이고 옷을 껴입고

극세사 담요와 핫팩, 목도리까지 챙겨

새벽 두시 쯤 집을 나섰다


차가 없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렸다

한가득 짐을 챙겨 야간 드라이브를 하니

여행가는 설레임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힘들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새벽부터 서두른 덕분인지

우리는 한의원에 1등으로 도착 할 수 있었다

진료시간을 기다리며 조금이나마 쪽잠을 잘 수 있게

텐트를 치고, 차를 세팅했다


30분쯤 지나자 우리 뒤로

줄서는 사람들이 한두명 씩 생겼다

어떤 부부는 캠핑장에서나 보던

엄청 커다란 난로를 들고와서

여기가 따뜻하니 몸좀 녹이라며

뒤에 서있던 다른 부부에게 온기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는 우리는

같은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침 햇살이 비추고

진료를 보고, 아침으로 뜨끈한 국밥을 먹었다

역시 고생끝에 먹는 밥보다 맛있는 건 없다


한달 뒤 결과는 실패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 날의 경험이

작은 성공을 맛보게 했다


요즘 우리는 또다른 새벽을 준비한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이

고생 끝에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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